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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목]"특별한"절제미. 밀레니엄 맘보
rose777 2003-05-30 오전 10:18:24 1645   [3]
절제할수 있다는 것은 통제할수 있다는 말과 같다. 감정의 통제는 걸작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와 같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가 위대한 가장 큰 사유는 무엇보다 뛰어난 "절제미"에 있다. 1980년대 영화사가 기억할 최대의 걸작 [비정성시](나는 얼마전에서야, 아트시네마에서 주최한 허우샤오시엔영영화제에서 비정성시를 볼수 있었다.)의 위대한 드라마구조는 신경끝이 잘려나갈 정도의 "감정의 자극과 오열"로 가득한 비극의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거장은 비극을 끝내 관찰하고 역사의 비극과 생존(현재)자들의 비극의 고리를 찾아내 그것을 "가족"의 "계단"위에 침착하게 올려놓는다. 끈질긴 롱테이크는 인물을 냉정하게 주시하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생략하진 않는다.

<샌드위치맨>(1983)(나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중 (겨우)<비정성시><샌드위치맨><동동의여름방학>를 봤다.)은 허우샤오시엔이 보여준 위대한 절제미가 극치를 이루는 작품이다. 가난을 지켜보는 작가의 눈은 한1초도 생략하려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가장이, 자신이 덮던 이불을 찢어 샌드위치맨의 복장을 만드는 장면을 보는 내내 요동쳤던 나의 심장소리를 어찌 잊으리. 그 지독한 가난의 문고리에 현미경을 들이댄 거장은 말없이 가난을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가족의 가난의 끝이 다음세상에서 이어질지라도 삶은 영위된다. 포기하는 순간 쉽게 놓아질 끈처럼 얇아보이는 가난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기고 끔찍한것인가를 들여다보는 감독의 눈은 참으로 끔찍할만큼 침착하다. 결정적 순간에, 과다한 음악을 이용하여 감정을 자극시키려고 하지도 , 과량의 대사로 설명을 하려고도, 유려한 카메라로 관객의 심정을 자극하려고도 하지 않는 이 끔찍한 거장의 카메라는 늘 그렇듯. "고정"되어 있을뿐이다. 어쩌면 그 "고정"된 자리에 변치않는 "가난"과 "오류"와 "기억"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우샤오시엔의 첫번째 밀레니엄 프로젝트,(원래 알려지기는 3부작으로 알려졌으나, 그 편수나 과정이 변화될수 있다고 한다.) [밀레니엄맘보]는 그간 단한번도 보지 못한 허우샤오시엔의 (형식미라는 면에서)"특별한"영화라고 할수 있다. 인물들의 이동장소는 늘 그렇듯 "반복"되지만(비키와 하오하오의 집-바-잭의집-유바리의 설경) 엄청난 시간의 파장(10년)은 인물을 주목하면서 이동시킨다. 매우 이상한 느낌(동시에,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10년전(현재는 2011년이다. 그러니깐 10년전의 일은 정확히 2001년에 일어난다.)의 주인공 비키(서기)가 현재에 와있는 모습은 마치 사체((死體)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는 오직 과거일뿐이며 현재에 과거를 추억하는 비키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잊을수 없는 (영화를 볼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이영화의 오프닝을 잊지 않겠다.) 비키의 터널은 황홀하기 짝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허우샤오시엔의 "특별한"영화 [밀레니엄맘보]는 그간 그가 일관성있게 지켜오던 "과잉"의 이미지를 매우 의도적으로 차용해왔다. 자신의 일을 "그녀"라는 3인칭으로 지칭하는 나래이션과 형언할수 없는 두터운 색감의 이미지. 디제잉되는 하오하오의 테크노. 클로즈업. 투시카메라를 통과해서 누워있는 인물등은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항상 그녀를 찾아다녔다." . 비키의 오프닝 나래이션은 이영화가 이미 과거의 시간을 돌이키려는 이야기임을 말해준다. 극도의 클로즈업이 바의 내부를 따라다니기 시작하며 영화는 과거에 극도로 가깝게 다가선다.(지금은 2011년임에도 불구하고.) 그시간 그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마술을 하던 그여자와 그남자의 집으로 이동한 카메라는 침묵으로 일관하기 시작한다. 말없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비키의 몸에 다가서는 하오하오를 뿌리치려 하는 비키에게 마저도 대사를 빼앗는 감독의 일관된 절제미는 비록, 이영화가 지나온 그의 영화와는 사뭇다른 과잉의 이미지들을 차용했을지라도 인물을 주시하는 카메라는 여전히 떠벌릴 생각도 관객을 설득할 생각도 없음을 말해준다. 비키와 하오하오가 백수이며, 하오하오가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단식을 감행하고 대량의 각성제를 들이키며 실내에서 디제잉을 한다는 설정은 "밀레니엄"이라는 단어가 주는 비릿한 탄식을 상징한다. 세기가 바뀐 시점에 서있는 하오하오가 할수있는것은 현실을 "회피"하는것 뿐이다. 중요한것은 그들이 "회피"한곳에 (예정대로라면, 보통의 드라마구조라면)존재해야 하는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의 선택의 원인이 "목적없는 회피"라는 사실은 감독이 왜 세기의 변혁앞에서 3부작을 기획했는가에 대한 질문의 정확한 답이 될수 있을것 같다. 끔찍한 무목적의 질주가 1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그녀의 기억안에 고스란히 단 한순간도 버려지지 않고 담겨져 있다는 사실은 부담스러우리만치 남루하다. "희망"없는 자리에 유일하게 하오하오가 기댈수 있었던 비키가 떠나버릴까봐 비키의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그녀의 외출에 주목하는 이 젊은 남자는 결국 비키와 헤어진다. 아니, 비키가 그를 떠난것이다.


