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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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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3 오후 12:2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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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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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모난 아파트에서 네모난 텔레비전을 보고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산다. 네모난 핸드폰을 쓰며 네모난 액정을 통해 교류하고 네모난 모니터를 통해 인터넷을 하며 네모난 차를 타고 세상을 달린다. 내게서 사각 입방체를 떼고서는 생활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누구나 수많은 큐브 안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인위적으로 큐브라는 단위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법과 사회제도, 국가라는 단체자체가 어쩌면 사각으로 단일화된 큐브입방체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큐브2>는, 그렇게 자신을 둘러쌌던 큐브들이 어떤 공포로 다가올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작이 그 신선한 아이디어와 참신함으로 주목을 받았다면, 이번 후속편 큐브2는 전작보다 더욱 정교해지고 실체화된 공포를 사람들의 목아래로 들이밀며, 지금 네가 어디에 어떻게 살고있는지 정신차리라는 자각을 촉구하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없다. 여의사, 정체모를 강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변호사, 실성한 노파, 장님 소녀등 각계각층 사람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만난다. 모두가 자신들이 왜 큐브 안에 빨려들었는지를 이유도 모른채 그 안을 헤맨다. 초반엔 인간군상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데에 지리멸렬해 전작보다 서투름을 보여주지만, 점차 중후반을 지날수록 산만한 듯 싶던 이야기는 하나로 집약되고, 그것은 말미에 가면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그것은 바로, 등장인물들이 그 큐브를 만든 하나하나의 당사자라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가두고 목을 조르는 공포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괴물이라는 아이러니. 그 괴물의 실체란 바로 자신들의 욕망이었다. 과학과 기술을 지배하고자하는 끊임없는 야욕이 주체였던 인간을 먹어치운채 계속 증식하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그 괴물은 주인을 물어뜯은 후엔, 수없이 자라나 서로를 물고 물리며 싸워댈 것이다. 인간을 편리하게만 해줄 것 같은 찬란한 기술과학은, 이 영화에서 끝없이 팽창하고 축소되며 증식하고 소멸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진화하는 지옥에 다름아니다.
과학이 지니고있는 양날의 칼 중 가장 무서운 구체화가 바로 군수산업일 것이다. 에너지, 군수산업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미국의 부시가 자국방어를 빌미로 전세계를 위협하는 미사일방어체제 를 추진하는 것이나,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전쟁을 강행하며, 2004년 재선성공을 위해 한반도를 핵위기로 몰아넣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며, 나는 이 영화가 전혀 남 얘기가 아님을 절감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은 자국땅에서 자국 국민들이 죽을 일이 아니기에 손쉽게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곧 그 칼날이 자기 목에 되돌아와 쳐박힐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감상을 쓰다보니 요상하게 흘렀다..-_-;) 어쨌건, 이 영화의 결말은 결코 우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같은 불확실한 세대, 영화나 소설등에 나올법했던 과학의 위험성이 구체화되고 있는 시대에 더더욱 그렇다. 진짜 공포란 가공이야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서 숨쉬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것이 인간들 자신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가 던져주는 진짜 공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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