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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per]송일곤은 내 친구인가, 아니면.. 거미숲
cropper 2004-09-05 오후 11:25:42 1531   [5]

영화는 난해하다. 객석을 일어서는 관객들의 멍한 표정, 툴툴대며 삐죽거리는 입 속에는
목구멍으로 얼마 넘기지 못했을 팝콘의 찌꺼기만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많이 슬프다. '알포인트'를 평할 때도 얘기했듯 나랑 닮은 느낌의 감우성이 부서진
기억의 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필자처럼 주인공 또한 두통이라는
이름의 반갑지 않은 친구를 달고 사는 것도 보기 안타깝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이입되어버린 감정 덕분인지 이 어지러운 영화는 어느새 나의 손을
꼬옥 잡고 그의 깨어진 기억 속으로 함께 들어가자 한다.
송일곤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을 필자의 입으로 얘기하자면, 영화 '거미숲'은 그 복잡한
모양새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주인공의 무의식속으로 그저 함께 '소풍'가는 기분으로 보면
좋겠다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디테일을 따지고 들자면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이 없고 어지럽기만 하다.
혼란스럽고 슬픈 '거미숲'을 헤쳐나오니 하나씩 차례로 필자의 뒤통수 터널을 건너오는
몇 편의 영화들이 있었다.
Flat liners(한국개봉명 '유혹의 선'), Jacobs Ladder(야곱의 사다리), 그리고 메멘토.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떤 세상으로 가는지 알기 위해 일부러 호흡곤란을 일으켜 반사상태
로 만든 뒤 완전히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살려내서 사후의 세계를 서로 얘기하는
영화 '유혹의 선'.
결국 그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끄집어 올려진 것은, 애써 무의식에 꽁꽁 묻어두었던
치명적인 기억이나 누군가를 해쳤던 사실이다. 주인공들은 끝내 그런 기억을 부인하려
애쓰지만 그들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은 결국 그 기억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송일곤 감독은 '치명적인 기억은 결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흐르고 있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심박계가 일직선을 그리는 죽음의 Flat line (삶과 죽음의 경계선) 의 순간에
주인공 강민이 자신의 잃어버린 무의식을 찾아 떠난다는 설정은 영화 'Flat Liners'와 너무
닮았다.

그리고 '야곱의 사다리'. 나이트 샤이야말란의 '식스센스'가 이 영화의 반전을 완전히
베꼈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필자는 영화 '거미숲' 또한 '야곱의 사다리'로부터 자유
롭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고 온갖
혼란함에 괴로워한다. 결국 아주 오래전에 죽은 어린 아들의 영혼이 그의 슬픈 영혼을 달래
주고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이야기.
'거미숲'의 여주인공 민수인 은 상처받은 강민의 기억을 달래줌과 동시에 그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거미숲'을 빠져 나가게 하고 그 자신도 구원받는다.
(마지막 장면의 '뒤돌아봄'은 거미숲에서 그를 풀어준 수인 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영혼
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억의 불완전함,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비틀린 기억들의
잡탕' 이라는 주제는 영화 '메멘토'와 도 닮아있다.

송일곤 감독이 어렵고도 세련되게 표현한 이 복잡복잡한 '거미숲'은 어쩌면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필자는 송일곤 감독과 동갑이다) 영화광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짜집기라는 이름의
나무들로 만들어진 '숲'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잊고픈 기억과 그 혼돈 속에 빠진 슬픈 영혼' 을 다룬 몇몇 미스테리 영화들의 주제를 교묘
하게 직조해 낸 것이 '거미숲'이라면 필자는 거미숲을 결코 훌륭한 영화로 보아 줄 수 없다.

하지만 하늘 아래 그 어떤 것이 새로우랴.
혼수상태에서 주인공이 잊혀진 기억과 대면하러 떠난다는 설정이나 그의 혼란에 평화를 주는
또 하나의 슬픈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의 파편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
인지를 말하는 '거미숲'이 새롭지 않다고는 할 수 있으나 '거미숲'을 채우는 잘 빠진 스타일,
두 엄지 손가락과 두 엄지 발가락을 다 들어 주고픈 감우성의 연기는 부족함이 없다.

필자는 멍하다. 혹시 나의 무의식에 수갑을 채울 만한 치명적인 기억이나 공포의 잔상이
내 속 어딘가에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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