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론 올해 칸느에서 상영된 영화들 중 이 영화를 가장 기대했더랬습니다. 왕가위의 신작이나 마이클 무어의 그 요란한 신작도 구미를 당겼지만, 코엔 형제가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영화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궁금했더랬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에겐 코엔 형제의 영화들 중 가장 실망스런 영화입니다. (전 아직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를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 영화는 일관된 비평적 찬사를 받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애매한 로맨틱 혹은 안티-로맨틱 코미디였던 <참을 수 없는 사랑>보다도 더 실망이에요.
이 영화는 중반까지 평범한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우선 이 영화의 캐릭터라이징은 과장과 전형성으로 일관합니다. Marva Munson 할머니는 무척 재미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만화에나 나올법한 과장된 캐릭터지요. 톰 행크스의 코믹 연기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합니다. 카지노 탈취를 위해 모인 멤버들들도 참신함과는 거리가 먼,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들이구요. 그렇다고 그 평범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코엔 특유의 '장르 변주'를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몇 번 웃기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유머도 어딘지 코엔 형제답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가령 광고 촬영장에서 방독면을 쓴 강아지가 질식사하는 씬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 털에 불이 붙은 강아지에 얽힌 야단법석처럼 다소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거기다 Pancake의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니요. 이거 뭐 철지난 화장실 유머도 아니고...
이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멤버 중 한 명인 The General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의 슬랩스틱한 감각이나 냉혹할만큼 도덕주의적인 결말은 '역시 코엔 영화!'라는 만족감을 줍니다. 하지만 금고 탈취 멤버들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거듭하며 자멸에 빠지게 되는 후반부를 제외하곤 영화가 너무 늘어집니다. 한마디로 지루해요.
톰 행크스가 분한 Professor G.H. Dorr는 영화내내 앨런 포우를 인용합니다. 좀 찾아보니까 Dorr박사가 교회신도들 앞에서 암송한 그 시는 포우의 < 헬렌에게 / To Helen > 라는 시더군요. <검은 고양이>를 염두에 둔 대사나 고딕 호러풍의 조각상들도 포우를 연상케 합니다.
이 영화, 아주 재미없거나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코엔 형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실망인 것이겠지요. <밀러스 크로싱>이나 <파고>같은 지난 영화들이 코엔 형제의 정점이 아니길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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