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
오랫동안 보려고 별렀던 영화이다. 브래드 피트를 워낙 좋아하는 나인지라 기대도 컸고 트로이 전
쟁이라는 소재 자체도 생소치 않아 영화 개봉을 그야말로 목 빠지게 기다렸다.
이 영화는, 사람은 누구나 이뤄야 할 하나의 과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다만
그 시기가 각기 다를 뿐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이미 그 과업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는가 혹은 어떻게 이루는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트로이'에서 아가멤논의 참모는 아킬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트로이 전쟁을 위해 태어났다.
'무언가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는 것을 뜻한다. 매트릭스 2에서 열쇠공인은 키아누 리브스에게 문을 열어주고- 곧, 자신의 과업을 이루고- 죽는다. 그는 이 과업을 이루고 나선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과업을 깨닫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어쩌면, 죽음을 매 순간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인간에게, 무언가를 되돌리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다면 그 기회는 반드시 주어진다.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와의 불명예스러운 싸움을 치르고 그 오명을 씻으려 한다. 그런 그에게 트로이 전쟁에서 패하고나서 여자들을 피신시키고 브리네이스를 보호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그는 아킬레우스를 죽일 과업도 이루어냈다. 궁극적인 그 자신의 과업은 아니었으나 그가 살아가며 이뤄내야할 한 가지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이뤄낸 것이다. 한 여자를 사랑하여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고 메넬라오스에게 오욕을 입은 파리스가, 그 모두의 위에 서 있었다 할 수 있는 아킬레스를 화살 네 발로 죽인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또한 이 영화에선 고전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엿볼 수 있다. 브리네이스와 아킬레스의 사랑이 그것이다. 적의(원수의) 여인을 사랑하여 괴로움을 겪는 아킬레스. 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역과 비슷하다.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혼자 남겨지는 것도 그러하다. 브리네이스 역시 그 사랑을 이룰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첫 번째 기회는, 아킬레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체를 끌고 가자 트로이의 왕이 밤중에 그를 찾아와 시체를 돌려줄 것을 요구할 때 온다. 원래 트로이의 제사장이었던 브리네이스는 '돌아가자'는 트로이 왕의 말에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도 아킬레스를 떠나고 만다.
두 번째 기회는, 브리네이스를 구하고 아킬레스가 죽어갈 때 주어진다. 아킬레스는 브리네이스를 '평화'로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나, 그녀는 거듭되는 파리스의 재촉에 또 한번 아킬레스를 떠난다. 그녀는 그렇게 아킬레스를 떠난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킬레스가 죽음으로써 그녀에게 세 번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킬레스가 죽는 장면이다. 그는 브리네이스가 떠나는 것을 보며 천천히 쓰러진다. 그가 쓰러진 곳은 황금 벌판이 아니다.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곳에서, 그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잠시 후, 병사들은 쓰러진 그를 발견한다. 죽어 넘어진 그는 영웅도, 신의 아들도 아니었으며 그저 하나의 시체일 뿐이었다. 그의 장례 역시, 눈 위의 두개의 동전만을 노자로 하여 치러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이름을 잊지 마라 - 고 하며.
아킬레스는 말했다. 신은 인간을 부러워 한다고. 인간은 죽음이라는 축복이 있기에 살아있는 매 순간이 아름답다. 매 순간 아름다운 스스로를 우리는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자신의 진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며 다시금 하게 되었다.
사실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아킬레스의 죽음에 대한 초연함이라던가, 끊임없이 살상을 저지르면서도 그 인간적 양심은 잃어버리지 않는 장군들의 모습이라던가, 가장 높은 위정자의 부정부패와 야만성 등등을 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굳이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양상은 아니기에 여기서 글을 맺으려 한다.
우리네 삶은 아름답다. 고통조차, 죽음조차 아름답다. 자신이 가진 과업을 이루고 죽은 자는, 행복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 온다. 인간이란 놀라운 존재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도 참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 제가 본 지역에서의 이름과 영화소개에 나온 이름이 조금씩 다르더군요, 번역가가 달라서 그런가. 혹시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제 글에 조금이라도 공감해주신 분이 있다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