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모르면 간첩> - 엉뚱한 상상은 때론 기발함으로 재미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반대로 짜증을 불러오기도 한다. 후자에 전적으로 다가선 영화.
얼마 전으로 기억된다. 모 대학교 앞에 패스트푸드점에 천사가 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때가 있었다. 지척의 거리의 주변 대학에 다니고 있던 당시에 그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4년 1월. 그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나온다고 하여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보일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 때 그 천사를 우연찮게라도 보려 했던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2003년의 가장 큰 화두는 ‘얼짱’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본명보다 ‘응삼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배우 박윤배의 젊은 시절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가 되면서 ‘얼짱’의 세력은 가히 폭발적으로 확장되게 되었다. 이는 각종 ‘얼짱’을 생성시키는 신호탄이 되었고, 전 국민의 머릿속에 인식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추듯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실제 ‘얼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모 대학교 앞에 천사가 실제 모델이며, 그때 그 천사는 배우가 되어 자기 이야기를 지켜보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내었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란 영화는 ‘얼짱’의 이야기만 다루기 많은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다. 실제 ‘얼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에 ‘간첩’이란 조금은 황당한 소재거리와 버물림을 시도한다. 흡사 과거 <간첩 리철진>과 같은 방향으로 시도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머릿속에 깊숙이 파고들뿐이었다. 남과 북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지 않은 현재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려 했으나, 애당초 잘못된 방향처럼 보일 뿐이다. 얼짱과 간첩, 그리고 사랑과 웃음.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담으려는 노력만 가상할 뿐, 어느 하나 제대로 다가오는 것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화에서 엉뚱한 상상은 참 필요하다. 픽션으로 재미를 주기 위함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엉뚱한 상상도 적재적소에 배치가 되지 않는다면, 재미가 아닌 오히려 짜증을 불러온다. 이런 짜증은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란 영화에서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있었던 모 대학교 앞 패스트푸드점의 버거소녀를 다루면서 많은 엉뚱한 상상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엉뚱한 상상들은 서로 다른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내면서 많은 것을 보여주긴 한다. 비록 이를 통해서 많은 웃음을 우리에게 주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또한 남발하는 오버액션과 진부한 화장실 코믹들은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게 만들었다.
북에서 내려와 간첩의 신분으로 우연찮게 버거소녀가 되고 얼짱의 자리를 차지하는 림계순(김정화 ; 박효진이란 이름으로 위장). 열심히 공부해도 모자란 삼수생의 신분으로 눈먼 사랑을 시작하는 최고봉(공유). 이들이 만나게 되기까지를 각자의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짧은 시간동안 보여준 이와 같은 선택은 적절해 보였으나, 그 이후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다. 효진을 괴롭히는 또 다른 얼짱 남진아(남상미 ; 실제 영화의 모델)의 역할 변화나 그의 행동은 불필요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검정 양복을 입고 비아그라를 팔러 다니는 공작원 김영광(이광기) 역시 신세대 스파이의 개념이라 부르짖고 있으나, 영화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우리들을 웃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분출하고 있지만 역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영화의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웃을 수 있는 순간은 매우 제한적이고 간헐적으로 다가온다. ‘씨네마 천국’이란 너무나도 알려진 명작을 ‘新 애마 천국’으로 표현하는 비디오 방에서의 기발한 웃음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또한 완숙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진짜 박효진(자두)의 부모인 박무순(백일섭)과 오미자(김애경) 부부가 건네주는 재미가 무엇보다도 많았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누구의 영화인지,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지 잠시 동안 혼동이 되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잠시 동안 해 보았다. 모 대학교 앞에 패스트푸드점 버거소녀가 허구가 아닌 실재의 인물이고 그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왜 사실을 모두 포기하고 허구로만 일관하려 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버거소녀에서 실제 인터넷 얼짱이 되어버린 그녀를 중심 축으로 하여, 코믹과 사랑을 첨가하는 방향을 선택했으면 어떠했을까. 사실의 일들을 거부한 체, 오로지 상상으로만 이끌기엔 지나친 오만이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가 선택을 했겠지만, 간첩 얼짱이란 엉뚱한 상상의 시도는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으로 흐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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