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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모토 신야식 사랑이야기 6월의 뱀
ghostdog1895 2004-12-04 오후 2:11:02 2643   [20]

숲과 나무를 보면 기분 좋아진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거대한 고층빌딩과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없이는 단 1시간도 못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스크린이 제법크고 사운드가 좋은 극장이 30분 내로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고, 내 방에는 TV와 비디오, DVD 플레이어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재래시장도 좋아하지만 대형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이 편하고, 회사나 집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야 한다. 24시간 되는 식당이 있으면 더 좋다. 가방 안에 언제나 갖고 다니는 물건으로 책도 있지만 CD 플레이어도 있다. 내게는 울창한 숲에 있는 나무보다는, 늘어선 건물과 보도를 사이에 두고 가로수로 서있는 나무들이 더 좋다. 그 나무들이 떨궈낸 낙엽을 밟으며 매연을 맡는게 익숙하다. 나는, 그러니까, '도시인'이다.

수많은 영화들이 도시를 다룬다. 얼마전 본 <콜래트럴>도, 실은 톰 크루즈나 제이미 폭스가 아니라 LA라는 도시 자체가 주인공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도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그려내는 감독이 마이클 만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도시 자체에 천착하는 감독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내가 알기에,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라는 곳의 특성을 가장 잘 간파하고, 이것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통찰력있게 보여주는 드문 감독 중 하나가 츠카모토 신야다. 게다가 그는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비주얼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스토리텔러형 감독들의 영화들처럼 짜임새 있고 촘촘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보다는, 느슨한 설정들의 여백을 이미지의 상징으로 채우며 자신의 철학을 풀어나가곤 한다.

몸이 철로 변해가는 <철남>은 결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도시의 철기문명을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철기문명 그 자체의 일부로 변해버린 - 근대 철학자들이 '소외'라고 불러온 - 현대 도시인들에 대한 우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스스로도 언제나 자기는 메트로폴리스와 인간의 육체라는 주제를 다룬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의 영화는 <동경의 주먹>에서도 보이듯, 몸에 대한 관심이 많고, 몸과 몸이 폭력적으로 맞붙는다.

그리고, 몸과 몸의 격렬한 접촉이라면 '주먹질' 외에도 '섹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6월의 뱀>이 다루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츠카모토 신야 감독이 '에로틱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핏 생각하면 굉장히 의외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 그러니까 이건, 츠카모토 신야식 사랑 이야이기이다.

섹스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가 있다. 남자는 집에서도 계속 일만 하거나, 끝없이 하수구를 청소한다. 한번도 제대로 여자에게 시선을 주는 적이 없다. 여자는 언제나 그의 그런 뒷모습만 본다. 그들 사이에선 제대로 된 대화도 없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 부부침실 대신 소파에서 따로 자는 남자에게 언제나 이불을 덮어주고, 집에서도 일에 열중하는 그에게 계속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느낌일 텐데도, 그녀는 소통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욕망을 해결하지 못하는 고통을 혼자 짊어진다.

이들의 삶에 낯선 침입자가 끼어든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행해지는 관음증과 스토킹은 몸과 몸이 맞붙는 폭력이 아니라 오로지 말과 메시지의 전달로만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그럼에도 그 위력은, 잘 단련된 주먹을 내지르는 것만큼이나 펀치가 세다. 여자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진을 돌려받기 위해 스토커의 협박을 무마하기 위해 그가 시키는 대로 요구들을 들어주는 여자. 그리고 뜻밖에 드러나는 비밀. 역시, 몸과 관련된.

