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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세상의 꼴찌 슈퍼스타 감사용
jagmachi 2004-09-19 오후 3:34:10 3192   [25]
일요일 오후...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며... 무엇보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풀어진 상태로...

글을 쓴다... 물론 밀린 청소는 모두 끝내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딱히 본격적인 영화평을 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보고나면 그저 마음이 다 풀어질 뿐이다.

그래서 그냥 영화의 미학적 작품성이 어쩌구 장치가 어쩌구

비주얼이 어쩌구 미장센이 어쩌구 하는 말은 다 빼고...

그냥 맘 닿는대로 얘기한다.


한때 삼성의 기업 이미지 광고를 기억하는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살벌한 문구를

화면 정중앙에 명징하게 박아두고 그 아래에

새로 만든지 얼마 안 된 삼성 브랜드 마크가 떠오르던 그 광고...


이 광고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오만상을 찌푸리고 시상대에 오르던

한국 선수들을 기억하는지...


우리 사회는 정말이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1등만이 사는 나라였다.

2등부터는 존재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였다. 그러니 꼴찌는,

말해 뭐하겠는가...


우리가 은메달을 딴 강초현에 주목하고

1등들만 모여 있다는 '민사고'가 아니라 꼴찌들과 제도권 교육 부적응자들이

모인 '간디 대안학교'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물론 이 안에도 자본과 미디어의 논리들이 작동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얘기 다 빼자... 쉽게 얘기하면 이렇다. 강초현이 은메달을 땄음에도

주목을 받은 것이 그 귀여운 얼굴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상...

저 시대,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말자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던

시절에 강초현이 은메달을 땄다면 귀여운 얼굴이 아니라 초절정 미인이었다

해도 그는 신드롬에 가까운 주목을 받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머 그래서 욕을 진탕 먹고 바꾼 요즘 삼성의 기업 모토이자 이건희 회장의 연례발표 핵심 주제가 이거란다.

'단 한 명의 천재가 십만명을 먹여살린다. (그러니 십만명에 투자하지 말고 그 단 한명의 천재를 발굴하라?)'

이따위 생각이 우리나라 최고기업의 모토이자 최고기업 경영자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 단 한명의 천재를 먹여살리는 건 나머지 십만명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십만명 중에 한 명이 되기 위한 삼성 공채시험의 경쟁률이

십대일이다. 머 지원하는 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는

얘기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여전히 '휴머니티'는 퇴보한다.


자... 또 이렇게 얘기하면 꼭 못난 넘들이 이런 얘기한다구 그런다.

맞다... 고백하지만 나는 굳이 분류하자면 2등, 이류... 그도 아니면

삼류나 꼴찌 또는 부적응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대안학교가 있었다면 나는 당연 대안학교 대상자다.)

1등이라고는 그 옛날 동네 백일장에서 그동안 써두었던 습작품을

짜깁기해서 제출한 시 한 편이 장원을 먹은 것이 유일하다.


아직도 서점에는 '부자아빠'를 비롯한 '1억 모으기' 따위의

성공신화에 대한 너저분한 책들이 즐비하고... 미디어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어딘가 들이밀어도 될만한 성공신화를 찾아 분주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1등이 있고 수많은 2등이 있으며 수많은 3등이 있고

그렇게 해서 각각의 등수 속에 수많은 인간들이 있고 결국은 수많은

꼴찌들 또한 있다. 그리고 그 등수와 꼴찌들은 사실상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게 어느정도 정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국민교육헌장이나 어린이헌장 따위에 나오는

교육의 평등이 어쩌구 하는 구호들을 믿고 싶은 건 그야말로 별나라에서

온 이상주의자의 희망일 뿐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

이 사회의 근본적인 계층질서에 대해...


그 계층질서의 파괴에 대한 희망까지는 가지지 말자.

그렇다면 어떻게 어울려사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나는 두가지로 생각한다.

높은 자는 자신의 위치가 수직적 높음이 아니라

수평적 다름임을(이것이 진실이기도 하다) 반성할 것...

낮은 자는 비주얼로 이루어진 수직적 높음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패배주의로부터도 자유로울 것.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 모든 것들을 집약해서 얘기해준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적절한 절제와 깔끔한 영상으로...

얼치기 휴머니즘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휴머니즘보다는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해야한다.

마지막 장면 감사용이 이기고 싶었다고 절규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 전에 '이긴' 박철순이 '진' 감사용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장면은

압권의 의미를 강화한다. 승자와 패자, 1등과 꼴찌,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의 편가름이 아니라... 진정으로, 진심을 다해, 전력을

다해 '맞짱'을 뜨고 그 맞짱 상대에 대해 결과에 상관없이 예를 다하는

그것... 내 꿈인가... 나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챙피한 것도 있고 같이 본 사람도 있고 해서... 참으려고 애쓰다가

막판에는 아주 펑펑 울어버렸다. 같이 본 사람도 울더라.


그렇게 해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내게...

그 시절, 박철순 때문에 지역연고와 상관없이 오비베어스의 골수팬으로,

그러면서도 매년 삼미슈퍼스타즈가 꼴찌탈출에 성공하기를 기원하던

프로야구 원년 팬으로, 프로였지만 아마추어 같기만 하던 그 시절

모든 선수들에 대한 기억으로, 치열하게 그 시대, 그 시간대를 통과해온

동시대인들에 대한 예의로... 그리고 또 내 새로운 끝과 시작, 그 어느쯤에서

내가 잊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의미를 되새김질해준 영화로...

얼마간 내게 각별하게 남을만한 영화...


청소를 끝내고 빨래를 널고...

어제 극장에서 가져온 '슈퍼스타 감사용' 찌라시(광고지가 아닌) 한 장을 잘 펴서

벽에다 곱게 붙여둔다...


나는 여전히 천천히 살 것이다.


(총 0명 참여)
제가 평생 본 영화평 중 최고로 잘썻네요!!   
2005-08-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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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감사용(2004, Mr.Gam's Victory)
제작사 : (주)싸이더스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cjent.co.kr/mrgam/launch.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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