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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짜 영매는 아닐지라도...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cocteau 2004-03-25 오전 1:24:23 2283   [4]

하이퍼텍 나다에서 <영매>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만, 도통 관심이 가질 않았습니다. TV에서 여름만 되면 방영하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괴담같은 것들과 다를바가 뭐 있으랴, 싶었거든요. 지난 목요일, 볼만한 영화가 한 편이라도 있었으면, <영매>를 보러가지 않았을거에요.

게다가, 짐짓 객관적인 듯 포장하지만 결국엔 뻔한 의도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변영주의 <숨결> 마지막 씬, 위안부로 끌려간 후 고향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평생을 마쳐야했던, 어느 한많은 인생을 산 할머니가 나오지요. 카메라는 그 할머니의 늙을대로 늙어버린 나신을 천천히 훑으며, 관객들이 그 깊은 주름과 어두운 살빛에서 역사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해온 폭력을 기억하라고 강요합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지만, 너무 노골적이죠. 그 장면의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세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함에서 문득 감독의 끓는 분노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감독은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고 분노는 관객인 제가 느끼도록 해야하는데 말이죠.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는 더 심하죠. 차라리 화를 내고 말일이지, 이 인간은 계속 빈정대다가 애꿎은 사람 하나 앉혀놓고 온갖 오버된 감정을 쏟아냅니다. 차라리 <의지의 승리>같은 프로파겐다 영화가 더 진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영매>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감독은 세습무 혹은 강신무 개개인의 고단한 일생을 감상적으로 포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만한 연세를 드신 분들 중에 사연없는 인생을 사신 분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영화 초반 15분 여를 장식하는 포항 풍어제는 분명 이 다큐멘터리의 민속지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지만,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과 비교해보면 일관성이 없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이후는 <이것이 인생이다>의 극장판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신무 박미정가 비명횡사한 아들을 혼을 위로하기 위해 벌인 굿 장면에서 전 몇년만에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와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어린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굿'이라는 형식을 통해 '삶'을 위로하는 방식에 대한 감동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 강신무는 단지 환각에 취해 있었을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굿판이 절정에 이르고 강신무가 죽은 아들의 행세를 하며 슬퍼하는 어미와 가족을 달래는 순간이 되면, 그 '빙의'현상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장소에 있던 그 누구도 그 강신무에 죽은 아들의 혼이 들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런 믿음의 단계를 통해 그들은 응어리진 한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슬픔에서 그들을 끌어내고 다시 삶의 의지를 복둗어주고자 하는, 선의에 찬 간절한 희망인 것이지요.

무당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굿과 무당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들을 보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위안을 받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과학이라는, 편협하고 완고한 세계관으론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좋은 책이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만들 듯이, 좋은 영화도 그러합니다. 교육적인 효과에 있어서나 감동의 깊이에 있어서나 정말 좋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http://cocteau.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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