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아는 애가 [진주만] 어떻냐고 물어보더군요. “몰라! --? 아직 안 봤는데?”라고 했더니 굉장히 의아해하면서 니가 왠일이냐 고 하더군요.-_-;;; 저에겐 ‘영화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 배우 가 나온다면 보러간다!’ 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 이 사람이 나온다 면 영 안 땡기는 기피대상 배우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벤 에 플렉이죠. 벤 에플랙 나온 건 어째 [굿 윌 헌팅]빼고는 영~~-_-;; 어쩌면 안 보고 넘어가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진 주만]을 드디어 봤습니다. 왜냐구요?
그 병이 또 도진 거죠. 저에겐 병 아닌 병이 있거든요. 남들이 욕 하면 왜 욕하는 궁금해서 보러가는... 남들은 그게 병이라기보다 제 삐딱한 성격을 보여주는 거라고 하지만요. 어쨌든, 도대체 왜 욕하나 궁금해서 보러 간 영화 리스트에 [진주만]이 합류를 했습니 다. 엄청난 물량과 제작비,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영 화인데다가 우리나라 여름시즌 블록버스터의 첫 신호탄인 영화이잖 아요.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지만, 개봉 후 인터넷 영화 사이트마다 정말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더군요. 이건 무슨... 세계 2차대전이 영화평란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영화만으로 모자라서 서로 인신공격까지 하는 걸 보고 무섭더군요. --;;;
에고.. 어쨌든 제가 본 [진주만]은? 누군가의 말대로 그냥 본전 생 각은 안 나는 영화였습니다. 세 시간이라는 상영시간을 밀어붙이기 엔 영화의 힘이 현저하게 모자랐지만, 진주만 기습작전 재현만큼은 “아~ 이게 바로 허리우드의 힘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했거든요. 평온하고 조용하던 진주만을 삼국지에 나온 적벽대전처럼 쑥대밭으 로 만들어버린 역사의 현장에 실제로 있는 듯한 섬뜩함마저 들었으 니까요. 유럽과 동떨어져서 본토가 전쟁에 휩쓸리는 일은 절대 없 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미국인에게 하늘을 새까맣게 덮던 일본전투 기의 모습은 성경 속의 아마게돈을 떠올리게 했음이 틀림없었을텐 데 바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일본의 습격보다도 그런 깨진 자만심과 무력감이 더한 공포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이 영화를 비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캐릭터와 배 우, 스토리가 겉돌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레이프가 영국에서 참전 한 것은 2차 세계 대전의 양상을 보여주기보다 삼각관계를 만들기 위한 요소로 내려앉더군요. 레이프와 대니 사이의 우정도 오랜 시 간 같이 자란 끈끈한 우정이라기엔 너무 느슨한 느낌이었기에 사랑 으로 인한 갈등이 요란한 장식처럼 공허해 보였습니다. 그런 삼각 관계를 만들기 위해 근 한 시간을 소요한 것을 감독의 과욕이 아니 었나 싶네요. 어설픈 드라마 만드느라고 영화를 길게 늘이지 말고 진주만 기습씬에서 보여준 뚝심으로 캐릭터를 정리하고 과감하게 앞부분과 뒷부분을 쳐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길어진 시간에 비례해서 영화가 비난받을 여지도 더 많아진 것 같거든요.
[진주만]은 여름시즌용 영화였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 구요. 다만 [아마게돈]처럼 실제 사건이 아니라 허구였다면 [진주 만]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엄연히 역사책에 나오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감독에게는 뛰어넘어야할 벽이, 다른 사람들에겐 이 영화를 보는 절대적 기준점이 되어 버린 것 같 네요. 그 엄청난 물량 투입이 부럽긴 했지만, 허구와 실제의 혼합 이 얼마나 어려운건지... 욕심이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란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