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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이곳이 나의 필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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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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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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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2 오후 3:39:50 |
1880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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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제가 전에 다른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정리하고 몇가지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때는 화부터 났습니다. 꽤 진지하고 무게있는 작품을 만들줄
아는 감독이라 여겼었는데, 이제보니 관객을 우롱하는구나 하고 말이죠. 특히
영화가 다 끝나고 'Welcome to Avalon'이라는 자막이 뜨는 장면에서는 분노가
절정에 치달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관객들을 우롱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또 얼마나 많은 우매한 관객들이 저 자막에 속아 '내가 현실이라
생각하는 이 세상도 가상현실이 아닐까?'하는 같지도 않은 음모이론에 허우적
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영화의 모든 것들이 다 의미 없어 보이고,
사기 같아 보였습니다. 그 생각을 재고하게 된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감독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고 나서-였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두가지 키워드는 사라진 애쉬의 '개'와
머피의 마지막 대사 "이 곳이 너의 필드이다"입니다. 이 두가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이 두가지를 통해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다른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매트릭스, 13층, 너바나 등-과는 판이하게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 뚜렷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화속 현실과 게임을 표현하는
색조입니다. 현실은 칙칙한 흑백의 모노톤인데 반해, 게임속 가상 현실은
갈색계통의 단색조로 표현 되기는 하지만 현실에 비해 훨씬 밝고 깔끔해 보이지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 SA에서는 아예 컬러로 표현 되구요. 이것 때문에 많은
분들이 SA가 진짜 현실이고 모노톤으로 나오는 현실이 사실은 게임이 아니냐는
억측도 많이 나왔는데요.(게다가 SA에 로드 되었을때 나오는 자막 -Welcome to
class real은 관객들을 더욱 더 혼란 시켰지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애쉬가 머피를 처리했을때 시신이
(프로그램이) 해체되는 모습이나, 마지막 장면에 성당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진 광경, 거기에 나타난 소녀의 홀로그램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현실을 의미할 뿐 사실은 이것이 게임속 가상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실제로 오시이 감독도 인터뷰에서 그러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아울러
관객들이 잠시동안 이라도 속아주기를 바라는 의도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우리를 너무도 혼란스럽게 하는- SA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애쉬가 거리로 나서자, 거리에는 애쉬의 잃어버린 개의 사진이
찍혀있는 포스터가 사방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애쉬가 한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애쉬의 등뒤에 차 한대가 교통 신호에 걸려 멈춰섭니다. 그것도
바로 뒤에 말이죠. 그리고 그 차에는, 애쉬의 잃어버린 개와 똑같은 개가 태워져
있습니다. 애쉬가 등만 돌리면 바로 코앞에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애쉬가
등을 돌리는 순간 차는 떠나고 애쉬는 개를 보지 못합니다. 감독은 무슨 의도로
이러한 장면을 연출했을까요?
먼저 미리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현실보다는 게임속 가상 현실이
더 현실같이 보입니다. 주인공 애쉬의 사는 모습도 그러하지요. 애쉬는 게임속
에서는 절대 팀을 구성하지 않고 혼자 활약하는 전설적인 최고의 여전사이지만,
현실에서의 그의 삶은 무의미하기까지 합니다. 감독은 이러한 무의미함을 배가
시키기 위해 현실을 흑백의 모노톤으로 연출했으며, 나아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중 하나인 리미티드 기법까지 응용합니다. 즉, 같은 장면을 재사용함
으로써 현실에서의 삶이 무의미하게 되풀이되고 있음을-그리고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애쉬가 게임을 마치고 집에 가기위해
게임룸을 나오는 장면에서 복도를 걸어나오며 상의를 걸치는 장면이나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반복사용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애쉬의 현실에서의 생활도 생기를 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개에게
먹이를 줄 때죠. 처음에 사료를 줄때도 그때까지 무표정하던 애쉬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나중에 음식을 만들어 줄때는 정말 행복해하는 모습마저 보입니다. 여기서
개란, 무의미하기만한 애쉬의 현실에서의 삶에 한 가지 존재의 의미를 던져주는
영화적 장치입니다. 그것은 자아가 될수도 있겠고 또는 삶의 가치가 될 수도
있겠고 존재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인간이 삶에 있어서 추구하는
어떤것 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듯 하군요. 어쨌든 개가 사라졌다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 추구할 그 무엇을 상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재미있는 것은 개를 잃어버리고 난 뒤 애쉬의 행동입니다. 애쉬는 개를
찾기위한 노력을 하기는 커녕, 그동안 거절했었던 옛동료의 파티구성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에는 믿지 않았던 Class SA에 도전합니다. 왜 그녀는 그런 행동을
할까요. 그것은 그녀가 SA에 도착했을 때 잃어버린 개의 포스터가 거리에 가득한
장면을 통해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위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군요. 왜 감독은 이러한 장면을 연출했을까요?
