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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z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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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4 오후 1: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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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믿어요......"
[4인용 식탁]
- 이수연 감독
올 여름 호러물의 강세는 단순한 바람이나 '납량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 나라는 호러장르의 불모지이다. 호러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글과 영상등의 매체들이 가장 적게 출시되고 또한 가장 적게 소비되는 사회로써, 호러라는 장르는 특정 소수를 위한 매니아적인 하나의 취향정도로 인식되고 사용되어져 왔다. 그런데 최근 이어지고 있는 국내 영화계의 공포물 바람은 흥행이라는 날개를 타고 쉽사리 잦아들것 같지 않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사회적 추세가 호러장르의 메이저 화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지금 이 시점이 한국 영화계가 가장 멀리 바라보고 높게 날아가고 있는 이른바 '르네상스' 의 시기라는 것을 이러한 추세들이 반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연하자면, 호러라는 장르 자체가 가장 작가적이고 실험적인, 그리고 가장 자유로운 영화 어법이라는 것이다. 호러물은 관객의 감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의 연출 역량이 가장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드러나며, 장르 자체의 저예산성 덕분에 감독이 좀더 자유로운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요소가 감독들로 하여금 호러장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최근의 수준 높은 작가주의 호러물들의 등장 배경을 설명케한다. 또한 여기에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수년전부터 생성된 관객들의 높은 눈높이가 적절하게 반응하여 전에 없는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였으며,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은 두번째, 세번째의 또다른 신인 작가감독의 등장을 가능케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최근 몇년동안 크게 흥행하거나 논객들의 주요 이야깃거리로 등장하였던 영화들 치고 호러적인 코드가 삽입 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 몇개나 있는지 직접 세어보길 바란다.
특별히 최근 호러물들의 추세를 살펴보면 장르안에서 이야기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장르 밖 에서 평범한 이야기를 장르의 코드를 적용시켜 풀어나간다는 특징이 있겠다. 오히려 골수 호러보다는 타 장르와의 크로스 오버를 통해서 성공적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여름 개봉한 호러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만이 장르 안에서 너무나도 도식적인 이야기 전개를 펼쳤으며, 여타 작품들은 앞서 말한 반대의 길을 걸어 나갔다.
서문이 지나치게 길었는데, 아무튼 이러한 추세의 끝에 '4인용 식탁' 이 자리했다. 마찬가지로 본격 호러물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감성의 흐름에 따라 배열한 '드라마' 에 가까우며, 호러코드를 적절하게 응용하면서, 관객과의 정서적인 합의점을 찾아 가는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 작품은 올 한해 개봉한 작품들 중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한 수작이며, 다중,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뛰어난 OPEN TEXT 이다.
본 작품에 던져진 하나의 논쟁거리는 바로 이 오픈 텍스트라는 특성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 인지 알수 없다는 일부 관객들의 불평은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불완전한 이야기 구조로 인한 내러티브의 부재 혹은 비논리성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려있는 오픈 된 영화구조와는 명확히 구별되어야 할 성질이다. 이러한 열려있는 이야기 구성은 본 작품이 성실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기승전결식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아닌, 감성의 흐름에 따라 극을 진행시키면서 지극히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지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데이빗 린치' 의 '로스트 하이웨이' 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와 같은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스토리 텔링 방식과 상당부분 유사한 점을 발견할수 있다. 둘다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대로 여과없이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점은 같은점으로 볼수 있고, 차이점이라면 린치의 작품들은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이같은 방식으로 '왜곡하여' (인간의 눈은 사실을 왜곡하며, 따라서 절대적으로 인물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작품들은 왜곡된 형태로 관객에게 비추어 진다.) 보여주는데 그치지만, '4인용 식탁' 은 여기서 나아가 우리가 이야기 하는 하나의 '진실' 이 정말로 정직한 있는 그대로인것인지, 혹은 우리가 보고 싶은대로 현실을 보면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라는 화두에서 출발하여, 결국에는 어떤 장면이 진실이었는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수도 없고, 그것을 알아낸다는 것이 사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하나의 '열린 이야기 구조' 를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는 사람들 각각이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만큼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보고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지, 혹은 내가 감당할수 있는 만큼의 현실인지' 라는 본 영화의 화두이다. 이것은 결국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온갖 상황들과 경험들 중에서 자신이 용납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것만을 '믿는다' 는 것이다. 결국 본 작품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통념' 을 "그것은 결국 니가 감당할수 있는 만큼의 진실일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야" 라고 까발리고 나선다.
