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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긴 농담 이노센스
mongcat 2004-10-11 오후 10:46:45 1946   [9]
실시간 검색을 위한 노트북을 옆에 끼고 각종 사전을 망라해 펼친 다음 눈과 귀에 더하여 손과 머리까지 동원해가며 99분을 꽉 채우고나면 알게될것이다.

삽질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오시이 마모루는 마술사다.
그것도 성질머리 아주 고약한 마술사라 가까이하다간 호되게 골탕먹기 쉽상이다. 염세적인 사상으로 떡칠한 오두막에 틀어박힌 그는 두가지 재능을 적절히 발휘해 마술사의 숲으로 접어든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길 즐긴다.

그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분야는 관객을 정말 미치도록 지루하게 만드는 것, 특히나 실사 아바론은 인내의 극을 시험했다. 온갖 철학가와 사상가와 예언가와 성인들의 말 조각들을 이어 붙인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농담아닌 농담은 보는이를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몰고간다. 이해하는 것 자체도 지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그것들에 대해 시간을 할애하느니 차라리 농담으로 치부해버리리..
단순히 괴팍하고 음울한 늙은이가 난해한 네트의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를 농락하고 있으니 몸부림치기 보단 얌전히 먹혀버리는 쪽이 낫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고 명쾌한 것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그의 능력은 차라리 다른 쪽에서 빛을 발한다.

인체만큼 유머러스하고 아름다운 로봇의 내부묘사나 세기말의 도시, 그 전부의 도시를 미래로부터 끌어당긴 듯한 배경등은 손 끝에서 실상을 재현해야 하는 그림쟁이의 날카로운 관찰의 끝이 어딘지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준다. 오시이 마모루는 그 관찰을 현실의 사물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과 가상의 세계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렇기에 그가 보여주는 영상은 기괴하고 우울하지만 현실과 닮아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가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분야는 예상을 깨는 연출력이다.
관객의 우위를 점거하는 것, 어떤 연출가든 이 고지를 탈환해야 성공할수 있다. 스스로가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다 생각하는 관객들은 시도때도 없이 자기만족을 위한 태클을 시도하거나 다음 장면을 '예상하려 한다'
예상이 맞아 떨어질때 우월감보다 실망감이 더 클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탁월한 연출가는 항상 이런 관객을 앞서가 그들을 희롱해야 한다.

오시이 마모루가 보여주는 과감한 시작 오분은 철저히 관객을 '일단 다운' 시키고 들어간다. 공각 기동대에서 보여준 소령의 추락을 능가하진 못했으나 이노센스 역시 강한 충격과 묘한 여운을 남기는 첫 장면을 보여주며 그 여운은 곧 감독이 안배한 오리엔탈풍의 오프닝 음악으로 이어진다.

관객을 지나치게 앞질러 버리는 오시이 마모루는 인트로부터 얼을 빼 놓더니 작품 전체를 특유의 오만한 낙독성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평범한 사람들과 너무 다른 그는 관객을 배려하기는 커녕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투다. 사교 자체를 거부하는 이런 류의 인간을 지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마니아라 부른다. 이노센스는 마니아의 에니메이션이였다. 그 점에 오시이 마모루는 일말의 유감도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유감이 있을턱이 없다.

이 작품을 놓고 구성이 어떻니 스토리 라인이 비약적이니 비쥬얼만 삐까하니 상식파괴니 수사적이니 뭐니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감독이 관객에게 애초부터 대답을 바라지 않았는데 무슨말을 하겠는가. 그가 전제한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그 자신이였으며 볼테면 보고 말테면 마라는 오만불손한 태도에 부흥해 나 역시 철저히 내 느낌, 내 생각, 내 멋대로의 삭제와 비약을 덧 붙이는 감상을 하고 만다.

결국 오시이 마모루가 내놓는 되다 만 듯한 희망을 믿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괴팍한 마술사는 현란한 환상으로 99분동안 관객에게 웃기지도 않는 말장난을 걸더니 뱀은 커녕 지렁이도 안되는 꼬랑지만은 던져주고 입을 씻으려한다. 끝까지 불친절하다. 이노센스는 기교와 위장만으로 뻥튀기처럼 부풀려놓은 에니메이션이다.

결국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나였다. 그래서 어떤 희망을 찾을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길고 긴 오시이 마모루식 농담을 듣고 빛으로 나오자 영문모를 미소가 지어진 것은 그때문이였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내 맥박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총 0명 참여)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가지셨군요.! 많은 부분에 호감을 가져봅니다.하지만 많은 네티즌들의 배고픔과 갈증은 모두 해소되지 않은듯 합니다.   
2004-11-1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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