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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per] 수영장에 다녀왔습니다. 그 누드와 섹스의 무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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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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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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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1 오전 9:3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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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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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수평선을 향해 거침없이 터진 넓푸른 바다로 나서기엔 수줍은 중년의 여자, 자신의 은밀한 욕구처럼 가두어져 있는 수영장의 관능을 즐길 줄 아는 젊은 여자.
사라는 중년을 넘긴 유명 추리작가다. 하지만 이제는 쭈글어져가는 그녀의 주름살 마냥, 더 이상 우려낼 것이 없는 작가로서의 그녀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편집장의 배려로 글을 쓰기 위해 찾아간 천국같은 프랑스의 별장. 간만에 맛보는 여유와 산들바람은 스러져가는 그녀의 영감을 흔들어 깨우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들이닥친 편집장의 딸 쥴리는 한눈에 보아도 불량기운 탱탱한 혈기왕성 낭랑 18세다. 고요함을 송두리채 휘젓는 매혹적인 쥴리는 모든 면에서 사라와 다른 세계다.
앞뜰의 수영장을 덮고 있는 커버를 손끝으로 들춰보고는 바로 덮어버린 사라와 달리 이내 덮개를 열어 젖히고 거칠것 없는 청춘의 탱탱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나보란 듯 투명한 물속에 내던지는 쥴리의 행동은 이 두 여자가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젊음과 늙음, 천박함과 고상함, 무모함과 사려깊음 을 대표하는 두 여자의 대립은 점차 커져 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속성을 가진 상대방을 차츰 질투하게 된다. 섹스의 교성은 밤마다 별장을 울려대고 질펀한 육체관계의 증거인 양 아침마다 널부러져 있는 쥴리의 모습에 분노하던 사라는 자신속에 구속되었던 섹스의 충동, 누드의 유혹, 자유분망한 행동들이 은밀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하나둘씩 풀려나면서 점차 쥴리라는 여자애의 사생활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사라는 쥴리의 읽기를 훔쳐보면서 베일에 쌓인 쥴리를 소재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이 때부터 서로 다른 두 세계는 은밀하게 교접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처럼 사라의 눈을 통해 쥴리라는 여자를 관찰해 나가지만, 어느 순간에서 부터 사라는 더 이상 이야기의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쥴리와 더불어 뜨거운 햇살아래 몸매를 드러내기도 하고 남자를 유혹하기도 할 뿐 아니라 쥴리가 저지른 살인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 'Swimming Pool(수영장)'은 바닷물과 달리 결코 두려움 의 대상이 아니라 가둬진 물의 이미지 - 통제 가능한 - 가 주는 은밀함과 저지름의 유혹을 상징한다. (수영장에 있는 쥴리의 눈부신 육체의 등고선을 따라 흐르는 카메라 의 고요하고 끈적한 움직임은 오히려 영화 '쇼걸'에서의 무자비한 수영장 섹스신이나 '컬러오브나이트'의 수영장씬 보다 더욱 에로틱하다) 따러서 영화 'Swimming Pool'은 사라의 심리적 변화와 행동의 일탈을 통해 우리 자신의 규범적인 이성 아래 옭아져 있는 프리 섹스, 거침없는 노출, 살인 등에 대한 갖가지 충동들을 꼬드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유명한 프랑소아오종 감독 특유의 초강력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꽁트나 코미디의 그것처럼 이 영화도 순간적인 마지막 반전을 통해 관객들이 보아 온 1시간 30분의 장면들을 모두 뒤집어 엎는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풍기던 에로틱하고 미스테리한 뉘앙스를 한번에 몰아내 면서 지금껏 보아온 사실들이 단지 미스테리 형식만을 차용한 전혀 다른 이야기 였음을 알게 되면서 머릿속은 온통 까매진다. 이 강력한 반전은 관객들로 하여금 대체 어디서부터, 또한 무엇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처음부터 하나씩 되짚어 보게 만든다.
결국, 관객은 진실과 환상의 경계에 각자 나름대로의 분리대를 놓아보겠지만 사라와 쥴리가 저지른 행동들은 뭐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판단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 'Swimming Pool' 이 갖는 현실과 환상의 교묘한 넘나들기 는 축축한 이 긴 여름의 끄트머리를 잡아챌 알싸함으로 가득하다.
- Epilog - 몇해 전 여름, 인도양의 작은 섬에서 크리스탈빛 해변 수영장에 나 홀로 몸을 담그고 바다를 내려 보았을 때 어디까지가 수영장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구분이 안가는 기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시사회장을 나오면서 그 이질적인 두 푸른물이 빚어 내던 치명적인 일탈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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