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무대는 대도시 LA의 밤거리. 택시 기사 맥스(제이미 폭스)와 킬러 빈센트(톰 크루즈)는 어두운 LA의 시가지를 누빕니다. 세련된 음악이 흐르고 멋지게 촬영·편집된 도시의 야경들이 흘러가지만 빈센트는 맥스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하나씩 죽여 나갑니다.
킬러로서 전제 조건인지는 모르겠으나 빈센트는 냉혹하며 사람과 세상에 희망을 품지 못한 캐릭터에요. 영화의 무대가 LA로 한정된 상황에서 그가 도시와 그 도시민들에게 내뱉는 쓴 소리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쓴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맥스는 그 쓴 소리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위치에 서 있군요. 왁자지껄한 대도시의 분주함에 지치고 타인을 위한 충고도 해 주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빈센트의 말처럼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지금보다 나을 거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대도시의 소시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빈센트와 맥스의 대비는 그 이면에 또 다른 대비를 내포합니다. 빈센트의 차가움과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거리낌 없는 폭력성은 오늘날 대도시가 지닌 이미지와 똑같아요. 빈센트의 냉혹함과 폭력성은 차에 묶인 맥스를 도와주기는커녕 지갑을 뺏어가는 도시 건달들의 그것과 통하고, 빈센트의 무관심은 도심 지하철에 방치된 시체와 통합니다.
그렇게 따져봤을 때 빈센트와 맥스의 관계는 대도시와 도시민들의 관계로 치환이 가능해요. 맥스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도시민들 역시 대도시의 메커니즘을 벗어나는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그랬다간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니까요. 결국 빈센트의 차가운 회색빛(또는 은빛) 이미지는 세련된 대도시의 이미지와 그 뒤에 감춰진 건조하고 냉혹한 현실을 상징하고, 빈센트와 맥스의 미묘한 관계는 대도시와 도시민들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이처럼 일방적인 관계에서 도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에 대한 답으로 꿈, 용기, 인간관계(사랑...)를 제시합니다. 12년간의 직업을 임시직이라 부를 정도의 자신의 꿈에 대한 우직함, 때론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때론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용기,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인간관계... 이런 것들로 인해 사람들은 삭막한 대도시의 생활을 일구어 나간다네요. 이렇게 빈센트와 맥스를 통해서 마이클 만 감독은 도시와 사람들의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감독의 이번 영화는 적어도 개인적으로 아는 한도 내에선 언제나 전형적이고 속물적인 영웅 신화에 심취한 듯했던 과거 그의 스타일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들에겐 사랑이 언제나 중요했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 제쳐둘 정도로. <라스트모히칸>에선 이 사랑 때문에 당시 시대 상황이 들러리로 전락했고, <알리>에선 모든 이야기를 겉돌게 했죠. 오직 <히트>에서만 성공적인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히트>는 로맨스를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라스트모히칸>이나 <알리>에선 감독의 '영웅에게 반드시 필요한 로맨스'라는 아이템은 영화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 거죠.
하지만 <콜래트럴>에선 과거의 이런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냉혹하고 고독한 킬러와 소심하고 외로운 도시민'이란 스토리 자체가 가져다주는 제한 때문인지, (그의 작품 중에서) 유독 돋보이는 현실 인식이 미리 바탕에 깔린 탓인지 그가 고수하던 영웅 신화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어요. 마이클 만 감독이 이제야 드디어 전진을 위한 첫발을 뗀 것일까요? 이 한 편만으론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릴 즐겁게 해주는 또 한 명의 감독이 추가되는 셈입니다.
(전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중 <맨헌터>와 <인사이더>를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감독에 대한 평가가 약간 편협되고 섣부를 수 있다는 걸 참고로 말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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