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낙지를 씹어 먹는 씬도 없고,
딸과의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지도 않았고,
국가권력 앞에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인권도 없고,
선혈이 낭자한 총격전 하나 없는 이 영화에 왜 [잔혹]이란 타이틀을 걸어야 했을까...
진짜 잔혹(가혹) 하다는 게 뭘까.
배가 너무 고픈 사람에게 잔혹한 형벌은
먹을 것을 차단하는게 아니다.
먹을 것이 바로 앞에 있는데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청춘(靑春)은 그래서 가혹한 시기이다.
그 이전이 나 중심의 세계였다면,
그 이후엔 나를 둘러싼 외부 세상에 진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하는 시기이다.
터무니 없이 조악한 싸구려 도색 잡지 한 권에도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온 밤을 뜬 눈으로 새울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미처 정리되지 못한 내면의 자의식은
외연화된 외부 세계의 입구 앞에서 한없이 소심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시기이다.
대학교 진학에 대한 압박,
꼰대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부모와 선생님들(기성세대)의 위선,
힘으로 억압하려고 하는 부조리한 폭력적인 학급 친구와 때로는 그 확대된 현상으로서의 정부,
그 장벽들은 너무나 거대하게 새로운 세계의 출입문 앞에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너무나 왜소한 자신을 느낀다.
꼭 그 길로 안가면 안되는거냐고 소리쳐보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 길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잘 안다.
이소룡이 말했듯이, 한번 길을 가면 앞으로만 나가야 하는 길인것이다.
그래서 잔혹한 것이다.
고추 보집물처럼 알기 쉬운 공식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서 그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와야 하는 해답은
사지선다에서 찍어서라도 맞춰야 하는 객관식이 아니라,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주관식이기 때문이다.
그 아련한 잠 못드는 답답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소설가가 아닌 시인이어서였을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처럼 기,승,전,결의 구성이 탄탄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명쾌한 결말을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어..이게 뭐야..하고 실망할 수도 있을것이다.
특히, 헐리웃의 해피엔딩 플롯에 사로잡힌 신세대들이라면,
권상우의 매력적인 몸짱몸매나
한가인의 청순한 모습에서 영화비 아깝지 않았다고 계산할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감독의 장인정신을 존경한다.
흥행에 대한 많은 고민과 유혹이 있었을텐데,
감독은 영화의 톤&무드를 일관하여 지켜내고 있다.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영웅을 흠모하고 그를 따르고 싶어하는
연약하고 심약한, 그래서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슬픈 눈을 가진 주인공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한 편의 시를 보듯, 음미하며 보면 되는 영화이다.
줄거리를 쫓아가기 보다는,
필름을 거꾸로 돌려 자신의 옛날 추억을 반추하면서 보는 영화이다.
말죽거리란 지명의 유래는
제주도에서 진상하던 말과 사람들이 한양입성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쉬어 가던 곳이라고도 하고,
혹은 피란 때 왕이 말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신하들이 주는 팥죽을 얻어 먹고 도망쳤던 곳이라고도 한다.
지금 이 땅의 30대후반에서 40대들은 제 2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거칠게 변하는 환경 앞에서
다시금 힘든 자신과의 싸움에서 해답을 얻고자 밤을 지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충전일 수도 있고,
말죽,아니 피죽을 먹어서라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일 수 도있다.
자녀들이 듣기에 다소 민망한 욕설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
마누라하고 애들 데리고 영화관 찾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볼 수 있는 건
이 영화가 단지 지난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잔혹한 것은..
끝난 줄 알았던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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