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블랙이 연기한 듀이같은 락 매니아는 저에겐 가장 짜증나는 종류의 인간 중 하나입니다. 크리스티나 아귈레라는 좋아하지만 레드 제플린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에 어이없어하며 반쯤 분개하는 그런 인간말이에요. 자신의 도락에 빠져들어 그냥 혼자 즐길 따름인 매니아라면 그 순수한 열정을 존경해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듀이처럼 숭배의 열정을 못이겨 다른 사람의 취향에까지 영향을 주려한다면, 마치 광신도의 전도행위를 보는 듯 언짢아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매니아상은, <High Fidelity>에 나오는 그 얼굴 허연 사람같은, 자폐적인 혹은 수줍은 매니아입니다. 숭배의 대상에 대한 희열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비슷한 취향의 사람끼리 나눌 일이지, 취향에 순위를 매겨놓고 타인의 호불호를 깔아뭉개는 짓은 민폐일 뿐입니다. 아~주 재수없는 인간들이죠.
가령 문희준 팬들에 대한, 소위 매니아들의 그 가열찬 개무시, 영 재수없습니다. 재수없기로 말하자면 양쪽, 차이가 없어요. 도대체 음악에 우열을 두는 근거같은 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음악성에 무슨 내적 논리라도 있단 말인가요? 음악이 순수한 건 사상이나 논리에서 자유롭게 오로지 감성의 영역에서 창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음악에 감동을 받았다면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지요. 자신은 빅 밴드 시절의 재즈만 듣는다고 헤비 메탈같은 건 쓰레기 음악이라고 폄하한다면, 이 무슨 개뿔 뜯어먹는 수작이겠냔 말입니다.
지가 좋으면 타인에게도 좋다는 오만한 독선까지는 용서해준다 칩시다. 그렇다하더라도 듀이같은 인간을 싫어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먹을 뿐이잖아요? 거기에는 일말의 선의도 없었어요. 도대체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미워할 수 없는 건 듀이가 아니라 락에 대한 듀이의 '열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삶을 핑계로 팽개쳐버린 어떤 '열정'-음악이든 그림이든 문학이든 영화든간에-에 대한 회한이 듀이의 민폐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평가하는 것을 방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듀이는 천하의 잡놈이지만 우리가 져버린 과거의 열정을, 뭐랄까, 대신 맡아두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그 열정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를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뭐 어쨌든 영화는 무척 재밌었습니다. 잭 블랙을 위해 준비된 영화라고 생각될만큼 그에게 딱 어울리는 연기였어요. 실제 락 밴드의 멤버로서의 그와 영화속 그의 캐릭터를 분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의 연기에는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잭 블랙은 락을 정말 사랑한다, 그런 진정성.
영화를 보기전에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었어요. 결말이 중요한 종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감독이 링클레이터니까 뭔가 참신한 결말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적어도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오버하거나, 안이하게 장르의 규칙에 함몰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스터 액트>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밴드 배틀 어쩌구 하는 데 나가 펼친 공연 자체는 즐거웠지만, 글쎄요, 이런 영화는 결국 그렇게 끝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걸까요? 저렇게 해피해져서 뭐 어쩌자구... 정말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방과후 락에 빠져들도록 냅뒀을까요?
매니저를 맡은 헤더웨이라는 꼬마애는 정말 귀엽더군요. 아, 깨물어버리고 싶었어요. -_-;
"One great rock show can change the world"라고요? 오버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뭘 바꿀 수 있다는거죠? RATM을 듣는 사람은 맥도널드 안먹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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