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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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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9 오후 3:4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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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어떠한 영화도 볼 수 없게 되버렸다.(예상했던 바지만, 그래도 당혹스럽다.) 스탠리큐브릭이 환생해서 A.I를 시계태엽오렌지버젼으로 재탄생시키거나, 히치콕이 환생해서 싸이코를 2003년형으로 버전업 시켜주는 지상최대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살인의 추억을 첫 관람한 오늘의 이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나는 결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봉준호의 살인의추억은 우리가 꿈꿔온 모든 기대들을 정확히 충족시킨 후, 1000M쯤 뛰어올라 무서운 속도로 관객들의 정수리 가운데에 날카롭게 착지한다. 착지의 순간 퍼지는 엄청난 에너지는 관객들의 기도를 지나 심장을 관통하고 결국 살갗을 뚫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영원히 세상을 지켜보게 만들 것이며, 시대의 부조리와 빈틈없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세상의 모든 이치와 이상한 방법으로 산출되어지는 계산방법들을 재검토하게 만들 것이며, 이해 할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닉한 순간을 확대해서 다시 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안경이 되어줄 것이다. 봉준호의 기막힌(나는 진정 기막히다고 생각한다,)전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보여준 관찰력은 전대미문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모호한 시작점에서 다시 한번 발휘되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미궁의 사건에 봉준호가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슴이 터질것같은 분노를 관객들에게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분노의 근간에 위치한 두명의 형사들과(오히려 그들은 살해당한 피해자보다 더욱 큰 피해자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범인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끔찍한 고통들이 벌어진 순간의 최전선에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급변했던 80년대를 봉준호가 엮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복잡다단한 질문들에 대한 지나치도록 현명한 답안들이 모여 거대한 걸작을 완성시키는 순간. 영화는 박두만형사(송강호)가 여자의 시신을 다리아래에서 지켜보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이상한 지점에 함께 놓여있는 남자아이는 끝없이 박두만형사의 말을 따라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은 곧 모멸감으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 같은 시골의 순박한 꼬마아이는 박두만을 그 자리에서 비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기묘한 상황은 드라마의 예고이며 박두만이 앞으로 당할 고통의 단초인데 봉준호가 만들어낸 시퀀스들은 이처럼 뛰어난 압축미와 상징성을 띤다. 끔찍한 시체 위에 앉아 형사의 말을 연신 따라하고 있는 꼬마아이라는 설정. 이렇듯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조화는 살인의 추억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된다. 박두만은 감식반도 오지 않고 현장보존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현장을 향해 욕지거리를 해대는데, 이 부분은 이 사건이 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궁의 수사인지에 대한 역설적인 해답이다.
사건의 최전선에서 점점 미쳐 가는 형사들의 면모에 카메라가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 사건의 맹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 완벽하게 사건이 일어날 경우의 수까지 정확히 파헤쳐 놓았지만, (비오는날, 빨간옷등) 정작 바로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고마는 이 사건의 맹점은 감독의 시선을 통과하여 80년대 공권력을 비난하는 지점으로 이어진다. 범인추정을 알리는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리지만 경찰서내에서는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고한 주민들은 하나둘씩 불려와서 초죽음을 당하고 형사는 점쟁이의 부적앞에서 한밤중 고사를 지낸다.
무모한 시도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사유는 그들의 생존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그 최전선에서 더 이상 생존해낼 수 없다. 무모한 방법들이 그들을 지탱해나가는 것은 80년대 공권력이 지배하던 군사독재시대의 무모한 정치권력자들을 은유하는 부분이다. 결국 아무런 해답없이 무고한 사상자와 피해자들은 그전과 다름없이 혹은 그전보다 더욱 속출되지만 그들은 아무런 발전없이 무모한 방법과 시도로 무고한 용의자들과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고 모욕한다. 그것은 형사들의 생존과 군사독재의 터무니없는 공통된 근거사유였다. 봉준호는 이토록 풀리지 않는 거대한 사건과 80년대의 자화상을 아주 미묘하게 한 알레고리로 묶어가며 사건을 해결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는 서태윤(김상경)형사를 투입한다, 서태윤형사가 등장하는 씬은 모호하다, 안개낀 들녘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서서히 등장하는 서태윤형사의 이미지씬은 안개속에서 헤메고 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멋지게 상징화한다. 신반장(송재호)이 등장하는 씬 또한 그렇다. 「미궁에 빠진 사건」이라는 신문의 클로즈업이 겉힌 후에 등장하는 신반장은 박두만과 서태윤을 조절하며 이 사건을 구원해줄 중심인물로 상징화된다. 훌륭한 셔레이드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때론 압축한다. 그들이 용의자로 의심하는 정신병자나 변태 혹은 어린 공장 직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고자 하는 형사들의 몸부림은 갈수록 처절해진다. 근거와 상황을 맞물려 놓고 해답의 바로 앞에서 좌절해버릴 수밖에 없는 그들이 미쳐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런지도 모른다.