감독은 비키에게 두번째 희망을 던지기 시작한다. 비키가 만나는 두번째 남자 잭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애들은 시간당 80TN을 받아. 그걸로도 행복해보여. 평범한 삶이지.어때 ? 해보지 않을래?"라고 묻는다. 동시에, 감독은 묻고 있다. 가치기준이 변하지 않는 한 무목적의 상태는 지속될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런데도 왜 그들은 목적을 가지지 않는가? 아니 가질수 없는가?. 물론, 비키는 어떤 이유에서건 그렇게 살수도. 하오하오를 잊을수도 없다.

지금 현재 그들이 목적을 갖고 희망을 갖는다는것이 과연 가능한것일까? 돈이 필요한 젊은이들이 손쉽게 바에서 일하고 마약을 손에 넣는 과정이 얼마나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되고 마는지. 원치않는 군복무를 이행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민이 해결될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것이 얼마나 무모한짓인지. 감독은 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반복한다. 유바리로 떠난 비키의 모습은 마치 환영과 같다. 이루 말로 형언할수 없는 아름다운 필름은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순간이다. 일본의 이미지를 전작들에 이어 (앞으로도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질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이야기의 언덕위에 올려놓은 감독은 현실과 완벽하게 이질적인 느낌의 유려한 설경으로 묘사했다. 눈쌓인 언덕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얼굴이 떼어져 나온 비키의 얼굴 자국을 한동안 말없이 응시하는 카메라의 역할은 [밀레니엄맘보]가 결코 잊을수 없는 모든것에 대한 고의적인 회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고의적인 회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비키의 과거는 진정 끔찍해보인다. 단 한순간도 술과 담배와 음악없이 있는적이 없으며 끊임없이 샤워를 한다. 그녀의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잠시라도 나는 그녀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에 영화가 보여주는 숨막히는 유바리의 설경은 그 끔찍한 과거를 고의적으로 잊으려고 몸부림치지 말라고 위로한다. 유바리영화제를 찾아간 비키의 얼굴자국처럼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그위에 새로운 눈을 얹으려고 노력하진 말자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과거의 자리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아지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탓하고 울지는 않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떠나버린 잭(잭은 일본으로 갔다. 그곳을 중심으로 또다른 이야기는 펼쳐질 제2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이 남기고간 비키의 휴대폰과 전화기에 남긴 메세지처럼 잭은 진심으로 비키가 일본으로 건너오길 기다릴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는 여전히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오가는 전동차소리와 약한 조명불빛아래서 잠을 청할수밖에 없지만 그녀가 아주 오랫동안 그 침실에 머무를것 같지는 않다.

[밀레니엄맘보]는 매혹적인 색채와 절묘하게 교차되는 조명. 가슴을 후비는 선율(나는 내가 기억하는 모든 OST명반들을 밀레니엄맘보에서 흐르는 음악들앞에서 마치, 꿈처럼 모조리 잊어버렸다. ) 극도의 클로즈업등으로 설명될수 있는 [특별한]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다. 서기의 놀라운 연기와 이미지는 [밀레니엄]의 이미지와 매우 적절하게. 부합된다. 왜냐하면 서기의 배우로서의 삶은, 이제 막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맘보]는 숨막히는 영화다.

잊을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지금의 우리가 희망조차 갖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의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시아의 위대한 거장 허우샤오시엔의 첫번째 밀레니엄 프로젝트, [밀레니엄맘보]는 그래서 위대하다. 색깔옷을 입은 거장의 모양새는 달라졌으나 마음가짐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변치않는 자리에서 카메라를 고정하는 감독의 앵글앞에서 변하는것은 오직 세상일 뿐이다. 밀레니엄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가운데 던져졌다는것은 슬픈현실이다. 깨지 않을 꿈처럼 모든것이....영원히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면 , 우리는 얼마나 많은것을 해낼수 있을까. 잃어버린 사랑도 그렇게만 찾을수 있다면 .... 나는 그 터널을 몇번이고 내달리리라. 숨이 턱까지 올라와 가슴이 아려올지라도 잃어버린 사랑과 기억을 되돌려 받을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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