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사람관계에 대한 영화 중 이것만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 뭐가 있을까.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봤자 생각날 리 없겠지만, 어쨌든 미카엘 감독의 『피아니스트』에는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배경이나 상황이 난해한 것은 아니었으나, 에리카의 극단적인 행동에 약간 당황해서 어느 순간부터 굉장한 혼란에 빠졌다. 나중에는 웃으면서 봤지만 결코 즐겁지는 않았다. 그녀의 행동과 심리는 보는 이에 따라 뒤틀리고 심하게 왜곡되었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보는 중간에 어이없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뱉는 여인들이 있어 매우 거슬렸다.) 에리카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억눌린 내면의 욕망이 극심하게 대비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에게 내재된 억눌린 욕망은 미남 청년 클레머를 만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를 만나서 목에 힘을 주고 턱을 꽂꽂히 세운 채 ‘잘생긴 당신은 모른다.’ 고 말하는 그녀의 대사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하나의 욕망개체는 약한 존재일 뿐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피해의식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 즈음에는 ‘사람을 반하게 해놓고 무시하면 되느냐.’고 화를 내는 클레머에게 몰입하게 되어 옳고 그름, 이성과 욕망, 사랑과 미움 등 상반된 감정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런 채로 필름은 계속 돌아갔고 결국 모든 것은 뒤틀린 그대로 끝이 났다. 흡사 『레퀴엠』의 마지막을 보는 듯했다.
집에 오는 내내 에리카의 입장에서, 에리카 엄마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필름을 되돌려 보았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결국 타인에게 자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쪽이 옳고 또 다른 한 쪽이 그르다고 말할 수도 없다. 세 명의 주요인물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데만 급급하여 전혀 뒷수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자신과 다른 타인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 너를 이해해.’라고 아무리 말해도 본인조차도 잘 모르겠는 나를 어떻게 타인이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말해도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피아니스트』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