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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복서 '주온' 주온
yonguy76 2003-06-24 오전 5:21:37 1435   [5]
공포감이란 무엇일까? 나는 두가지로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공포의 정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양극단에 서 있다. 하나는 공포는 현실에서 기인한다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현실에서의 공포가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공포감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기인한다는 말은 간단하다.

쉽게 말해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느끼는 두려운 감정이 공포라는 것이다. 성적에 대한 공포,

취직에 대한 공포, 사랑에 대한 공포 등 현실에서 우리가 자주하는 걱정이 공포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의 공포심을 극대화 한 영화가 우리가 흔히 아는 '싸이코'나 '샤이닝'같은 영화다.

'싸이코'와 같은 영화는 사람들이 언젠가 겪게 될 자립에 대한 공포를 '샤이닝'은 타인과의

지역적, 심리적 격리에 대한 공포와 가정의 가장 믿음직한 존재이지만 가장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라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 막연히 느끼게 되는 공포를 극대화 한 영화다.(영화를 보면 자연히

느끼게 된다. 믿음직하던 가장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상대적 약자인 부인과 아이가 느끼는 공포를...)

이와는 다른편에 서있는 공포감은 상상력이다. 가만히 누워있는 방 안의 벽지가 괴물 형상으로

보인다던지 등 뒤에 누군가 있는 듯한 공포심은 상상력을 통해서 형성되고 구체화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이러한 상상력으로부터 오는 공포에 의존한다. '주온도 역시 이런 공포심에

기대고 있다. '주온'이란 말은 '주원'의 일본어 발음이다. 원한을 품은 영이 한 장소에 머물러

이후에 그 장소에 연관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흉가와 같이 생각하면

되는거다. 이것을 잘 표현했다면 주온은 매우 괜찮은 영화가 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영화다.

기괴하고 충격적인 장면의 표현에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이것은 일본식 공포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하는 '사다코 워킹'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온은 여기에 현실을 통해 느끼게 되는 공포감의 영역까지 넘본다. 물론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주온은 이 두가지 공포의 연계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고 그에 따라 합치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에서의 공포는 단지 하나의 엽기사건정도로밖에 머물지 못하고

이는 공포감을 점점 극대화하는데 실패한다. 장면장면의 단편적인 공포감은 이끌어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공포사진을 몇 장 보고 느끼는 공포감이라고나 할까?

앞서도 말했지만 주온은 몇 번의 클라이막스에서(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단편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섬뜩한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온다.

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포는 그야말로 당사자의 상상력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의무감이라도 있는지 사건이 끝날때마다 꼭 한 장면씩 기괴한 장면을 배치한다.

그리곤 바로 넘어가버린다. 처음 한 두번이야 섬뜩하기도 하지만 이게 자꾸 반복되니 오히려

귀여워보인다. 면역성이 생긴 후에는 왠만한 장면은 특수분장을 살펴볼 정도로 감흥이 없어진다.

상상을 통해서 한없이 커질 수 있는 공포심을 친절하게 실체를 꼭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오히려

공포감을 빼앗아가버린다. 한 장면에 깜짝 놀라기는 하지만 공포감의 유지에는 실패해버렸다.

이는 고전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싸이코'와 '싸이코'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링'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싸이코'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이 끝까지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란 존재가 제대로 보여지지도 않는다. 마지막에 한 장면을 보기전까진 주인공의 행동자체가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 그런대도 공포감은 점점 극대화되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에 기괴하게

서있는 집과 주인공의 모습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링'은 알다시피

마지막 '사다코 워킹'으로 모든걸 제압해버렸다.

공포는 감정이다. '왜'가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느끼는 감정인데 극중 인물이 왜 놀라고 있는지 매번

친절히 가르쳐주면 관객은 그 영화에 감정이입을 시킬수가 없는거다. (관객에게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불친절한 영화가 되버렸다.)상상의 여지를 차단한 공포영화는 큰 한 방을 날릴 수가 없다.

주온은 큰 한 방이 없다. 잽은 몇 번 날아오지만 나중엔 다 피할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잽만 날리다 경기를 끝마친 권투선수와 같다.

눈에 멍은 들게했지만 다운은 시키지 못한 복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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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2002, The Grudge : Ju-on / 呪怨)
제작사 : Pioneer LDC, Nikatsu, OZ, Xanadeux / 배급사 : 프라임 픽쳐스
수입사 : (주)동숭아트센터 / 공식홈페이지 : http://www.ju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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