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 마치 2001년의 <친구>란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하다. 많은 부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뇌리에 박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8년 그때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이들에겐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그때를 지내온 이들에겐 추억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를 교묘히 파고들어 한국 영화사에 획을 과감히 찍은 2001년에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까지 4명이 보여주는 우정과 파워 게임. 아련한 추억으로 때론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을 했었다.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있으면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친구>와 비슷한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수많은 장치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하진 않았다 하더라고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마치 <친구>의 속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마치 <친구>의 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주인공들이 성인이 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반면에 <말죽거리 잔혹사>는 고등학교 시절 딱 한 부분만을 보여준다. 크기의 차이가 이렇게 있는데도 굳이 닮은꼴이라 하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영화를 보면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는 재미도 참 많았다.
두 영화의 닮은 점은 작은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닮은 점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대응해서 싸우고 싶지 않다는 점을 미리 알린다.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영어 선생님의 유창한 발음. 폭력적인 선생님 앞에서 대응하는 우리의 멋진 고교생들의 모습. 그 모양새는 어찌하여 똑같단 말인가. 마지막에 학교 유리창을 무참히 부시고 난 다음 퇴학을 당하던 우리의 주인공. 그리고 그 당시 문화로 대변되는 롤러장과 고고장에서 생긴 일. 이런 장면들이 너무나도 닮아있다. 이런 특징을 제외하고라도 분위기나 흐름, 그리고 인물의 성격을 보더라도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보편적인 특징이라 한다손 치더라도 지방의 특색을 떠나 너무나도 똑같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닮은 점이 작은 장면 장면에 있다면, 다른 점을 큰 줄기에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친구>와 달리 고등학교 시절만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친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에 할애를 많이 했다. 그 할애는 로맨스에 대부분이 담겨져 있다. <친구>가 4인의 우정에 치중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면, <말죽거리 잔혹사>는 우정보다는 현수(권상우), 우식(이정진), 은주(한가인) 이들이 행하는 사랑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후반부에 흐르는 액쑌 역시 어긋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의 고등학교 시절 보여준 액쑌은 주변 학교와의 헤게모니 다툼이라면, <말죽거리 잔혹사>는 학교 내부의 세력 다툼이라는 것 역시 매우 큰 차이점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분명 <친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장면과 특징상 비슷한 면모가 많이 보이지만, 분명 다른 모습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흐름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발휘하였다. 어색함이나 억지는 묵과할 수 없지만 그 노력만은 높게 사주고 싶다. 사랑과 액션이 섞이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것이 눈엣가시일 뿐이다.
영화를 본 후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흥행여부에 따라 2편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열린 결말이라 하나 이는 분명 어색함이 많이 보이는 장치였음이 분명하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들은 분명 여럿이었으나, 마지막을 혼자서 헤쳐 나가는 현수의 모습은 참 안쓰러워 보였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분명 2편이 나온다면, 아마 영화를 이끌어갔던 모든 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그 이후의 얘기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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