"목격자건 뭐건 자백만 받아내면 돼. X발."
이제는 서형사도 과학수사에 대한 집착을 떠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제 사건을 마무리 해버리고 싶다. 그가 범인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형사들은 미쳐가고 사건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다 잡았다 싶은 순간에 완전한 몽상처럼 사라져 버리는 범인의 허상. 그 이상한 허상에 미쳐 가는 형사들. 그런데 형사들의 행동에 우리가 동의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감독은 서서히 들이대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의 가장큰 주제의식이다. 이제 영화는 용의자 백광호의 진술을 돌이킨다.
"전부다 얘기 했쟎아!"
향숙을 죽인 용의자로 몰렸던 백광호의 진술테잎을 돌려들으며,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형사들은 백광호의 진술내용이 누군가의 살해장면을 목격한 후 진술했던것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진정 그제서야 깨닫는다. 자 이제 영화는 진심으로 묻기 시작한다.
왜 사건은 풀리지 않는가? 왜 범인은 잡히지 않는가? 왜 형사들은 그 자리를 멤돌고 있는가? 왜 용의자의 진술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들은 자백에만 치중하는가?
이 무모한 전쟁에서 그들이 범인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하루빨리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어하기만을 원한다. 바로 앞에서 죽어나가는 여인들의 끔찍한 사체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에. 가족들의 곁에 누워 진심의 휴식을 취하고 싶기에. 더 이상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 끔찍한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그들은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한다. 범인에 대한 피끓는 분노와 정의실현을 위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그들을 진정 시종일관 괴롭히긴 괴롭혔던것일까?
사건의 단초에서 마음먹었던 그들의 온전한 정신이 미쳐가기까지 범인이 수명의 여자들의 몸에 난도질을 하는 순간까지 그들은 범인에 대한 온전한 분노가 아닌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외치는 용의자들에 대한 그릇된 분노를 갖고 있진 않았는가? 아닌 것을 옳다고 끝끝내 주장하고 그것을 박제화 시키려는 형사들의 비뚤어진 사건수사는 이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끌어들인 것은 아닐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것일까? 진정 범인은 한인물이었을까? 그것은 모방범죄였을까? 물론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증명되지 않는 증거물과 억측만이 무성한 상황에서 그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용의자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자백을 받아내기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동물과 다름없다. 분노의 방향과 진실이 은폐된 상황에서(물론 그들은 진실을 말해도 분명 듣지 않았다. 백광호의 진술을 말이다,) 그들은 도저히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고 말할는지 모르겠지만 봉준호감독은 치밀한 관찰력으로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의 경우의 수를 이처럼 두어 나가고 있다. (놀라운 걸작의 탄생사유!) 미궁의 사건을 드러내는 감독의 시선이 시종일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것인가를 해석하는 것은 온전한 우리의 몫이다. 범인을 잡는 것이 온전한 그들의 몫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박두만의 시선으로 조용히 끝난다,(의미있는 시선처리)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둔채 영화를 마무리 하는 봉준호의 심중어린 질문은 계속된다.
지금이라도 잡을수만 있다면 잡고 싶은가? 그럴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한채(박두만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 다시 그 시작의 시점으로 돌아갈수 있겠는가?
봉준호의 위대한 걸작은 놀라운 배우 송강호와 김상경을 통해 완벽에 가깝게 탄생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게감있는 소재를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수많은 미세한 장면에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또한 그 가능성들을 무참히 지나가버리는 형사들을 조롱하는 감독의 시선은 소름끼치도록 뜨끔하다. 여전히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박두만은 첫장면처럼(첫장면에서 같은 위치에 서있던 남자아이와 마지막장면에 서있던 여자아이와의 상관관계도 궁금하다. )범인을 잡지 못한 안타까움과 회한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다.(지금다시 그 시점으로 박두만이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는 진실을 보지 못할 것이다.) 진실을 (너무도 당연하게)진실이 아니라고 왜곡하는 과거와 현재. 과연 무엇이 달라진것인가?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범인이 잡히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일런지도 모른다. <살인의 추억>은 위대한 작가의 심중과 유려한 카메라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 감독의 창조력으로 탄생된 (감히 말해)2003년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우리의 뇌리에 기억 될 것이다.(김지운의 장화홍련과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나누자.) 두 번째 작품을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살인의 추억>은 우리가 수년간 기다려왔던(플란다스의 개 이후 그의 차기작을 그리워 하지 않은 날은 감히 손으로 꼽아야 할 정도였다.)봉준호의 차기작으로 조금의 손색도 없는 위대한 걸작이다. 무지한 인간과 위선의 사회가 정확히 맞물렸던 시대에서 진정 억울하게 속출했던 피해자들의 영혼을 우리는 진정 위로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할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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