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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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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오후 12:4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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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 업을 네 가슴속에 평생 묻고 살아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악하고 처음부터 선한 이가 어디 있을까. 모두가 내면의 선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장난으로 물고기 개구리에 돌을 매달고 놀면서 히히덕 거리는 동자승에게 스님은 똑같은 짐을 지우면서 그 업을 네가 가슴속에 묻어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죽은 물고기를 보면서 펑펑 울음을 쏟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 모두가 상징적인 묘사일 뿐이다.
인간들은 선악의 업을 지고 태어나거나 혹은 살아가면서 많은 악행과 선행을 행하게 된다. 하지만 다 응보로써 빚갚음을 받게 되는 것을..
여름... "저절로 그렇게 된것이니라....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는다."
아이는 커서 청년이 되고 절에 찾아온 한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알수 없는 깊은 병에 빠진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느낀 소년에게 이제는 그녀가 떠날때임을 스님은 알려준다.
늘 여성비하의 시각으로 영화를 그린다는 김기덕 감독. 이번에는 그런 과도한 묘사는 없었지만 어쨌든 여성이 육체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지면서 소년과의 관계에서 차츰 병세가 호전되는 여자에게 묻는다. "이제는 다 나았느냐" "네, 아프지 않습니다." 성적인 나눔이 약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인간관계의 소통이 성을 무시할 수는 없음을 말해주는 걸까.
죄책감을 느끼는 스님에게 그건 죄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한마디 일침을 놓지만 청년은 스님을 원망하며 떠난 여자를 좇아 길을 떠난다.
가을... "그녀를 사랑한 죄밖에 없습니다".. "제가 좋으면 남도 좋은 것을 몰랐더냐. 그렇게 참을 수 없더냐."
장년이 되었으나 살의를 잔뜩 품고 돌아온 그에게 스님은 그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만 쉽지않다. "閉"자를 써서 얼굴의 구멍을 막고 자해하려는, 남을 향한 살의를 자신에게조차 돌리는 그에게, "남을 죽인다고 자신을 죽일 수 있는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화를 참는다는 것, 자신을 다스리고 일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이지. 이세상의 경쟁상대는 언제 어디서나 "나"이다. 나를 딛고 일어서야 진정한 용기이며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반야심경을 가득 써서 피묻은 칼로 파게 하는 스님... 영화내내 야릇한 불협화음의 배경음악이 깔리다가 모든 것을 초월하듯 반야심경이 울린다. 가슴이 저릿한 대목이었다. 어떤 영화음악이 이보다 큰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살의가득한 얼굴로 돌아왔던 그.. 이제는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절을 떠난다. 한가지 얼굴에서 그 많은 표정이 담겨있다는 것. 역시나 얼굴은 복잡미묘한 인간 심성의 거울이었다.
겨울... "...."
떠나야 할때를 안 스님은 홀로 소신공양하는 다비식을 치른다.
중년이 되어 홀홀 단신 돌아와 자신을 위한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데. 어느날 자신과 같은 어린 아이를 품고 얼굴을 보라색 보자기로 가린 여성이 찾아온다. 계속 울어대는 아기에게 얼굴을 한번 보여주고 한밤중 길을 떠나나...
관객에게 보여지지않는 보자기 속의 얼굴.. 장년의 그는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혹시 자신이 죽도록 사랑했고 그 업을 떠안고 세상을 뜬 그여자의 형상이 아니었을까.
이 모두가 자신이 저지른 업보임을 깨달은 그는 어릴적 자신의 죄를 씻김굿하듯, 죽은 여인의 한을 풀어줄듯 "관세음보살"상을 안고 긴 고행을 치른다. 스님의 사리는 그저 세상속으로 흩어져 돌아가고...
이때 흘러나오는 명창 김영임의 "정선아리랑" 대중가요로도 불리웠던 이노래가 이처럼 처절한 슬픔을 담을 수 있을까.
눈물이 핑돈다. 나는.... 나의 업보는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많은 죄갚음을 하고 살아야 하는걸까. 그는, 그들은 또 어떤 업보를 지니고 있기에..
중년의 역을 본인이 직접 맡은 김기덕 감독도 그간 자신의 삶에서, 작품에서 저질렀던 죄값을 몸소 치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봄... 윤.회.생.사.
삶은 윤회하고 업보는 또다시 이어진다.
깊은 산속 잔잔한 물위에 오롯하게 떠있는 암자 하나. 물위를 정처없이 부유하는 하지만 늘 그자리를 맴돌 수 밖에 없는 生의 한 단면을 그리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사를 가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컸지만 왠지 그 곳에 이르기에는 나의 앎과 삶이 너무 짧고 미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봄에서 나온 강아지, 여름의 닭, 가을의 고양이, 겨울의 뱀.... 이 동물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잠시 궁금하긴 했지만 영화적인 분석은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므로 영화가 펼치는 그 고해에 몸을 맡기면 충분할 것이다.
김기덕이 사계의 아름다움을 담고 인간의 생노병사를 다룬 영화라는 서정적인 영화 한편으로 돌아왔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동승처럼 불계를 다루거나 서편제나 취화선처럼 자연의 풍광을 아름답게 묘사한 영화와는 역시 달랐다. 기존의 잔혹함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역시 자신의 색깔을 놓지 않는 김기덕표 영화여서 더욱 좋았다.
향내를 맡고 불경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불교에 적을 두었던지라 더 가슴 깊이 감동의 울림이 컸던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참 좋으면서도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기도 했던 하지만 최고의 두시간남짓이었다. 다시 보고싶습니다....
내 삶은 지금 생사의 사계절, 어느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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