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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인스턴트>와 <일편단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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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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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와 <일편단심>
가끔, 대학시절의 낭만이라는 것은 치열하게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서 낯선 추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낯섬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로 파고들어 우리네 머릿 속을 괴롭히기도 한다. 또 가끔,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 괴로움을 잠시 잊어보고 다시 현실에다 얼굴을 파묻어 버리곤 한다. 그런 향수로 대변되는 영화가 한 편 있다. <色卽是空> 이 영화의 제목대로라면 색은 곧 공이라는 불교의 진리를 그대로 인용한다. 상욱과 치원으로 대변되는 인스턴트식 사랑. 그리고, 로맨틱 코디를 보면 흔히 보이는 캐릭터 은식. 그리고 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은효. 이들이 만들어내는 코미디는 웃음의 난발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향수같은 것이다. 그러나 <몽정기>에서 보여준 향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몽정기>에서 보여준 것이 80년대의 향수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성담론을 담고 있다면, <색즉시공>이 보여주는 그것은 현대적이다. 은식이 자위를 하는 그 행위들은 컴퓨터라는 공간 앞에서 이루어지며, 은효는 이런 은식의 모습을 보며 80년대가 지녔던 사고방식의 핵심인 "저질이다"라는 표현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그를 보면서, 있을 수 있는 일임을 無言의 대화 속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은식의 사랑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꼭 <인스턴트식 사랑>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거나 <일편단심 은효사랑>에 관한 고전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영화는 분명히 <인스턴트식 사랑>을 인정하면서, 지나치게 길들여진 <인스턴트식 사랑>을 은근하게 풍자하고 있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부분에 은효가 은식에게 "아직도 나 사랑해?"라고 말할 때, 은식은 "내가 언제 사랑한다 그랬어?" 라는 반문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즉, 현대적인 의미의 해석에서라면 이들은 사랑을 가꾸고 키워가야 할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영원히>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깔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욱이 보여주는 <하룻밤 정사>에서 대해서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은식이 상욱을 폭행(?)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듯 분명하게 그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큰 사건으로 비화시키지 않는 이유는 현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다소는 부정적인 시각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욱은 일말의 양심도 없이 임신한 은효를 버리지만, 은효는 그에 대한 배신감으로 어떤 물질적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은식의 차력쇼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즉, <하룻밤 정사>에 의해 버림받고, <일편단심 은효사랑>에 감동받은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감동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영화는 결말에 가서도 서로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그것은 은효가 비로소 은식에게 <아직도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은식의 대답도 미묘하다. 그 대답이 결국은 사랑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맘때쯤 은식의 방 주변에서는 이미 불길이 일고 은식은 그저 그것이 소독하는 것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은식이 은효를 사랑했다 하여도 그것은 어쩌면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하여도 그들은 불길 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막연한 해답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가끔, 색이란 공이 아니라 時空을 대표하는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色卽時空.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성적욕망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가 <몽정기>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성담론을 코미디를 통해 유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성인을 상대로. 하지만, <몽정기>가 한국적이고 정통적인 요소를 많이 넣은 성담론이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는 한국적이기보다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더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판 아메리칸 파이'라는 다소는 억울하고 치욕스런 비평을 듣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초반에는 좀 지저분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깔끔하게 한편을 전개시킨만큼, 조금 더 한국적인 냄새가 나야 한국의 성인용 로맨틱 코미디가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법의 성>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너무나 이국적인 성담론을 너무나 평범하게 제기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어쨌든, 관객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범위 내에서 성에 대한 의식적인 문제를 자연스럽게 코미디로 이끌어갔던 영화이기에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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