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찬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을 것이다. 행복한 미소를 한껏 머금고 영화관을 나설 때의 그 느낌을 주는 영화의 발견은 그래서 즐겁다.
오직 한 남자만 아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단지 아는 여자로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 지금부터 이 둘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때는 잘나가는 투수였지만 지금은 프로야구 2군 외야수인 동치성은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것으로도 모자라 악성 종양으로 3개월을 넘지 못하는 시한부 선고까지 받게 된다. 실의에 빠져 찾은곳은 한 술집, 하지만 못 마시는 술로 뻗어버린 치성은 깨어나보이 낯선 여관임을 알아챈다.
여관까지 그를 데리고 온 사람은 술집의 바텐더로 일하는 한이연. 그날 이후로 이연은 라디오에 사연을 띄우기 시작했고, 그 방송을 들은 치성은 앞뒤 영문도 모른채, 라디오 전파에 짝사랑의 메시지를 띄우던 그녀를 찾아가 시비를 건다.
하지만 이연은 이미 예전부터 치성을 짝사랑하고 있었고, 이젠 사랑의 양방향 통행 기회를 얻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이제 시한부 삶인 자신을 학대하는 치성과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극한 사랑을 쏟는 이연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된다.
<킬러들의 수다> 이후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장진 감독. 그는 현재 연극과 영화, 뮤지컬을 넘나드는 문화계의 전방위적 활동가라 불릴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
연극에서 시작한 그의 이력은 이제 4번째 영화 <아는 여자>를 통해서 장진 감독은 이제 영화쪽으로도 기량이 만개했음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장진식 엇박자 유머'가 트렌드로 자리잡을 만큼 그는 확실히 관객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근래 여러 영화 시사회를 가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배꼽빠지게 혹은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없을만큼 한마디로 시사회 분위기는 대박이었다. 마치 영화 평론가인마냥 팔짱을 끼고 삐딱선으로 영화를 분석하면서 보느라 잘 웃지않는 본인도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못해 손뼉을 치며 본 영화로 기록된다는 것은 정말 고무적이다.
중간중간에 다소 비현실적이고 조금은 과장된 유머가 보이기는 하지만, 장진 감독의 성향을 이해한다면 웃고 넘길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고, 마지막 부분에 공포영화마냥 다소 깜짝 놀랄 장면도 있지만, 작품 전체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다.
장진식 유머의 절정은 아무래도 영화속에 펼쳐지는 또 다른 영화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치성과 이연이 첫 데이트 코스로 찾은 영화관에서 함께 관람하던 영화를 극중에 삽입해서 보여주는데, 전봇대가 주인공인 영화라니...정말 기발한 발상이라 아니 할수 없고, 이 장면에서 관객의 즐거움은 극에 다다른다.
이 영화가 즐겁고 유쾌한 영화라는데는 모든 평론가들이 동의하는 반면에, 영화의 앞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흔들리는 화면에서 들고찍기 기법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던데, 본인은 적어도 장진 감독의 실험정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또한 음악의 과다사용을 지적하기도 하던데, 이 부분도 동의하기 힘들 정도로 화면과 딱 맞아떨어지게 관객의 감성을 잘 주무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감독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인 치성과 이연을 연기한 정재영과 이나영의 살아있는 자연스런 연기일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실미도> 등에서 강한 인상을 보여줬던 정재영은 멜로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무너뜨리는 무뚝뚝하면서도 선한 연기를 잘 해냈다.
그리고 <후아유>, <영어 완전 정복>을 거치면서 이나영의 연기는 CF 출신으로 얼굴만으로 승부를 거는 배우가 아닌 자신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개발해 내서 매력을 발산하는데 성공한 배우이다. 다소 엉뚱하면서도 순진한 역할을 논할때 이젠 이나영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그녀는 물흐르는듯 털털함을 과시한다.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만큼 영화는 행복한 미소를 내내 머금게 하다가 결정적으로 하나의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막을 내린다.
사랑에는 이유도 조건도 단서도 필요없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바로 우리가 아는 여자와 그 여자를 아는 남자의 일상적인 사랑 속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사랑 그 자체였음을 말이다. 사랑을 복잡하게 생각했던 나의 마음에 변화의 조짐이 일지도 모르겠다.
또 사족.. 다시금 행복한 영화를 접하고나니 이젠 <여친소>의 악몽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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