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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지우는 방법....내 머리속의 지우개 내 머리속의 지우개
inbi 2004-12-02 오후 12:14:53 1786   [7]

 

우리들에겐 조금씩의 지우개가 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사용되는. 만일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좋았던 기억으로 웃을수도 있겠지만 고통스럽던 기억..그리고 슬펐던 순간들이 또한 가슴을 시리게 하겠지. 날이 간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는 거 때문에 지나간 일들은 떨어진 낙옆처럼 조금씩 삭고 허물어져...바람에 흩어지고, 그러므로 또한 봄날이 오길 기다리고 새순이 돋기를...이파리가 무성하길 그리고 그 아래서 피리를 불 수 있길 기다리는 게 아닐까.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잊어가지만 기억하여서는 안될 아픔들도 같이 잊어가는 것. 그것이 상실이 필요한 이유, 지우개가 있어야 할 이유이다.

유학파 이재한 감독의 '내머리속의 지우개' 이 영화를 만든다고 할때 보고싶었다가 너무 많이들 보니까 보기 싫었다가 간판 내리기 전에 마땅히 볼 게 없어서 결국은 보게 되었다. 요즘은 개인적으로 '사랑' 코드가 좀 별로다. 그건 아마 담백하고 건조한 내 시간들의 부산물이겠지. 결론적으론 아무튼 뭐 눈물짜면서 나름대로 공감하면서 잘 봤다.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눈물나는 이런 로맨틱 영화도 계절영화처럼 나와줘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노가다와 청순한 디자이너의 만남, 결핍된 가정에서 불운하게 자란 남자와 남부러울 것 없는 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 여자. 남자는 사랑을 믿지 않고, 여자는 사랑에 치였다. 대조적인 스타일들인 그들이 편의점문앞에서 콜라하나갖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찡~ 하니 교감이 통한다. 유부남을 사랑했던 그녀. 그녀가 그 실연을 덮어버릴, 혹은 지워버릴 더 멋진 지우개를 만나는 것이다. 결국 실연이 이유가 됐는 지는 모르나, 그녀는 자신스스로도 지우개가 되어.....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워버리지만.

그런말이 있다. 사랑의 아픈기억을 지우고 싶거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라는. 그말은 확실히 맞다. 옛기억에 아픔을 간직한 채 그 추억의 장소, 함께 했던 시간들 기억들을 떠올리며 주구창창 눈물짜고, 같은 내용을 가진 슬픈 영화, 음악, 사연들을 섭렵하면서 흑흑대다보면 어느사이엔가 눈물이 서서히 마른다. 깊이 슬퍼하는 것도 가타르시스중의 하나이고 보면 이런 것은 결코 나쁘진 않다.

그러나 중요한건...이 방법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요즘은 패스트푸드의 시대, 기다림이 자꾸만 짧아지는 시대이다. 그래서...자주, 혹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지우는 방법으로 다른 사랑을 만나는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어느 초보 킬러가 살인후에 심리적인 고통이 심했다. 그에게 노련한 킬러가 말했다. '그러면 또 죽여. 그게 힘들면 또. 그러면 점차 옅어질거야. 그게 고통을 잊는 방법이야' 라고. 반복된 어떤 것들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옳고 그른것을 제껴두고말이다. 의도하든 안하던 그녀는 기차역에서 오지않는 연인을 기다리다 지쳐..가방을 메고 돌아서며 그렇게 다짐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 지우개를 찾을테다' 라고. 자신의 아픈 기억을 온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덮어버릴 수 있는 새로운 사랑의 지우개. 그래서 좀 더 스피디하게 그와 함께 잤을 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상으로 만남은 짧게 갔어야했고 결혼생활이 주된 배경이지만).

아무튼 그둘이 사랑하는 건 참 이뻤다. 화면 가득 그녀와 그의 얼굴만이 클로즈업됐을 때 사랑의 달콤함이 쵸컬릿처럼 감돌았다. 결핍된 성장과정에 비해선 생각보다 훨씬 여자를 잘 위해주던 남자. 요리도 마음씀도 자상하고 배려심있다(노가다에 이런 스타일은 조금 드물다. 대체적으로 보수적이지 않나) 그녀는 이쁘고 일잘하며 사랑스럽다. 그 둘이 알콩달콩 사는 것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겉은 허접한 공사판 가건물 같은데..건축일하는 사람답게 나름대로 아늑한 실내공간이 보기 좋았다. 때로 내용과 관계없이 뜬금없이 멋지고 화려한 가구들이 가득한 영화들을 보게 되는데 리얼한 이런 배경을 좀 배울일이다.

정우성이 멋있다는 생각을 첨 한 영화다. 똥개에서보단 좀 덜 리얼했지만 우는 것도 첨봤고..나름대로 몰입해서 볼만 했다. 늘 보던 정장슈트차림은 좀 식상하지만...스타일이 나름대로 멋있군. 하고 늦게서야 손을 들어주었다. 손예진은 맑고 순수한 이미지가 잘 어울렸지만 치열한 연기를 한다는 느낌은 아직 들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는 듯한 그녀의 눈빛은 그래도 꽤 잘했단 생각이 들지만.

드라마틱한 생존의 또다른 요소들이 없는 요즘 주요 소재는 늘 인간의 유한한 생애ㅡ 거기에 있어 잔인한 고통이 수반되는 병고 - 가 늘 한몫을 차지한다. 기억을 조금 빨리 잊는 다는 것. 알츠하이머라는 병역시 고통스럽기는 암이나 다를 바 없다(젊은 그녀가 걸렸다는 것은 드라마적인 작위성이 보이지만). 좀 다른건 본인보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고통스럽다는 거. 내가 눈물 흘렸던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 하는 생각을 내내 하며 본 것이다. 그건 정말 아픈일이지 않나. 우리는 많은 시간과 기억들을 공유하면서 친구가 되고 사랑이 된다. 그의 눈동자에 가슴 '나'가 지워지는 아픔은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그것보다 더 아플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시선에서 그남자가 제껴지는 순간마다 얼마나 그 남자가 아팠을까 하고...공감하면서.

이 영화는 가을과 겨울의 길목인 요즘 보기 좋은 영화다. 적당히 우울하고 센치한 감성들을 일으키며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아마 남자들은 별로일 수도 있겠다. 사철나무같은 할리웃 액션도 아니고, 자극적 소재 혹은 역동적인 무엇도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아무튼 다시 돌아오지 못할 자신만의 세계로 떠난 극중의 그녀와는 달리, 이 낙옆이 날리는 계절의 상실은 새순이 돋는 봄날, 겨울의 꼬리를 물고 다시 나타날 것이므로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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