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흥행 영화 한번 못 만들어 본 33살의 영화감독인 현성(장현성)은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다 문득 10년 전 첫사랑과의 약속이 떠올라 제주도 옆 우도라는 섬으로 향한다.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첫 사랑의 그녀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현성은 사실 첫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곳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묵게 된 모텔을 관리하는 해맑은 웃음의 재수생 소연(이소연). 밝은 모습 뒤에는 우도에 뭍힌 어머니와 실연의 상처를 품고있는 삼촌의 아픔이 있고, 무용과에 들어가고픈 꿈이 있다.
<거미숲>의 연출을 끝낸 송일곤 감독은 환경영화제에서 단편의 연출을 의뢰받고 가볍게 이 영화를 완성했다. 애초 환경영화제에서 요구했던 30분에서 70분짜리의 중편 영화로 완성된 <깃>은 송일곤 감독의 자의식이 강한 작품 세계에서 보다 자유로운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와도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7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촬영한 영화, 러닝타임이 70분이라는 것 등 만으로 이 영화를 평가하기엔 이 영화의 값짐은 예상외다.
사랑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상처를 치유한다는 일반적인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에서 송일곤 감독이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들로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독특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평원에 놓여져 있는 피아노, 소연이 추는 탱고, 공작새 등의 상징은 이 영화가 주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도라는 공간이 주는 아름다운 배경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장면 등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사람의 감정도 변화함을 적절히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상징들로만 가득찬 어려운 영화는 절대 아니다. 분명 TV문학관 같은 단막극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약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보편 타당한 정서를 이 영화는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 스스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과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에서 끄집어 내는 감정의 미묘한 흐름에서 공감대를 끌어낸다.
또한 현성이 배를 타고 우도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소연의 행동은 일순간 관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는 것은 70분 동안 이 영화가 관객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해왔음을 증명해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단, 마지막 서울에서 장면은 웬지 사족같아 못내 아쉽지만.
<깃>처럼 작은 영화에서 큰 것을 얻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도에 다녀온 듯한 느낌 그리고 그 어떤 상처를 봉합한 느낌이 나에게도 느껴진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