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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약속 태극기 휘날리며
mathoon 2004-02-04 오전 10:29:25 1169   [3]







태극기 휘날리며-50년전 약속
냉전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치욕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후대들의 의무이다. 기록이라는 의미의 역사를 파헤치고 그 역사 속 중심이 되어왔던 이념적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것과 역사의 치부를 들어내고 재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버린 ‘우리의 역사’속에서 정작 우리는 줄창, 지금까지도 이념적 대결과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만 조명하였다. 정작 중요한- 50년이 넘는 세월을 이데올로기와 전쟁으로 희생당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않았다. 그들이 빛바랜 사진을 들고 우는 이유를 알지 못 했으며 장롱 깊숙이 숨겨온 가슴 아픈 기억을 가슴으로 나마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 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하여 개인이 겪었던 잔혹한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영화의 시작은 ‘타이타닉’처럼 역사를 발견하고 그 역사 속에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할아버지가 안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 속으로 들어가는 영화는 시대적인 배경으로 하는 영화치고는 거대담론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그 아픔을 응축한다. 한 ‘가정’을 중심으로 국가의 기반인 가족들이 이별하고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수많은 가정들이 그처럼 파탄 났을 것이라는 기괴한 상상은 시체더미의 잔혹한 영상보다도 더 무섭다. 가정이 공격받는 것은 개인이 믿고 기대는 공동체의 영역이 거대 괴물에 의해서 공격 받는 것을 의미하고 곧 이는 다른 어떤 공격보다도 개인의 행복을 말살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전쟁의 시작부터가 남다르다. 누가? 언제? 왜? 라는 해묵은 논쟁에서 한발 물러서서 뭔가 불안하지만 행복에 넘치는 한 가정을 공격함으로 시작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서에 기록된 진실이 아니라 가슴속에 기록된 진실이기에 이 영화는 빛을 발한다.


진태는 진석이 자신의 꿈이자 가족의 희망이라며 지극정성으로 아낀다. 진석은 맑고 순수한 눈과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이며 진태와 가족을 사랑한다. 종로에서 형과 뛰어다니던 기억 아이스께끼, 쇼윈도 안의 구두, 영신 누나와 어머니의 행복한 이미지는 국가라는 기구가 이들을 강제 징집하면서 일그러진다. “지들이 먼데?~”라는 영신의 애절한 말은 정작 반공사상에만 매달려 민생을 챙기지 않은 국가를 공격하고 충성을 강요하는 정부를 비아냥 거린다. “나라에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하란 말야.”라는 군관료의 말은 정작 민주주의의 허울을 쓰고서 대중동원의 전제정치를 하는 이승만 정권을 간접적으로 비꼰다.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국가론이 국민들을 조정하고 있었으며  그 조장과 선동 속에서 국민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목숨을 구하고 가족의 꿈과 진태 자신의 희망-진석이 공부를 하는 것-을 이루고자 진태는 스스로 적진에 파고들고 ‘자발적 광기’를 선택한다. 국가는 진태와 같은 ‘전쟁광’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전쟁의 정당성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일제 때는 나라라도 구할려고 싸웠지.” 라는 영만의 말처럼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은 일반 국민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고립무원 상태에서 광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위에서는 ‘괴뢰도당’을 섬멸하여 나라에 충성하기를 바란다. 한편 아래에서는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와 함께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위해서 ‘광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원인이야 무엇이건 간에 전쟁터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이들에게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단지 죽지 않으면 이겨야 하는 ‘게임의 법칙’과 빨간색은 적이라는 레트 콤플렉스만이 그들을 무의식 속에 지배할 뿐이다.



진태가 선택한 ‘무공훈장’과 맞바꾸는 진석의 제대는 국가와 개인 사이에 이루어진 흥정이었으며 이 흥정에 진태는 부도덕한 행위를 자행한다. 이제 영화는 진석의 여린 눈으로 미쳐가는 형을 바라보는 동정어린 분위기로 진행된다. 남과 북이 갈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듯이 형제간에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게 된다. 물론 진태야 자진하여 전쟁에 동원되지만 진석은 전쟁의 피해자가 ‘모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진태는 진석만은 살리려고 하지만 형이 스스로 도덕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리고 비인간화 되는 것은 곧 형을 죽이는 일이며 그것은 형과 한 몸인 자신과 가족을 모두 죽이는 일이라고 오열한다. 이는 곧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한 목숨이 곧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이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를 전쟁터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전 가족을 함께 죽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오로지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그깟 훈장이 뭐라구! ..고향에 계신 엄마랑 영신이 누나 생각해봐. ”  “형 하고 난 한 몸이야.”


영화는 거대 물량공세로 관객들을 찾는다. 총제작비 147억원과 10개월간의 촬영, 2만여명의 엑스트라 동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 속 전투는 실제를 방불케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물론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깔끔한 화면과 스펙터클한 전쟁씬 일 것이다. 비행기의 소음과 빗발치는 총알, 폭탄 소리등등... 전쟁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장면도 장면이지만 무엇보다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런 아비규환의 전쟁터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이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전쟁터에서 갈등하는 진석은 선뜻 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진석 마저도 살기위해서 칼을 들어야만 했던 장면은 어떤 장면보다도 비장미가 넘치며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함이 뛰어나다. 한편 집단적으로 적을 살해하는 장면은 아시아판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면서 누가 정당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전쟁터에서 모든 일탈-적을 향한-은 허용되고 정당화 된다. 진석의 말마따나 군인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싸우는 가? 그저 적이 보이기에 그들에게 총 부리를 겨누는 것뿐이다. 또한 로마 콜로세움에서 야수와 인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마냥 인간과 야수의 싸움을 지켜보는 장면은 너무나 슬프고 괴롭다. 진석은 스스로 인간에서 야수로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모두에게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듯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몸부림과 저항은 효과가 없다. 전쟁 끝나기 위해서는 게임이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에 등장한 노인이 된 진석이 기억을 되짚기 쉽도록 곳곳에 잔잔한 소재들을 배치하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진태와 진석을 이어주는 구두와 진태와 영신을 이어주는 손수건 영만의 빛바랜 사진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무궁훈장, 진태를 찾을 수 있었던 진석의 만년필... 감동의 코드들을 곳곳에 파묻으면서 때로는 작위적이게 때로는 자연스러운 감동을 자아낸다.

유해로만 돌아오는 역사속의 인물들은 약속을 저버린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50년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돌아온 그 주검을 향하여 원망의 말을 내뱉을 것인가? 역사의 책임을 묻고 싶지만 정작 역사는 그 책임을 전가하기에만 바쁘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양산한 전쟁... 이 영화를 통해서 그 속에서 피어난 형제애와 사랑 그리고 가족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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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TaeGukGi: Brotherhood Of War)
제작사 : 강제규필름 / 배급사 : 와이드 릴리즈(주),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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