프로이트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장면이 나타내는 의도는 누구나 알수
있을만큼 분명합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개를 찾고 싶어하는 애쉬의 강렬한 욕구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녀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현실에서는 개를
찾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개가 우리가 추구하는 그
무엇 이라고 한다면, 애쉬는 분명 '그 무엇'을 현실에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게임속 가상현실에서 찾을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장면, 개가
뒤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자 차가 떠나버려 개를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그 무엇'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지만, 우리는 항상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간발의 차이로 놓쳐 버린다는 것이지요. 또한 포스터가 현실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게임속에서 찾으려는 그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면, 애쉬의 뒤로
지나가버리는 개는 그녀가 추구하는 '그 무엇' 이 게임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감독이 얘기하려고 하는 진짜 주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어가는 머피의 대사속에 드러납니다.
"게임과 현실에 현혹되지 마라. 여기가 너의 필드다" 이 대사야 말로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게임과 현실에 현혹되지 마라"는 말은
분명 '게임'뿐만이 아니라 '현실'에도 현혹되어선 안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가 매트릭스와 다른 점입니다.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은, 기계로부터 독립하기위해 '달콤한' 가상 현실을 버리고
'비참한' 현실을 택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그러한 투쟁을 하는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모피스는 인간이 기계부속품화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되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요. 그러나 그들도 그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오히려 인간들을 '그' '비참한' 현실로 해방시키는
것이 더욱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매트릭스]의
마지막 네오의 전화통화 장면에서 네오도 그런 얘기를 하지요. "이제부터
시스템을 멈추고 매트릭스를 정지시켜 사람들에게 진짜 현실을 보여주겠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즉 이들의 투쟁이유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보다는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는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 드린 바대로 [아바론]은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머피의 표현을 빌어서 얘기하자면, [매트릭스]의 네오와 그 동료들은, '현실'에
현혹된 자들입니다. 머피는 "이곳이 너의 필드이다"라고 이야기 하지요. 그리고
그 의미는 애쉬 또한 자각하고 있지요. 이미 현실에서는 추구할 것이 사라져버린
그녀, 게임속에서 최고의 여전사로 불리우는 그녀에게 필드는 당연히 게임속
가상현실 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바대로, 그녀에게는 현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게임속에는 그녀가 추구할 '그 무엇'이 존재하고, 그녀
또한 게임 속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인식론적인 질문을 던진 끝에 결국 비록 아무것도
추구할 것이 없더라도 '현실'이 중요하다라는 유물론적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바론]에 있어 존재의 의미는 '어느쪽이 현실' 이라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내가 추구할 것이 있는곳, 그곳이 바로 나의 필드가
되겠지요.
영화가 끝나면 감독은 다시한번 관객들에게 말합니다. "Welcome to Avalon"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은 말로 바뀔수 있겠죠.
"이곳이 너의 필드이다."
당신은 자신의 필드에서, '그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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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론(2000, Av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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