이러한 성격은, 작품 내내 흐르고 있는 두가지 중요한 이미지에 있어서도 드러나는데, 그것은 '가족살해' 와 '추락' 의 이미지이다.
아무도 그 진실을 알수는 없지만, 일단 극중 전지현은 자신의 아이를 죽였고, 김여진은 자신의 어머니를 먹었으며, 박신양은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였다. 또한 극 초반에 박신양으로 하여금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끔 하는 주요 모티브가 되는 두 아이의 죽음 역시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저지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그것은 '가족' 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완벽하며 깨어질수 없는 초유의 '믿음' 으로 결속되어 있는 이 공동체마저도 깨어질수 있으며, 그것이 외부의 침입이 아닌, 나와 가까운 가족으로 부터 야기된다는 가장 근본적인 공포이다. 이것은 또한 최근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족들 간의 살해사건들과, 놀랍게도 이제는 그러한 일들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경종일 수도 있다.
'추락' 의 이미지 또한 계속하여 등장하고 있는데, 전지현의 기면증세가 시작된 계기가 한 여자의 투신자살에서 비롯된 것 하며, 김여진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우물에 추락했던 것, 그리고 전지현이 역시 투신 자살하게 되는 것이 그러하다. '추락' 에 대한 감독의 시각 를 알아낼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것이 '탈출구' 가 아닌것임에는 틀림없다. '진실' 로 다가 가기 위한 발걸음, 혹은 '믿음' 을 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수도 있다. 전지현의 모든 말을 믿겠다던 박신양은, 그녀가 들려준 진실을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믿음을 거두어 버린다. 그녀는 타인에게 믿음을 받을수 없을때 자신의 존재이유 가 무색해진다고 생각했고, 믿음을 되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투신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지현 역시, 아이를 죽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까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거부하고 있다.)
극 마지막 장면에서 박신양은 4인용 식탁에 혼자 앉아서 스프를 먹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점차 뒤로 빠지는데, 점점 아파트 전체의 풍경이 떠오르게 된다. 이와 같은 장면을 나는 '워킹걸' 의 마지막 장면에서 본적이 있다. 워킹걸의 마지막 장면은 같은 건물 안에 수많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남성들 처럼 여주인공 역시 당당하게 그 안에 편입되어 일을 하고 있다는 남성사회에서의 '성공' 과 '화합' 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동일한 장면 구성에도 불구하고, 박신양은 '화합' 이 아닌 '소외' 와 '고독' '격리' 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수많은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아파트에서 박신양은 홀로 식탁에 앉아 한곳을 응시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밖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홀로 '격리', 혹은 자의적인 '소외' 를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또한 박신양이 이미 손상 시켜버린 식탁이 복구되어 있는 것과, 의도한것인지는 모르지만 아파트 건물의 외벽이 불에 그을려있는 듯한 모습에서, 이 공간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 아닌 박신양의 자의식 속인 것으로 판단되며, 그 안에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아파트 내의 다른 가정들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면서 복잡다난한, 통념상 '건강해보이는' 다른 가정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었으면 더욱 효과적 으로 이미지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전지현의 환영에게 '아직 뜨겁다' 고 이야기 하는 것은, 이전에 박신양 의 목사 아버지가 이야기 한 '뜨거움을 느끼는 방식' 과 더불어 해석할수 있겠다. "어른들이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 시원하다는 게, 사실 아픈거지.” 