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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 밑에서] 무섭다.. 그런데 내 스스로 만든 공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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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물 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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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여기저기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쇼킹기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감독이 입으로 직접 말했듯이 무언가 내뒤에 있을 것같은 그런 심리적 공포를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로 끌어내는 영화이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나약한 이혼녀가 어린딸과 허름한 아파트 305호에 이사오면서 2년전 죽은 405호 아이의 방문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 작품의 감독은 누군인지 알것이다. 바로 링시리즈를 탄생시킨 나카타 히데오감독이다. 그는 우리에게 링으로 무척 잘 알려진 감독이고 심리공포물의 대가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그의 출세작 "여우령"을 보면 아마도 그의 작품세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링보다 여우령을 먼저 봤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직까지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때의 공포로 뒤를 돌아보고 있을정도이다. ^^: 그는 익숙한 공간이나 사물에서 나올 듯한, 그런 일상적인 공포를 표현하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크린 속에 나오는 귀신의 모습 , 비디오에서 나오는 귀신, 또 이번 영화에서는 아파트라는 소외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고독 즉 공포를 물이라는 근원적인 소재를 선택해서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에 의한 공포를 끌어내었다. 여우령과 링 같은 경우는 현시대의 문명의 이기에서 파생되는 공포를 심리적으로 표현했는데 이번 <검은 물 밑에서>는 물이라는 근원적인 소재에 모성의 강함을 첨부해 전작들 보다 더 관객에게 큰 공포를 끌어내는 친숙함을 더했다.. 그럼 나카타 히데오감독이 왜 물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는가가? 중요한 논의거리가 될 것이다. 그 얘기를 나름대로 써보고자 한다.
먼저, 왜 심리공포물이 관객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긴 공포를 남기는가? 서양의 공포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섭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대다수가 그럴 듯하다. 서양공포(헐리웃등등)영화는 왜 그리 피가 많이 나오고 악마들은 왜 그리 많이 나오는지, 거기다 살인마는 끝없이 사람들을 이유없이 마구 죽이고.... 하여튼 우리같은 동양인들은 그들의 공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기본적 사상이나 종교적 뿌리가 너무 다르다. 그들은 공포를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주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원래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강한 공포와 경외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보여주는식의 공포는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이 영화 <검은 물 밑에서>를 따져보면 일단은 그 공포의 존재 자체가 그림자처럼 그렇게 내 주위에 일상적인 것들로 이루어졌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다. 죽은 아이의 혼 자체가 뚜렷히 정면으로 나와서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등골의 서늘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관객이 스스로 저 스크린속의 공간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기 때문이다. 즉, 집으로 가는 아파트나 엘리베이터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혼자 있을때 가끔씩 생각했던 무서운 생각을 영화 속의 공간과 겹쳐 생각하면서, 그 때 느꼈던 공포의 기억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은 특수한 영화적 특수효과 없이 관객에게 섬뜻한 공포를 선사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영화의 공포의 모티브 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물", 이 물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평범하다 . 그리고 우리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지만 그 존재가치를 우리는 종종 까먹기도 한다. 그러나 물은 탄생의 기원이고 또한 모성를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것이다. 그런 것을 감독은 검은 물이라는 즉 물의 투명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무의식적 나약함을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극의 긴장성을 높이는 효과를 끌어냈다. 그리고 요시미 미츠바라(엄마)역의 구로키 히토미의 나약한 몸매와 그녀의 갸날픈 목소리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와 모성을 표현함으로써 물이 가지는 상반된 의미 즉, 탄생과 죽음을 새롭게 표현해내었다. 영화 검은 물 밑에서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공포분위기를 잡아주던 물(비)을 공포의 주역(대상)으로 가지고 옴으로써 우리가 왜 공포영화에서 비오는 장면등이 나오면 더 무서워 했는지를 이해하게끔 한다고 해야 할 것같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물에 가지는 일반적인 생각을 깨고 물의 무의식적 공포를 정면으로 내세움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물이라는 공간(?)에 닫히는 느낌을 갖게 하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고독과 인간소외의 슬픔으로 투영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405호의 아이는 결국 물에 의해서 죽게되고 또한 물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과 분노를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405호의 아이가 물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면 요시미 미츠바라는 물의 긍정적인 의미 탄생과 모성애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아마 이런 이유때문에 감독 나카타 히데오는 아파트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런 소재로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 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또다른 공포의 대상이 되는것은 아마 음악일 듯하다.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우리는 카메라 뒤에 무엇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음악은 <링>에서도 같이 작업했던 카와이 켄지가 맡았다.) 또 화면구도의 효율적인 배분으로 약간은 떨어진듯 아니 가까운듯 표현한 화면구성은 특수한 장치없이도 충분히 괴기스럽게 아파트를 그려냄으로써 그 고립된 공간의 외로움과 슬픔,분노를 보여주었다. 원작(링의 작가 스즈키 코지의 "부유하는 물") 이 탄탄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런식의 암묵적인 공포를 표현해낸 감독의 능력이 놀라왔다.
마지막으로 이런 심리공포물에 현대인들은 왜 열광할까? 아마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단절된 사회에 살기 때문에 고독과 끝도 없는 상념속에서 개인적인 공포를 스스로 만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들의 개인적인 공포를 눈으로 직접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반대로 그 공포를 부정하고 싶기 때문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영화속에서나 일어나는 공포일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뒤를 한번쯤 돌아봐라...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 스스로 만든 공포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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