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재구성>
영화는 오락적 성공을 위해서 만들어진 듯 하다. 범죄물의 특성을 잘 고려하여 관객과 심리전,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듯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관객을 영화속으로 몰입시키고자 한다. 수려한 편집 기술과 매혹적인 캐릭터의 창출, 또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추격씬 까지 여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범죄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수 없게끔 만든다. 실로 영화는 끝이 없다, 우리가 사치와 탐욕을 멈추지 않는한 범죄는 진행되고 있으며 영화 속 범죄는 재구성 되고 있는 것이다.
오프닝은 추격씬으로 구성되어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숨막히는 추격씬후 영화는 퍼즐처럼 흩어진 범죄의 기억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일면 느와르의 공식을 찾아가는 영화는 전반내내는 사라져 버린 50억의 행방과 그 행방을 알고 있을 범죄 조직의 기억을 찾아가는 곳에서 시작된다. 경찰들은 범죄에 가담한 일당들 한명 한명을 조사하면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관객에게 차분하게 사건을 소개하는데 전반부를 할애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전반부는 바쁘다. 완벽한 범죄 시나리오를 짠 최종혁과 대부 김선생, 기술자 휘발유, 떠벌이 얼매, 여자 킬러 제비, 그리고 요부형 여인 서인경 이들은 차반장의 조사과정에서 들어나는 사기꾼들이다. 이 사기꾼들이 한 팀을 이루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사건은 실패한다. 또 다른 시나리오가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그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것은 차반장의 몫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동참하는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앞서 얘기했듯이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졌다. 박신양이 연기한 두 명의 캐릭터 최종혁과 최종혁의 형 캐릭터는 특수분장의 효과와 박신양의 연기에 의해서 확연하게 살아나고 있으며 이는 계획된 범죄에 단서를 제공함과 동시에 함정을 만든다. 그 외 4명의 사기꾼들 모두 저마다 "사기"에는 장인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 개개의 장기가 어울어 지면서 영화는 중심축을 구축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서인경이라는 팜므파탈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여성의 관능미와 그 아름다운 유혹속에 감추어진 탐욕을 은근히 전달한다. 머리를 치켜세우고 자욱한 담배연기를 내뿜는 이 캐릭터는 언뜻 남성주위에서 맴돌기만 하는 듯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가는 캐릭터다. 극중에서 비중은 분명 떨어지지만 영화의 호흡을 조절해주는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관객과 같이 무지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영화 속 화면은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서 시종일관 매끄럽게 넘어가려고 노력한다. 재구성이라는 영화 속 단어처럼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그 사이가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스피디한 전개와 마술같은 편집은 흩어진 퍼즐을 맞추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하지만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부분 부분 산재되어 있다. 영화는 5명의 사기꾼을 영화 속에 던져놓고서 이들을 서로의 야욕만을 챙기는 인물로 그린다. (실지로 영화속에서 이들이 포커를 치면서 서로 속이고 의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이미 신뢰에 찬 동업자가 아니라 한탕하고 모른체할 파트너일 뿐이었다.) 즉 인간관계는 신뢰가 아닌 약점을 간파하고 그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영화는 정작 그런 사기행각을 한 인물- 최종혁에게만 부가 시킨다. 여기서 벌어지는 균열의 틈은 다른 캐릭터가 가지는 장기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단순히 주변장치에 머물게 함으로써 긴장의 틈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렇게 한 인물에 부가된 무게 중심은 고정축이 될 수도 있지만 범죄물의 특성상 더 벌어져야 했을 의심의 여지가 좁아지게 된다. 그리고 "재구성"이라는 기존의 의도와는 달리 후반부로 가서는 진행되고 있는 앞으로 진행 될 이야기에 과도하게 치중한다. 중반을 넘어서면 경찰과 범죄자의 추격과 도망은 중단되고 멀어져 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고 그 등장인물과의 심리전과 갈등을 전개시킨다. 여기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즉 영화가 의도하는 재구성이라는 말보다는 관객에게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는 부연설명의 역할을 할뿐이다. 즉 후반부는 앞에서 전개된 사건을 수습하기에 급급하다. 이 부분이 영화의 약점이자 또 한편으로는 장점이다. 이렇게 부연 설명이 되는 과정에서 얽혀진 실타래가 깔끔하게 풀려나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영화 속 "사기"라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공격하여 과도화된 욕망을 소매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기꾼을 비난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이 탈취하는 것이 내향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외향적이고 물질적인 것 즉 ,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인간의 탐욕-주인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속물적인 정신이 남아있는 한 영화는 계속되고 범죄는 끊임없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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