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사건을 그리는 시각은 다양하다. 만일 그것이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면 목적에 따라 여러가지 시선이 나올 수 있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살 사건은 한동안 미국을, 그리고 세계 다른 나라를 경악하게 했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바로 그 총기 난살 사건을 그리고 있다. 흔한 계몽주의 시각이나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롬바인>처럼 고발 영화도 아닌 <엘리펀트>는 차분하게 '그 날'에 대해 주목한다. 어디부터가 원인인지는 구스 반 산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현장에 있었던 주변의 학생들만이 감독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다.
영화는 한 학생의 평범한 아침 일상에서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은 아침부터 티격태격한다. 그를 쫓는 카메라는 그가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줄 곧 한 사람을 지정해 그의 뒤를 쫓아가곤 하는데, 흥미로운 건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주위의 배경은 뿌옇게 묘사된다. 카메라는 그를 지나친 다른 사람을 쫓고 다시 반복된다. 여기에는 운동을 하는 학생도, 동성애자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도 있으며, 왕따 당하는 학생, 다이어트를 위해 구토를 하는 학생도 있다. 그들은 하루 종일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마주치고, 간섭하지만 실제론 아무런 터치도 없다. 그냥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총기 난사 사건을 그리는 감독의 시선에서 가장 독특한 건 카메라의 움직임과 동적인 듯 하지만 정적인 시선, 그리고 배경 음악이다. 영화는 어떠한 간섭도 최대한 배제한 채 그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마치 <엘리펀트>는 그날, 그 공간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사진첩을 보여주는 듯 하다. 코끼리의 코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를 뱀이라고 생각하고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를 기둥으로 상상하겠지만, 그들이 모이면 하나의 진짜 코끼리가 탄생하게 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개개인의 모습에 주목함으로써 그날의 전체적인 전경을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각각의 사진첩이 합쳐져 하나의 풍경이 되고 영화는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렇고 보면 <엘리펀트>는 상당히 무책임한 영화일수도 있지만 감독은 영화 내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놈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충실히 표현한다. 만일 영화를 보는 관객이 그 사건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면, 그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의 결말을 이미 예상할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게 되지만 실상 그들의 행동 하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만 그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게 되고 그들의 불행한 결말에 대해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구스 반 산트가 원했던 것은 단지 여기까지다. 사건에 원인에 대한 탐구는 결국 코끼리의 한 부분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것도 정확하게 정답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그날의 상황을 보고 느끼며 관객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 감독이 원하는 <엘리펀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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