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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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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3 오후 7:5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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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언제부터 산타를 믿지 않았는가 한번 생각해본다. 아마 한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1,2학년까지도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믿었었다. 선물이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될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양말을 준비해다가 자기 전에 머리맡에 놔두기도 했고, '우리 집은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오시지?'하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이 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어느덧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퍼진다.
지금? 물론 산타를 믿지 않는다. 그 이면을 제법 잘 알고 있다.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니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의 시뻘건 복장과 몸매가 코카 콜라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확실히 이제 성인이 다 된 나에게 산타라는 존재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은 아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사람들(어린이들 제외)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정말 산타가 없을까?'하고 딴지를 거는 영화다. 물론 딴지를 건다고 해서 무조건 '산타는 존재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산타를 믿으라는 말 자체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더 깊은 뜻을 이 영화는 강조하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평범한 가정에 사는 소년. 아직 천진난만한 끼가 묻어 있으나 이 소년은 이제 막 산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려고 하는 시기에 놓여 있다. 엄마와 아빠가 몰래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백과사전에서 산타가 산다는 곳인 북극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뒤로 그 의심은 더욱 커져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순간, 소년의 집 앞에 뜬금없이 엄청난 스케일의 기차가 요란한 빛과 소리를 내며 멈춰 선다. 그러더니만 차장이 나와 북극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금방 북극에 생명체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건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소년은 혼란스럽지만 일단 탑승햅본다. 그 이후, 소년의 삶에서 잊지 못할 대단한 여정이 시작된다.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전반부가 소년을 비롯한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북극까지 가는 과정이고 후반부는 북극에 도착한 뒤 겪는 일들이다. 중간 중간에 자잘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큰 극적 반전이나 갈등도 없이 지극히 평탄하고 단순하게 흘러간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볼 때, 줄거리만 따라가면 금방 싫증이 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그래픽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지금껏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다. 배우의 온 몸에 촘촘히 센서를 달아 얼굴의 미세한 표정 하나까지 포착하는 '퍼포먼스 캡처'라는 기술을 사용했는데, 이 신기술은 영화 속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낸다. 눈을 찡긋거리는 등 얼굴의 미묘한 표정들, 말할 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제스처 등 사람이 하는 동작들을 그대로 포착해서 그 위에 그래픽을 입혔기 때문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가 없다. 이 뿐이랴. 그래픽으로 만든 사람의 겉모습까지 눈동자의 미세한 색깔, 잡티, 수염 자국까지 모두 잡아내 사실적인 느낌을 더했다. 이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파스텔톤의 분위기와 더해져 더욱 인간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이는 <파이널 환타지>의 겉모습은 사실적이었지만, 행동 모양새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던 면을 훨씬 뛰어넘는 3D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세한 그래픽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영화 내내 정신을 놓지 않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줄거리가 워낙에 단조롭고 굴곡이 없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점을, 영화는 그 사이에 스릴 넘치고 쉴틈 없는 볼거리를 채워넣었다. 기차가 북극까지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 상황들-굴곡 많은 철로를 간다거나 얼음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경우-에서 펼쳐지는 스피디한 영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3D 입체 상영관에 앉아 있는 듯 박진감이 그대로 전달돼 아찔한 느낌을 유감없이 준다. 또한 어린이 캐릭터들과 차장 등 각종 캐릭터들이 펼치는 왠만한 액션 블럭버스터 못지 않은 '기차 액션' 신들도 박진감을 증가시키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한다. 다른 면들은 고려하지 않고 이런 스릴 넘치는 화면만 감상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건질 것은 확실히 있을 것이다.
