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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도망자>하염없이 빠져들다. 클래식
tillus 2003-01-29 오전 9:26:09 1108   [12]
 70년대의 단아하고, 순수한 감정과 2000년대의 세련되고, 로맨틱한 스타일이 서로 교차되어 눈물과 웃음이 서슴없이 뿜어져 나오는 영화 <클래식>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이는 수작이고, <엽기적인 그녀>로 데뷔한 곽재용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번 믿게 되는 순간이었다. 역시나 설 특수를 노리고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인데, 그 노력의 기회가 한주 앞서 개봉한 4편의 그늘에 조금이라도 가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잡아놓은 스크린 수만 보더라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후대에까지 자주 기억될만한 영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건 어차피 나중 일이고, 지금은 <클래식>만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것이 급선무인 듯 하다.
처음에 러닝타임을 보았을 때 멜로 영화로써는 결코 짧지 않은 2시간 7분의 시간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한정된 스토리를 쓸데없이 너무 질질 끌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는데, 다행이도 그 걱정스러움은 스크린 상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겨운 결말과 관객들의 이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끌어버린 곳이 분명 나타나긴 하지만, 그 부분마저도 각기 다른 감동의 물결이 넘쳐흐를 뿐, 지루하다고 느껴진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사한 아침햇살과 더불어 지혜(손예진)의 내레이션으로 서막을 알리는 <클래식>은 처음부터 영화 속으로 깊게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현재의 지혜(손예진)와 70년대의 주희(손예진)가 서로 교차되면서 플롯은 전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혜는 현재의 여성들답지 않게 상당히 내성적이고, 주희는 역시나 70년대 여성들답지 않게 매우 당돌하다. 그리고 지혜는 상민(조인성)과 주희는 준하(조승우)와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눈다. 또 하나, 사랑하는 사람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목걸이가 등장한다. 이 정도가 바로 <클래식>의 기본 틀이다.
영화는 중간 중간에 몇 개의 복선을 깔고 있기도 하다. 그 복선이 나중에 일어날 일들과 마지막 반전을 예고하며 관객들의 감성을 서서히 자극하는데, 초반에는 웃음으로 중반부터는 웃음과 눈물이 조금씩 교차되다가 후반에 가서는 뜨거운 눈물로 승화시킨다. 그 눈물의 의미는 그들의 가슴 아픈 사랑에 기꺼이 동참했다는 뜻일 것이다. 비록 우연의 남발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운명이 이세상의 조물주에 의해 이미 정해진 필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를 느낄 수 있었고, <동감>의 시, 공간을 초월한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엽기적인 그녀>의 연장전상에 놓인 듯한 느낌도 할애 받았다.

 
 지금부터는 배우들의 열연에 대해 극찬을 하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조승우의 연기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하고 싶다.