라는 말은, 스프에서 뜨거움을 느끼고 있는 박신양이 성장에 실패한 , 혹은 거부하는 어른이라는 혐의를 부정할수 없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결국 본 작품은, 성장할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 작품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조명' 이다. <장화홍련>에서 기막힌 색감과 공간의 공포를 경험하였지만, 본 작품의 조명으로 생성하는 공포의 이미지는 기대이상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극중 인물들이 초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할때 마다 서서히 밑에서 부터 올라오는 희미한 빛은 상황의 공포감을 극대화 하는데 크게 일조하는 부분이다. 또한 가족 개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식탁의 조명역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모티브이다. 결국 그 조명과 식탁을 손수 산산조각 내어버리는 박신양의 모습은 가족파괴와 소외에 대한 자의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빛을 다루는 감독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라는 단서는 극 내내 보여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배우들의 연기를 돌아보면, 극의 성격상 심리 표현에 까다로웠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뛰어난 수준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신양은 역시 항상 '열심히 하는 배우' 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절대 앞 뒤 상황에 튀지 않는 설득력있는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지현의 경우, 밑으로 짙게 깔리는 저음 위주의 대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실 어느정도 어색한 부분을 지울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장 작품을 잘 이해한 연기자는 전지현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표정은 물론이거니와, 자그마하고 사소한 손동작 같은 행동 들 마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한 복선이며 모티브로써 다가왔다. 아마도 본 작품 으로 인해 가장 재평가 받아야 할 배우가 아닌가 싶다. 또한 그 밖의 김여진이나 유선 , 박원상 같은 배우들도 누구하나 어긋나거나 튀지 않는 작품에 녹아드는 듯한 훌륭한 연기로써, 본 작품의 성과에 이바지 하였다.
본 작품을 보면서 문득 <소름> 이 떠오르는 것은 본인만의 생각은 아닐것이다. 두 작품 모두 가족살해가 등장하며, 평범한 사물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소름에서는 아파트가 4인용 식탁에서는 식탁이) 과정도 신기할정도로 닮아있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개봉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닮아있는데, 극도의 경제적 공황속에서 기존 의 숭고한 가치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체되어가고 있는 상황이 그러하다. 두 작품 모두 주연 여배우의 재평가가 이루어질만하다는 점 또한 들어맞는 재밌는 점이다. 장진영은 <소름> 에서 뛰어난 연기로 기존의 말괄량이 이미지를 벗었으며, 전지현 역시 기존의 엽기적이면서 섹시한 이미지를 벗어나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소름> 은 평론가들의 호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완전히 참패했다. <4인용식탁> 의 경우 어떻게 될것인지 지켜보는것도 재미있겠다.
글 초반에 이미 말했듯이, 지금은 명백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이다. 최근 흥행하고, 인정받고 있는 작품들 모두가 몇년 전만 하더라도 절대 흥행할수 없는 작품 들이었다. 반대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같은 작품들은 오히려 대박을 터뜨릴 만한 흥행작 들이었다. 이 같은 현상들은 앞서말한 바와 같이 작가주의 신인 감독들의 등장과, 이들에게 제작비를 대어주는 제작자의 의식전환(차승재 같은), 그리고 관객들의 높아진 수준과 반응에서 비롯 한다. 다시말해, 이 같은 르네상스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계속해서 꾸준하게 뒷받침 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한 시각에서 볼때 엄연한 서비스 상품인 영화 산업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관객의 몫이 크다. 따뜻하고 기대에 찬 시선으로 앞으로의 영화계 행보를 함께 바라보기를 청하는 바이다. 더불어서, 호러장르를 표방하면서 앞으로 개봉을 준비중인 '거울속으로' 와 '아카시아' 도 부푼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되돌아 보면. 우린 정말 행복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 그렇지 않은가 ? !
[ozzyz]
BOOT 영화비평단/기자 허지웅 (www.boot.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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