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 각본의 정교함과, 고증의 철저함.

이것들이 영화를 재미있고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들이

있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나키스트라는 영화는 지금 보기엔 다소 유치하면서도 오버스러운 장면

이 눈에 띄고, 배우의 연기력이 다소 실망스러우며, 이런 장면은 이렇게

처리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여럿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영화를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겠다. 나는

그다지 애국자도 뭣도 아니고 이 영화를 보고나서 특별히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며,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혹자는 이 영화 속에서 마초만을 보고, 혹자는 이상에 대해 생각한다. 혹자는

벽을 박차고 점프하며 총을 쏘는 장동건을 보고, 혹자는 터지지 않는 폭탄을

손에 쥔채 미소짓는 폐병쟁이를 보며 담배를 꺼내 문다.

전자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그다지 신통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의 흥행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사회장에서 이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영화를 보았을까?

거사를 준비하기 전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이 지었던 표정을 떠올려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