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극장가에서도 적지 않은 흥행성적을 기록한 [큐브]는 공포영화로 시작해서 철학 영화(?)로 끝나는 특이한 영화입니다. 거기에다 중간 중간 머리를 질끈거리게 만드는 어려운 수학공식은(http://www.math.ecu.edu/~pravica/ - 이곳을 참조하시기를) 이 영화를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단단히 하였지요. 그로부터 3년후 [큐브2]가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큐브2]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서 98분간 허우적 거리다가 황당한 자폭씬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합니다.
[큐브]의 매력은 모든 것이 모호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왜 자신들이 선택되었는지 모든 것이 모호한 상황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시킬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큐브2]는 그 공간이 가지는 매력을 하나도 살리지 못합니다. 그저 전편의 후광을 얻고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자랑만 할뿐이지요. 이곳을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본능은 큐브라는 공간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 모두 다 살 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를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각방마다 숨어있는 부비트랩 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큐브2]는 그런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모습들을 하나 같이 슬래쉬 무비에서 살인마에 쫓기고 있는 바보(죽음이 예정되어 있는)들처럼 그려내려고만 할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업그레이드된 방의 갯수와 공식(?)들을 가지고 관객들의기만 죽이려고 할뿐입니다. [큐브2]는 그 방에 갇힌 인물들 보다 그 방에 설치된 부비트랩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단 한명의 최후의 생존자를 만들기 위해서 인물들을 하나둘씩 처치해 나가는 과정은 너무나 뜬금이 없어서 한숨이 나올 정도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큐브2]는 횡설수설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거기에다 이상한 용어들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더 지루해집니다. 저예산 영화의 매력을 뜸뿍 살린 [큐브]에 비해서 볼거리는 확실히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큐브2]는 긴장감이 결여된 볼거리만을 제공할 뿐입니다. [큐브3]을 예고하는 마지막 결말 또한 황당하게 그지 없습니다. 과연 저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보았던 [큐브]와는 달리 [큐브2]는 계속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키려고만 합니다. [큐브2]가 그방에 숨겨진 장치에 기울인 노력의 백분의 일이라도 그속에 같혀 있는 인간들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이상망측한 속편영화는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인간들을 담기 보다는 그들을 어떻게하면 더 매력적으로(?) 죽일수 있을까 관심을 가지는 감독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 등장인물들의 매력적 죽음 부분에서는 [큐브]가 보여주지 못한(한개 방에서 조명을 바꾸어 가면서 촬영한 영화인데,당연하겠지오) 상상력을 맘껏 발휘했습니다.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아마 전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볼수 없었을 것입니다.
[큐브] 또한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인물들이 변해가는 상황을 매끄럽게 전개시켜 나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큐브2]는 그런 단점에다 결말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 억지스러운 상황들까지 보너스로 첨가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4차원 공간이니 너그럽게 이해해달라는 식의 변명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독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제가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건 기대감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큐브2]가 보여주는 시덥지 않은 공포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전자이건 후자이건간에 [큐브3]는 안 만들어졌으면 하네요. 설마 벌써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이 영화에 말한 용어들이 다 현실속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니 전편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첫 장면을 그렇게 시작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구구절절하게 한꺼플 한꺼플 밝혀지는 큐브의 진실(?) 따위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 또한 큐브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친철하게 가르쳐준 [큐브]와는 달리 [큐브2]는 대담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코메디였다고 말입니다'
사족
[큐브]와 [큐브2]에서 공통점을 하나 찾는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허무함을 선사한다는 점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