클라이맥스 장면. 여자는 관음증에 기꺼이 대상이 되어 자신을 노출하면서, 그리고 현대 기계문명이 만들어낸 쾌거의 발명품(심지어 리모콘도 달린 자위 기구)을 통해 오르가즘에 도달하고, 남자는 여신처럼 빛나는 그녀를 보며 자위를 통해 오르가즘에 도달하고, 스토커는 그녀의 사진을 찍음으로서 오르가즘에 도달한다.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낸 그녀는 오르가즘 이후 웃을 수 있지만, 남자는 스스로 비참해할 수밖에 없다. 스토커는 그녀의 희미한 웃는 얼굴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츠카모토 신야 식의 몸과 몸이 맞붙는 폭력은 이 클래이막스 이후 진행된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츠카모토 신야의 관점에 따르면, 자신의 육체적인 욕구를 계속 지워나간다. 그리고 외롭고 바쁘다. 이 고독은 도시 자체가 만드는 것이지만, 얼마쯤은 사람이 도시에 적극적으로 적응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도 만들어낸다. 사실, 도시인들은 사람을 직접 만나서 대면하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의 경우에는, 역시 인터넷의 야한 동영상을 보며 자신의 욕망을 달래고 있고. 우리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갈 뿐. 그리고 그렇게 도시에 적응해 사는 동안 우리의 몸엔 병이 깃든다. 현대인들이 비만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의 몸이 점점 퇴화되는 걸 막기 위해선 따로 시간을 만들어 헬스장의 '기계' 위에서 뛰어야 하지 않는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운명이란 그런 것이지 않는가.

그러니 몸을 긍정하고, 몸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순간, 그 도시인의 삶엔 균열이 올 수밖에 없다. 끝없이 외롭다고 타령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고독에 밀어놓고 있는 우리들이 유난히 연애에 집착하며 각종 사랑 노래를 듣고 각종 에로티시즘을 탐하는 것도 실은 몸과 몸이 만나는 그 순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6월의 뱀>에서 여자에게 그 계기는 다소 폭력적으로 주어졌지만, 그녀가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변해가는 것, 그리고 이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엄청난 혼란과 변화를 일으키는 것 역시, 결국은 소통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다. 그렇기에 각자 자기 혼자 욕망을 해결해야 했던 이들 중 부부가 영화 엔딩에 와서 길고도 처절한 정사를 마침내(!)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고 직접 소통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나,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나 역시 내 주위에 원을 하나 그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그러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버리는 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사람과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기보다는 전화로, 인터넷으로 더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방법으로 소통해야겠구나, 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몸의 요구가 무언지, 내가 너무 내 몸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또 그걸로 알게모르게 내 주변사람들을 내가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결국 나는, 츠카모토 신야의 사랑 이야기에 단단히 설득되고 만 것 같다. ... 그래, 너무 늦기 전에, 사랑해야지. 절절하게 사랑해야지.

사실 글로 풀어놓고 보면 스토리는 단순한 것 같지만서도, 워낙에 여자 배우가 파워풀하고 아름다운 데다가 - 자기 몸을 긍정한 뒤 드러내는 자신감이 그토록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 츠카모토 신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면들의 그 묘한 매력들,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스토리를 끌고 나가버리는 능력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다른 감독들이라면 지저분하게 화면으로 구구절절 다 보여줄 만한 것들을, 그는 그냥 서로 다른 상황 두 개를 화면과 나레이션으로 겹쳐놓으면서 쓸모없는 화면 낭비를 피하고 있다. 스토커로 직접 출연하는 '배우' 츠카모토 신야의 연기도 아주 인상적이고. 영화란 게 그저 스토리만이 아닌, 기본적으로 '영상'이란 걸 생각해 본다면, 지금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 중 츠카모토 신야만큼 개성적인 비주얼을 선보이면서도 대사나 스토리보다 그 비주얼, 이미지들로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감독이 또 얼마나 있나, 생각이 든다.


(총 0명 참여)
seeyousky
왠만하면 평같은거 안읽는데.. 정말 잘쓰셨네요   
2006-02-20 01:50
잘 읽었습니다. 영화가 잘 정리되어 와닿습니다.   
2005-02-08 19: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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