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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에 갇힌 이카루스 미소
mathoon 2004-02-01 오전 2:28:16 982   [7]

 

<미소>-운명론에 갇힌 이카루스

 

still #1

사진작가인 소정은 튜블러 비전이라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다. 눈의 시야가 차츰 좁혀져 언젠가는 실명하게 되는 유전적인 혹은 후천적인 요인으로 걸리는 병이다. 소정의 일상은 부조리하고 비극적이면서도 생뚱맞은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이카루스가 태양을 향해 날다가 추락했듯이 ‘운명적’으로 실명을 맞은 그녀의 추락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자적인 시선에서 머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영화는 소정의 시점을 벗어버리고 누구의 시점에서도 서지 않은 채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려고 한다. 카메라가 지켜보는 것은 소정을 중심으로 그녀의 '일상‘ 이다. 그녀의 가정과 사랑하는 사람, 그녀의 직업 ,그리고 그녀의 소박한 꿈과 그 꿈의 좌절을 큰 기복 없이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소정이 튜블러 비전이라는 병에 걸려서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걸린 병은 그녀의 일상을 파고들어오면서 그녀의 직업의 균형을 깨뜨리고 그녀의 사랑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좁혀져 가는 그녀의 시야처럼 현실을 버텨낼 그녀의 능력 범위도 좁혀져 오고 결국 그녀는 소박한 꿈마저 좌절하게 되는 실패는 맛보게 되고 그런 과정을 카메라는 담담하게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그려낸다.

그녀의 일상은 일그러지기 시작하는데 어쩌면 운명인 듯 절묘한 우연인 듯 그녀의 눈에 이상이 오는 순간 그녀에게 몽골과 중앙아시아로 갈 기회가 찾아온다. 한편 그녀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녀의 가정으로 들어간 카메라는 저마다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을 보여준다. 그녀가 겪는 부조리한 상황만큼이나 그녀의 가정은 부실한 집안이다. 그녀의 오빠는 아내와 아이들을 학대하고 유아기적 행동을 보여준다. 이것은 실로 관객을 우습게 만드는 생뚱맞은 코미디로 보일 수  있지만 불운한 그녀의 미래만큼이나 비극적이다. 그녀가 겪는 일상의 균열은 애인인 지석과의 사이에서 나타난다. 둘 사이가 운명이라고 믿는 지석은 소정을 설득하여 유학을 가려하지만 그녀를 엄습하는 미래는 그녀의 사랑관 마저도 바꾸어 버린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은 절묘한 우연이다. 그녀에게 닥친 모든 상황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지석과의 대화에서도 그녀는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 않은 그저 우연하게 만나 사랑한 사이라는 것을 피력한다. 영화에서의 1차적 대립은 소정과 지석과의 대립이다. 역경을 함께 하고픈 지석은 그녀가 그와 함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유학을 가자고 말한다(하지만 정작 그는 소정을 위해 남으려 한국에 남으려 하지는 않는다. 성공과 사랑을 한꺼번에 잡으려는 남자의 이율배반적인 사랑관을 본다). 하지만 소정은 미국은 더 이상 그녀에게 꿈과 낭만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거절하고 사랑을 포기한다. 운명이기에 함께 하자는 남자와 그에 반해 인생은 홀로가는 나그네 길 인양 외로운 투쟁을 하려는 소정사이에서의 일차적 갈등이 발생한다. 영화는 비단 인물들간 갈등만이 아니라 세상과 항거하는 소정의 투쟁을 그려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보낼 만큼 독한 마음을 품은 소정은 좁혀오는 시야를 극복해내려고 한다. 그녀가 택한 것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기 위해 하늘을 나는 것이다. -경비행기를 타는 것- 하지만 세상은 수동적인 삶을 요구한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그녀의 애인은 그녀가 “입자도 밝히지 못하는데..”라고 말하자 ‘공허한 욕망’에 학문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무한한 신비로 둘러싸인 자연을 밝히려 하지만 정작 인간은 자연속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인간이 명석하다고 오인하는 인간 두뇌의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이며 곧 그것은 그녀의 질병을 해결하지 못하는 의학술을 비꼬는 것과 동시에 체념적인 세계관을 느끼게 만든다. 한편 소정은 경비행장을 찾아가 비행교사를 만난다. 하지만 비행교사 역시 비행장을 떠나지 못하는 ‘맴돌기만’하는 사람이다. 술을 먹으면 소정에게 아기처럼 응석을 부리고 술김에 섹스를 하는 그의 모습은 소박하지만 절실한 소정의 꿈을 이루어주기에는 무능력해 보인다.-소정이 그의 도움 없이 단독비행을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불신 (곧 남자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이렇게 수동적인 삶으로 도배를 한 세상은 그녀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주변에 3그루의 나무 중 한그루가 병든 것을 보고 왜 그러냐고 그녀가 묻자 남자는 “성한 놈 있으면 병든 놈도 있고 그런 거죠.~”라고 말한다. 의지를 보이거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운명론적이고 숙명론적인 말이다. 이것은 그녀가 불운하게 병에 걸렸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말을 뜻한다. 이에 그녀는 단독 비행을 결심한다. 적어도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해 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마치 이카루스가 태양을 향해 날듯이.....

still #2

추락하는 과정을 덤덤히 지켜보는 과정은 힘들어야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덤덤하게 받아 들인다. 그녀가 추락하는 것-눈이 머는 것-이 당연한 과정인양 보여준다. 극적인 결말구조가 결여된 이 영화의 백미는 체념적인 좌절감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그렇지만  소정은 이카루스가 날개 짓 하는 그 힘든 과정을 경험하지 않았으며 영화에서 그녀가 비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은 순간이다. 그래서 그런 성취감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관객에게 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너무 평면적이다. 또한 그녀가 겪는 질병-튜블러 비전-의 고통을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소정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그녀의 눈머는 과정을 관찰할 뿐이기에 좌절은 극대화 되지 못한다. 그녀의 고통과 좌절을 극대화 하려면 멀어져 가는 그녀의 눈을 카메라로 비추어야 했을 것인데 정작 그 부분이 결여되어 있기에 영화는 지극히 평면적이 되고 말았다.

영화는 운명에 대한 담론이다.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도전 할 수 있는가? 질병은 소정에게 운명에 거역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고  소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운명에 도전한다. 하지만 직립보행하는 인간에게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카루스의 예처럼 소정을 맞는 것은 거대한 호수와 소낙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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