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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푸른공간>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들여다본다. 도그빌
spaceblu 2003-08-12 오전 1:45:30 2258   [11]
삶의 고단함을 영화의 판타지로 푸는 사람들에게 "라스 폰 트리에"라는 이름의 이미지는 낯설면서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그의 전작 <어둠 속의 댄서>에 이어 <도그빌>마저도 칸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면 아마도 더더욱 이 낯선(?) 감독의 영화를 보기가 걱정스러울지도 모른다. 거장이라는 이름과 영화제에서의 호평은 때로 이렇게 영화 자체와는 무관한 의미의 무게를 가진다. 그러나, 영화가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이거나 구조적이진 않을까? 너무 무겁고 진지해서 그 무게에 잠들어 버리지는 않을까? 잠시라도 이런 걱정을 했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기우에 불과하다. 3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을 힘있게 끌고가는 영화 자체의 엄청난 매력과 더 좋은 연기를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싶을 정도의 호연을 보여주는 "니콜 키드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록키 산맥 어디엔가 자리한 작지만 평온한 마을 "도그빌". 그 평온함을 깨는 한 밤의 총소리가 들린 후 창백한 불안감을 드리운 미모의 여인이 이 마을로 숨어든다.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갱에게 쫓기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모를 비밀스런 느낌의 그녀를 한 눈에 사랑하게된 톰은 그녀를 숨겨주고 마을 사람들에게로 인도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퍼져 나오는 낯선 향기에 불안해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주어진 2주의 시간동안 그녀는 "도그빌"의 천사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평온함도 잠시, 경찰이 붙여놓은 현상 포스터는 마을 사람들을 동요케하고, 그녀의 비밀을 지켜 주는 대가로 그레이스는 마을 공동의 노동력임과 동시에 성적착취의 대상이 된다. 탈출시도도 수포로 돌아간 그레이스는 개목걸이를 찬 채 다시 그 곳에 머무르게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뒤통수를 후려치는듯한 결말을 향해 내달린다.

이 영화, 그 시작부터 참으로 독특하다. 배경은 분명 록키 산맥의 어느 마을이건만 눈에 보이는 건 뻥 뚫린 공간과 하얀 분필로 나누어져 있는 각각의 집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가구들뿐이다. 그 불가능할 것 같은 형식의 틀 안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신문을 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을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지극히 실험적인 듯 보이는 최소한의 무대장치는 벽과 가구로 꽉 찬 실사의 무대보다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가상의 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은밀한 시선과 행동들로, 때로는 사람들의 심리상태까지도 설명해주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적나라한 나레이션으로 우리는 이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혹은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저 심연 깊숙이 묻어 놓았던 인간 본성으로 들어간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그 불완전함을 전제로 존재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에 가까운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나약함으로 인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것은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도그빌"의 사람들도 겁 많고 소심한,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그들은 바깥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또 자신들의 세상에서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전체 회의를 하고 의견을 모으며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건드리면 바스라져 버릴 것만 같은 유약한 그들에게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그레이스"는 너무도 모호한 대상이었다. 천상에서 내려온듯한 창백한 미모와 우아한 자태의 그녀는 어느 모로 봐도 자신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타인"이었으며, 이제 그들은 그 외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할지 방치해도 좋을지 판단을 해야만 한다.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망울로 "그레이스"를 지켜본 그네들은 이제 그녀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녀로 인해 그네들의 삶은 조금씩 윤택해져가고 예전의 평온함이 마치 지루함으로 느껴질만큼 마을에도 조금씩 생기가 흐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란 또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 "그레이스"의 비밀을 알고 난 뒤 마을 사람들은 나약함 뒤에 바짝 엎드려 그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자신 마음속으로부터의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 "그레이스"는 더 이상 천상의 존재가 아니며 그녀로부터 받은 축복과 미소는 당연한 보답이자 의무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존재는 마을 공동의 노동력이자 성적 노리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레이스"는 그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처음에 시도되었던 성폭력에 대한 반항이나, 관객들에게 깊은 탄식과 절망감을 안겨주게 되는, 실패가 되어버린 탈출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그 모든 실패를 끌어안고 여전히 "도그빌"에 귀속되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영화는 이제부터다. 이제 감독은 3시간 가까이 기다려온 관객들에게 마지막 카드를 던짐으로써 숨이 턱 막혀버리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한다. "도그빌"의 주민들에게 돌을 던질지언정 심정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꼈든, "그레이스"의 참혹한 모습에 더할나위없는 분노를 느꼈든, 감독이 날리는 마지막 카운트 펀치는 그 어느 누구의 마음도 편히 극장 문을 나서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듯, 가슴 한 구석을 누르는 서글픈 무거움을 안겨준다. 비로소 우리는 깨닫는다. 진정 이것이, 유약하고 나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이었는가. 이것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내 안의 모습인가. 인간이라는 존재감 자체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차마 고개 들어 눈빛 맞추기 어려운 순간을 이 감독은 태연히 그리고 너무도 완벽하게 선사하는 것이다.

<도그빌>은 실로 엄청난 영화다. 여태껏 이토록 인간의 비열하고 세속적인 모습을 이토록 냉정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감독은 끝까지 잔인함을 잃지 않으며 친절하고도 친절한 나레이션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끝까지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억하게한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너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든 또는 내 이웃의 모습이든, 어쩌면 거울 너머의 나일지도 모르는 모습을 팔짱끼고 바라보는 것은 결코 편한 경험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 "도그빌"의 주민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라도, 당신이라도, 우리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도그빌>을 보며 마음 편히 극장 문을 나설 수 없는 진정한 이유이다.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들킨 것처럼, 좀도둑질을 하다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친 것처럼, 싸움을 하다 밀쳐낸 누군가의 머리가 둔탁한 어디엔가 부딪혀 죽어버린 것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한 것처럼, 나는 아니라고, 내가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는 것! <도그빌>은 인간의 심성을 파헤쳐 그 본성의 바닥을 치는, 인간에 대한 가장 잔인하고도 위대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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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2003, Dogville)
제작사 : Kuzui Enterprises, Canal+, MDP Worldwide, Summit Entertainment / 배급사 : 코리아 픽쳐스 (주)
수입사 : 코리아 픽쳐스 (주), 스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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