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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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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2 오후 6: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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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제작을 겸하는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자사 소속 배우들의 이름을 걸고 배우들의 이미지에 따른 시나리오 공모를 한 적이 있었다. 먼저 작성된 시나리오와 제작 의도에 따라 배우의 캐스팅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를 정하고 이미지에 맞는 맞춤 시나리오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게되는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배우도 상품성을 지닌 하나의 문화상품이고 상품성 있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배우로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스타로서 자리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배우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 어떤 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어떤 이는 천의 얼굴을 지닌 변신 능력으로, 또는 귀여움으로, 섹시함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위한 이미지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어렵사리 구축한 자신의 이미지를 지켜나가고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배우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것은 생존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게 만든 이미지라도 너무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하다보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 배우의 이미지 만들기 만큼 어려운 것은 이미지 변신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고수하면 질린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변신을 시도하면 안 어울린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샤론 스톤, 멕 라이언, 최진실 등이 그런 예를 남겼고, 이제 전지현이라는 배우도 자신의 기존 이미지 유지와 변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 활용을 통해 스타성을 과시할 것인지, 다양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과연 전지현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자는 마음을 확고하게 한 영화가 바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가 아닐까?
‘전지현의 새 영화’ [여친소]는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로 시작해서 이미지로 끝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3년 전 엽기녀 돌풍을 일으키며 최고의 스타로 부상한 전지현을 다시 한번 동원하여 대중이 그녀를 사랑했던 요소들을 모두 담아놓은 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엽기녀로서 명성을 얻고, CF의 여왕자리에도 등극한 전지현은 이후 [사인용 식탁]이라는 의외의 진지한 영화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 영화는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발랄한 이미지에 익숙해 있고 열광하던 대중은 낮게 깔린 목소리에 잘 웃지도 않는 어두운 캐릭터에 적응하지 못했고 ‘실망’이라는 표현도 감추지 않았다. 이런 대중의 반응을 읽어낸 것인지 그녀는 다음 영화로 엽기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고, (마지막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엽기적인 그녀]의 전편이라는 생각도 들법한 [여친소]에 출연을 했다.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명성을 얻은 그녀는 영화 [여친소]를 통해 자신의 스타성을 확고하게 다지려는 의도가 있음을 인터뷰를 통해 공공연하게 밝히곤 했었다. 그렇다. [여친소]는 [사인용 식탁]을 통해 배우로서의 자신감은 얻었을지언정 대중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던 전지현이 지금껏 구축해왔고 사랑받아온 이미지를 다시 한번 동원하여 그 이미지의 상품성을 과시하는 것, 그것에 영화 태생의 목적이 있는 것이며 담고 있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관객들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이라는 표현 대신 '전지현 CF 또는 뮤직 비디오'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도 이미 전지현이 CF와 영화를 통해 쌓아와서 관객들에게 익숙한 그 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변덕이 심한 관객들은 자신들이 3년 전에 열광했던 전지현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넘쳐난다는 이유로, 그리고 재탕같다는 이유로 또다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망’을 표하고 있다. 실망을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겠지만, 난 이 영화를 그런 이유 때문에 비난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여태까지 배우와 이미지, 상품성에 대해 언급했듯이 영화 [여친소]는 애당초 배우 전지현의 상품성을 전시해놓은 일종의 팬 서비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의도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엽기적인 그녀]를 보면서 신선함과 재미에 만족했던 ‘나’라는 관객에게 다시 찾아온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간접광고가 거슬리긴 하지만 영화의 목적이 전지현의 이미지 활용에 있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함에 이 영화는 하자가 없다는 얘기다. 애써 변신을 시도한 배우에게 다시 자신의 이미지로 돌아갈 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던 관객들이라면 엽기녀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다시 복귀한 전지현을 열광하며 즐겨야하지 않을까?
한가지 더, 이 영화는 곽재용 감독의 영화다. 데뷔작이었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열여덟살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던 곽재용 감독은 소녀 취향의 감성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잘 표현해내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데뷔작을 만든 후, [가을여행], [비오는 날의 수채화 2]를 만들었으나 모두 실패했고, [엽기적인 그녀]로 재기한 이후 [클래식]과 [여친소]를 만들었다. ‘비’를 중요한 소재로 활용한다는 것, 아름다운 음악이 항상 담겨 있다는 점, 그리고 내러티브 상으로 보면 운명과 인연을 중요하게 표현해내는 감독의 성향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해도 될 듯 하다. 감독의 이런 성향이 모두 담겨있지만 [클래식]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와 짝을 이루는 것 같고, [여친소]는 [엽기적인 그녀]와 (당연히) 짝을 이루는 것 같다. 그리고 [여친소]에 나오는 지프트럭을 타고 여행을 가는 장면을 보면 [가을 여행]의 장면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시나리오 자체가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쓰여지긴 했지만 [여친소]에는 감독 곽재용의 색채도 분명히 강하게 들어있는 것이다. 솔직히 전지현의 이미지가 과해서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가슴이 싸해지는 감동은 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운명적인 만남과 만남 자체가 우연이 아닌 인연이었음을 말하는 영화는 곽재용이 아니면 그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 수가 있겠는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랑이라는 소재는 이미 헐리웃과 대한민국에서 모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짠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은 감성적인 영화 만들기에 재능을 갖고 있는 감독의 파워라고 생각한다.
특화된 배우의 이미지와 감독의 장기가 어우러진 여친소는 이런 요소로 관객과 만난다. 하지만 이런 요소 때문에 관객에게 비난을 받을 소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3년 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의 그 전 이야기는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 정도로 이 영화를 본다면, 그리고 애당초 제작 의도대로 엽기녀 전지현의 매력을 한껏 느끼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더운 여름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작은 선물로 이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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