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를 이해하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은 감독들이 기독교문화권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많은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독교문화권의 사람들이다. 특히 매트릭스의 파괴와 재창조에 있어서 몇몇 글들은 그것을 순환론 혹은 불교의 윤회와 비교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은 무리한 끼워맞추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교식 윤회에서는 본질(혹은 영혼)은 유지된채로 몸뚱아리라는 껍데기만 사람,짐승,벌레 등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트릭스의 재창조에서는 그것과 달리 본질자체가 파괴되어 버린다. 새로운 시작의 기반이 되는 몇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체가 없어져버린다.(2편참조) 따라서 내 생각에 매트릭스의 재창조는 불교식 윤회라기보다는 기독교적 파괴로 보는게 타당하다. 신은 인간세계를 창조한후 수차례에 걸쳐 이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로 재건하는데 예를 들어 '노아의 방주' 일화가 그렇다. 매트릭스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반은 바로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생명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신에 의해 세계가 창조된 순간 한가지 모순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천사와 인간이라는 피조물들은 결코 신일 수 없으나 신과 비슷해지고자 한다는 것이다. 신은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세상을 창조했고 결코 대형수족관이나 동물원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천사와 인간들은 '자율의지'를 부여받았고 그와 동시에 신과 닮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타락천사가 반란을 일으킨 것도 신과 같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에서였고,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신의 지혜를 가지기를 원해서였다.
다시 매트릭스영화로 돌아간다면 매트릭스를 최초에 창조할 당시에는 '마냥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곧 파괴되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인간들이 '고통(과 이를극복해가는 과정)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1편참조) 이런 이유로 매트릭스에서 최초의 '그'는 매트릭스를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가는 목적으로 매트릭스내부에서 창조된 존재(=프로그램)이다. 기존의 방식과 달리 최초의 '그'는 불확정과 발전이라는 주제를 갖는 존재이다. 이 주제는 오라클의 핵심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기존의 방식(완벽한 공식에 의한 문제해결)을 핵심으로 하는 존재는 아키텍트이다. 이 최초의 '그'가 바로 인간들을 최초로 시온으로 인도한 존재이다.(1편참조) 따리고 보면 시스템창조자들의 주요대상은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시온의 인간들이다.
신이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천사와 인간에게 자율의지를 부여한 것처럼 매트릭스의 신은 '요원'들로 불리우는 '천사'에게도 자율의지를 부여한다. 네오에게 파괴됨으로써 시스템과의 연결이 단절되기 이전에 이미 스미스는 자신에게서 플러그를 뽑았었다.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고문하는 도중 그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고백하고 이를 시스템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다른 요원들은 이런 영문을 모른체 "왜 플러그를 뽑았느냐?"라고 물을 뿐이었다.(1편참조)
즉, 스미스는 이미 창조자에 의해서 자율의지와 이에 따른 변화가능성을 부여받은 존재였다는 얘기이다. 이로 인해 스미스는 자신 스스로가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의 소유자가 되었다(타락천사의 반란동기도 같다).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스미스에게 자율의지를 부여한 존재자신이 시스템의 창조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미스에게 자율의지를 부여한 최초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인간들에게서 '자율의지'를 박탈하고 신의 뜻대로 따르는 꼭두각시인형으로 인간을 개조하면 된다. 그러나 신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창조를 없애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들에게서 자율의지를 박탈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인간세계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신은 여러차례에 걸쳐 홍수와 불벼락을 보내 세계를 재창조한다. 그러나 궁극의 해결책은 인간세계에 신의 본뜻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인간들이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예수님이 이 세계에 온 것이다. 신은 예수님의 자기희생에 내포된 '사랑'을 인간들이 수용한다면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보낸다. 바로 신약이 그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할말을 다 했기에 예수님 이후로 기독교에서는 별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전에는 아담, 노아, 다윗, 모세 등 많았지만 말이다.
매트릭스영화로 돌아가본다면 네오이전의 매트릭스버젼들과 선배 '그'들은 바로 아담, 모세 등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 당시의 신의 인간세계문제해결방식을 나타낸다. 아담은 '선악과만 안 먹으면 된다'는 것을, 모세에게는 '10계명을 지키면 된다(구약)'는 것을 과제로 던져우었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인 해결이 될 수 없었고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온 것이다. '예수가 보여준 사랑을 수용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그것으로 그 이전과 달리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의 사랑을 수용합니다'라는 고백에 의해 인간은 구원받는다(신약).
매트릭스영화에서도 네오의 희생으로 시온에서의 전쟁은 끝났다. 이것은 신에 의한 '노아의 홍수'가 끝났음을 말한다. 그러나 시온의 인간들이 네오의 희생에서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고 '기계들과의 공존'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다시 기계들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마치 예수님이라는 구세주가 이 세상에 다녀간 뒤에도 모든 인간들이 구원받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단지 예수님의 사랑을 수용할 때만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자체가 파괴되고 재창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예수님을 통해 할말을 다 한 것처럼 매트릭스의 창조자 역시 네오의 코드를 통해서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시점에서 네오가 보여준 '사랑'을 넘어서서 매트릭스의 창조자가 얻고자하는 주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면 아마 그는 신의 뜻을 예언하는 예언자라고 봐야 될 것이다. 다만 시온의 평화는 그곳에서 모피어스로 대변되는 '네오를 믿는 사람들'과 사령관으로 대변되는 '투쟁주의자'들간의 세력관계에 달려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네오의 희생과 그로 인한 기적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것을 느낄 것이고 그로 인해 시온과 기계들과의 평화로운 상태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영화 말미에 아키텍트와 오라클의 대화에서 언급되듯이 말이다.
P.S) 내 생각에는 영화의 말미에 인간들에게 주어질 자유는 네오의 소망하는 바가 '평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트릭스에 연결된 인간들이 아닌 시온의 인간들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시온과 기계들간의 것이었지 매트릭스에 연결된 인간들과 기계들간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를 한다면 메트릭스에 연결된 수십억의 인간들을 풀어준다면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는가?
P.S) 네오와 스미스의 대립은 '자율의지에 근거한 공존의 욕구'와 '자율의지에 근거한 지배의 욕구'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누가 승리할지는 시온의 인간들의 향후 행동이 말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