1인 5역을 너끈히 소화해 낸 톰 행크스의 천의 목소리 연기도 재미를 주는 요소 중 하나다. 톰 행크스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 소년의 아버지, 차장, 부랑자 유령, 산타클로스 등 1인 5역의 연기를 해냈는데, 목소리 하나하나가 비슷비슷하지 않고 뚜렷한 개성이 있어서 톰 행크스는 실사 연기 뿐 아니라 목소리 연기까지 프로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해준다.(그런데 주인공 소년의 목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톰 행크스 같지 않았다. 오히려 조연급으로 나오는 안경 쓴 잘난척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좀 비슷했다. 혹시...?!) 지극히 사무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이 풍기는 차장, 자유분방하고 불량끼가 다소 있는 부랑자 유령, 자상함이 잔뜩 배어나오는 소년의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넉넉함이 묻어나는 산타클로스 등 톰 행크스의 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모두가 캐릭터에 꼭 맞는 분위기를 선사해주었다.
섬세한 그래픽 기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한 스릴, 톰 행크스의 대단한 목소리 연기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따라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이 영화가 끝부분에 이르러서 내미는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산타를 믿어보세요. 크리스마스를 믿어보세요.' 사실 이 메시지는 다소 고리타분하고 낯간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그만큼 크리스마스에 목숨걸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대다수가 더 이상은 산타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두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산타는 더 이상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존재가 되어버렸고, 그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어렸을 적보다는 덜 설레이고 두근거리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이러한 메시지는 왠지 모르게 시간이 지날 수록 거부감은커녕 오히려 공감이 간다.
영화 속에서 산타는 단순히 산타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산타는 '순수'라는 의미도 된다. 아직까지 산타가 허구의 존재라는 걸 모른 채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영화 속 아이들은 세상물정을 다 알아버린 듯 성숙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어린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설렘을 갖고 있고, 자기만 아는 이기심이 아닌 불쌍한 남의 처지를 생각해 줄줄 아는 착한 마음도 갖고 있다. 낯선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매사에 호기심을 갖는다. 이러한 모든 모습이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세상과 피부를 맞댈 시간이 많아지고, 현실을 알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환상을 서서히 잃어가는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선 한번쯤 부러워질 법도 한 모습이다. 이러한 '순수'라는 덕목을 영화는 '산타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믿으라'는 말을 통해 상징하며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에 산타를 믿었던 그 때처럼, 나이가 들더라도 순수한 마음을 한 구석에 품고 있으라고.
'순수' 뿐 아니라, 영화가 주는 교훈은 좀 더 있다. 영화에는 주인공 소년 말고도 세 명의 주된 캐릭터가 더 나오는데, 모두가 뚜렷한 개성이 있다. 나약함은 찾아볼 수 없이 매사에 적극적인 소녀, 기차에 타긴 했지만 시종일관 외롭고 소심해 보이는 소년, 아는 건 많아보이지만 겸손함은 별로 없는 듯한 소년, 이들의 모습은 영화 내내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이르러 차장이 그들의 티켓을 통해 중요한 삶의 메시지를 전달해준다.(영화를 보면 그 메시지들을 각각 알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이제 자라가는 어린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어른들이 봐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솔직히 깨달은 점이, 이 영화는 <나홀로 집에> 이후로 크리스마스용 영화로는 가장 완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크리스마스 소재 영화들 중에 <그린치>가 가장 돈을 많이 벌었다지만, 우리나라 사람 정서에는 오히려 이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가 더 잘 맞는다. 러닝타임 내내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특수효과와 박진감 넘치는 영상은 물론, 그런 재미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기차의 종착역처럼 맞이하게 되는 이 영화의 메시지 등, 아이와 어른이 함께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크리스마스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 처음 열차가 도착할 땐, 좀 유치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쉴 틈 없는 전개를 따라갔다가 막상 하룻밤을 지나 돌아오게 되면, 그 여정이 새삼스레 여운으로 남는다. 정말 한번쯤 해보고 싶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산타도 한번쯤 믿어보고 싶게 만드는. 물론 이미 산타의 허구성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산타를 꼭 믿어야 할 필요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싱숭생숭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지금 또 한번 느껴보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렸을 적의 설렘으로 돌아가게 하는 마력을 지닌 매력적인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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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익스프레스(2004, The Polar Express)
제작사 : Castle Rock Entertainment, Warner Bros. / 배급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수입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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