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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불명] 사랑한다, 헌데 어떻게 사랑하지? 수취인 불명
goodwood 2001-06-07 오전 10:00:33 1605   [8]
<수취인불명> 사랑한다, 헌데 어떻게 사랑하지?


강물 속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던 막내딸이 강 안쪽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깊은 데로는 가지 말아"라고 누누이 일렀건만 노는 데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그녀는 발이 땅에 닿지 않자 당황하다가 급기야는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 위로의 상승과 물 아래로의 하강을 반복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키가 컸고 힘이 셌다. 결국, 그는 막내딸을 구해냈다. 그는 막내딸을 물에서 건져올리자마자, 그 큰 손바닥으로 막내딸의 작은 뺨을 두어 번 갈겼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막내딸은 내 여동생이고.


가슴 깊이 사랑하는 것과 정작 그 사랑을 잘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 게다.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건져내고는 뺨을 갈기는 것도 (넓게 보면)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다. 사랑의 표현인지 분노의 표현인지 은근히 헷갈리는 것이다. 왜, 그 아버지는 딸을 꼭 끌어안으며 "괜찮다, 아가야, 이젠 살았어"라고 속삭여주지 못했던 걸까?


창국(양동근)은 엄마(방은진)를 사랑한다. 절실하게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를 때린다. 미안하다고 절규하면서 엄마를 구타한다. 그가 엄마를 구타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있다. 엄마의 몸에 새겨져있는 미군아빠의 흔적을 칼로 도려낼 때 창국의 얼굴은, 더 이상 상처받을 곳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상처입은 짐승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엄마는 창국을 사랑한다. 처절하게 사랑한다. 아들을 쳐다볼 때 그녀의 눈은 따스함과 안쓰러움으로 반짝인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이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한다. 미군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매번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오는데도 편지쓰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날마다 비행기를 바라보며, 날마다 영어를 말하며, 미국으로 갈 날을 고대한다. 미국행이 정작 아들에게 좋은 일이 될지 어떨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아들이 죽은 뒤 아들을 먹으며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는 생각할 수 있는 '뇌'마저 상실한 완전한 공허로움이 떠돈다.

  
지흠(김영민)은 은옥(반민정)을 사랑한다. 수줍은 순정을 바친다. 그러나 백태가 낀 한 쪽 눈을 치료하고 싶어하는 그녀를 방해한다. 드러내놓고 은옥의 몸을 탐하는 게 가능한 제임스를 쫓아내기 위해 활쏘기를 배우고, 은옥을 강간한 동네소년을 죽이기 위해 철사를 둘둘 말아 꿀꺽 삼키지만, 정작 은옥의 앞에 섰을 때 그는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안아줘"라고 간청하며 품안으로 파고드는 그녀를 따뜻이 안아주지도 않는다.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간단한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결단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 물론, 사랑하는 대상을 끊임없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억누르면서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어쩐지 스토킹 같지만.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무심결에 그런 사랑의 방식이 나한테서 나오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된다. 만일 그런 사랑의 방식이 우리 한국사회에서 '무리없이' 용인되는 사랑의 방식이라면 나도 모르게 내면화되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건 꽤 심각한 얘기다.


김기덕 감독은 매번 심각한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그 화두들을 풀어나가는 건 관객의 몫인 것 같다. 자,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추신* <수취인불명>, 과연 토니 레인즈의 말마따나 '김기덕 감독 영화 중 가장 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추신* 그런데 이 영화를 볼 때 참으로 의아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관객들(특히 여성관객들)이 왜 저렇게 여러 차례 웃나?'하는 거였다. 나는 웃음이 거의 안 나왔다. 나도 여성인데.. 또, 웃을 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추신* 핏빛 로맨스, 좋은 부제같다.


추신* '수취인불명' 편지의 추신을 쓰는 기분으로 추신을 여러 개 써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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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ker119
감사해요.   
2010-07-03 08:2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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