 조승우가 출연한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다. 그의 데뷔작이었던 <춘향뎐>과 <YMCA 야구단>에서 까메오로 출연한 모습과 <에이치>에서의 냉소적인 악역과 그리고 <클래식>만 봤다. 그래서 그가 그 사이에 어떤 연기를 펼쳤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최근에 비록 흥행몰이에는 실패했어도 스릴러라는 한국에서는 불모지라고도 할 만큼 뒤쳐진 장르를 다시 한번 개척이라는 이름 하에 노력의 의지를 보여준 <에이치>에서 그의 연기력에 상당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춘향뎐>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조승우만의 카리스마적 연기력을 실감했었는데, 숫 적으로는 한 해가 지나갔지만, 불과 한달만에 그의 또 다른 모습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그가 도시적인 샤프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70년대의 컨츄리틱한 시골청년의 모습을 너무나도 훌륭히 소화해냈다. 화려한(?) 춤 솜씨에 극장이 떠나갈 만큼 웃어댔고, (물론 손예진의 엽기적인 춤 솜씨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32개의 회충약을 우적거리며 먹는 모습에 리얼함을 더했고, 인스턴트적이 아닌 가슴 깊이 우러난 진정한 눈물을 하염없이 보여줬으며, 영화의 내용 전개 중에서 가장 억지스러운 장면일지는 몰라도 오직 사랑하는 이의 목걸이를 위해서 전장에서의 필사적인 모습에 감동을 더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애인의 연기와 바로 이어지는 당황하는 모습에 속으로 한국을 대표할 만한 배우가 또 한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짐했다. <클래식>이 대박을 터뜨린다면 감독의 연출력과 손예진의 존재와 더불어 삼분의 일은 조승우의 몫일 것이다.
 손예진의 연기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땐, 너무나도 여성스럽고 나약한 이미지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장담할 수 없지만, 거듭된 변신에 성공해야만 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에 이름이 그리 오랫동안 오르내리지는 못할 것이라 예상을 했었다. 물론 이번 <클래식>에서도 가녀린 그녀의 이미지 그대로 출연하기는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엽기적인 춤 솜씨를 봐서는 그 예상을 어느 정도 빗겨나갔다고도 볼 수 있다. 역시나 관객들의 눈시울을 흠뻑 적셔 멜로영화의 대를 이을 차세대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는 그녀의 차기작이 목 빠지게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이번 영화로 신고식을 치른 태수역의 이기우와 수경역의 이상인 역시 각각의 도드라지는 자신만의 캐릭터에 상당한 집중력을 선보이며 열연했고, 차기작을 기대케 만들었다.
 
 그런데 뭔가 빠진 듯 할 것이다. 그렇다. 조인성에 대해선 언급을 안했다. 그에게는 상당한 실망감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마들렌>에서 스크린 주연의 자리를 꽤 찬 조인성은 그때의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약간 사나워졌을 뿐, 너무나도 평이한 연기력을 보인 그는 앞으로 겉으로의 보여 지는 노력에 따라 조인성이라는 석자의 이름이 얼마나 사람들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조인성에게 더욱 실망한 이유는 따로 있다.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 조인성은 <클래식>에 자신의 이름이 주연에 올랐는데, 출연되어지는 분량은 조연급에 불과하다며 영화사에 불만을 토로하며, 우정출연으로 바꿔달라는 기사였다. 영화사와 조인성간이 이뤄진 정확한 계약조건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할 도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자고로 배우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간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영화 속을 꽉 매운 주연일지라도 관객들의 관심밖에 머물러 버리거나, 단 1분의 출연분량밖에 안되어도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버리는 것은 100% 배우의 몫이고, 자질인 것이다. 그것을 영화사에 이래라 저래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사에서는 흥행을 위한 최선의 방도를 선택한 것일 뿐, 배우들의 출연 분량을 일일이 재가며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사 조인성이 한석규나 설경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 배우일지라도 그건 잘못된 행동이란 것이다. 막말로 연기라도 잘 하고 그런 말을 하면 덜 미울 것인데,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듯한 그의 행동에선 영화에 대한 애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연기가 더 평이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남자 태어나다>, <품행제로>가 80년대 추억의 에피소드들을 나열한 반면, <클래식>은 70년대의 아련한 첫사랑을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세월이 이만큼 흘러옴에 따라 그 시대의 기억이 저만치 물러갔음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 자그마하게나마 자리하고 있을 그 격동의 70년대에 대한 풍랑이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는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클래식>은 그때의 시대상황과 더불어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하고, 잊혀져 가기만 하는 추억을 하나씩 끄집어 놓게 하는 또 하나의 행복한 선물임에는 틀림없다.
 <이중간첩>이란 영화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관객들의 실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클래식>은 짊어지고 갈 사항들이 더 늘어난 듯 보인다. 그러나 제작년에 <엽기적인 그녀>가 보여줬듯이 <클래식>의 앞길도 험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잠시잠깐 <반지의 제왕2>와 <해리포터2>에 빼앗겼던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반드시 되찾아올 것이며, 2003년 한국영화의 포문을 활짝 열어 재낄 것이다.

<도망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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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2003, 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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