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니발은 한 정신이상에 걸린 천재적인 살인마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담은 영화라기보다는 그 엽기적인 살인행각과 인육을 먹는 정신병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불구인 주인공만큼이나 삐뚤어진 정신상태의 인물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며 착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결코 건드리지 않는 정의롭다고 생각할만할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인물로 주인공을 약간은 정당화 시켜서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렉터 교수는 이들 삐뚤어지고 정신병적인 성격의 타락한 영혼들을 구제하는 그러면서 그들의 고통을 즐기는 영혼의 구원자로서 자신을 자처하고 있는데 이 영화 한니발은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런 이상성격의 렉터 교수와 FBI요원 스털링과의 사랑인지 동정인지 모를 애매 모호한 정서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시사 용어중에 범인과 인질간의 묘한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일컫는 말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렉터 교수와 스털링 요원의 모습은 그런 스톡홀롬 신드롬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한 정신병적 살인마의 영혼의 순수성을 갈구하는 목마른 탐닉과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FBI요원간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로 표현될 수도 있어 보인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의 엽기적이고 과격한 살인행각은 그 살해된 피해자들의 탐욕과 집착을 생각한다면 주인공의 살인행위가 오히려 정당성을 가지는 듯 보여지며 피해자들이야말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정신이상적인 존재로서 사회에서 제거되야 마땅할 암적인 존재이기에 그들의 죽음이 오히려 당위적인 성격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정서인 영화속 사랑이야기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언급하면서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느꼈던 순수하고 열정적인 플라토닉 한 사랑을 렉터교수가 FBI요원 스털링에 대해 느끼는 사랑으로 감정 이입시키고 있기에 그가 스털링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문학적 표현을 통해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약간 아쉬웠던 점은 무수한 편집과 모자이크로 지워진 공포스러운 장면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가 당초에 의도했던 엽기적 살인마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별로 느낄 수 없었고 다만 편집광적 사랑에 집착하는 살인마의 자신의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으로서 사랑을 승화시킬려고 하는 한편의 굴곡된 사랑이야기를 보는 듯 했기에 공포물 장르라기 보다는 약간 괴기스러운 멜로물을 보는 듯 한 착각이 일었다. 한마디로 이 영화 한니발을 총평해 본다면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에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는 렉터 라는 주인공이 타락한 영혼의 고통을 통해 쾌락을 느끼며 벌이는 천재적 살인행각과 그와 연관된 피해자 라기 보다는 오히려 똑같은 가해자로 여겨질 만한 정신병적 성격의 피해자들이 뒤엉켜 이루어지는 고통의 유희로서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는 인과응보 적인 결말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수갑채운 팔을 벗어나기 위해 여주인공의 팔보다 자신의 팔을 자른 주인공 렉터 교수의 희생적인 선택은 순수한 영혼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씁쓸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함께 결코 주인공 렉터 교수가 자기 희생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단순한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는 스털링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자신의 더러워진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영화 속 피해자로 나오는 사회의 암적이고 병폐 적인 존재들을 제거해 가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원초적이며 엽기적인 가학적 살해방식을 통해서 자신영혼의 어두운 자의식의 정화와 함께 타락한 영혼들을 위한 영혼정화의 담당자 역할을 자신만의 의무감으로 수행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영화가 끝나면서 문득 들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