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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가장 냉정한 해석 클로저
jimmani 2005-02-04 오후 1:30:53 3340   [20]

이 영화 <클로저>는 이 포스터에서부터 대강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포스터 위의 네 사람은 일체의 감정을 싣지 않은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져 있는데, 그런 애틋한 감정같은 게 전혀 없이 오히려 지극히 차가워보인다. 거기다 이들 모두 얼굴을 반쪽만 보여주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드러나 있는 반쪽 얼굴. 그 이면에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일까. 제목처럼 네 사람은 한없이 가깝게 서로 따닥따닥 붙어 있으나, 동질감이나 일체감은커녕 각자 고립되어 있는 느낌만 더한다.

이렇게 <클로저>는 기존의 로맨스 영화와는 대단히 다른 면에서 사랑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사랑의 낭만적인 면을 그린다기 보다는, 포스터 속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반쪽 얼굴을 들추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흔히 헐리웃의 전형적인 로맨스물에서 보아온 가슴시리거나, 달콤한 사랑은 여기에 없다. 헐리웃 최고 배우들의 '감성 멜로'라는 홍보 문구에 혹하신 분이라면 아쉽게도 길을 잘못 찾으셨다. 이 영화는 멜로라기보다는 사랑을 주제로 한 심리 드라마에 더 가깝다. 커플끼리 본다면 대략 뻘쭘해질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특히 첫눈에 반한 커플이라면.

이 영화에는 네 명의 남녀, 즉 두 명의 커플이 등장한다. 댄(주드 로)과 앨리스(나탈리 포트먼), 안나(줄리아 로버츠)와 래리(클라이브 오웬)가 각각 커플이다. 댄과 앨리스는 길에서 교통사고 현장을 통해 찌릿하게 첫눈에 반했고, 안나와 래리는 음란채팅 번개 자리에서 사람을 잘못 찾은 걸 인연으로 하여 급속히 가까워졌다. 두 커플 다 첫눈에 반한 사랑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게 계속되면 그대로 전형적인 로맨스지, 두 커플은 서로의 파트너와 가까워지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댄은 안나와, 앨리스는 래리와 범상치 않은 관계를 시작하면서 네 사람의 관계는 복잡해지고 사랑만 갖고 모든 게 될 줄 알았던 두 커플의 사랑은 더 치졸한 경지에 다다른다.

우선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것은 화려한 캐스팅이다. 래리 역의 클라이브 오웬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 모두 지명도가 높은 배우들이다. 보통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들이 정작 내실은 부실한 면이 많은 데 반해,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연극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일체의 주변 인물 없이 오직 이 네 사람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덕분에 영화는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이 네 배우들의 연기와 매력을 보여주는데 집중해서 오히려 배우들의 진가를 더욱 잘 발휘하게 해주었다.

인지도나 연기 경력 면에서 가장 선배인 줄리아 로버츠는 영화에서 선배답게 중심을 굳건히 받쳐주며 영화를 지탱해준다. 남의 인생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는 사진작가답게, 너무 두드러지지도 너무 뒤쳐지지도 않게 적절한 연기로 영화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주드 로는 특유의 섹시 가이 이미지를 어느 정도 잘 활용해, 스스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져 무모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뒤틀어진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철이 덜 든 소년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었다.

정작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 할 배우는 나탈리 포트먼과 클라이브 오웬이다. 둘 다 이번 아카데미 남녀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만 봐도 그 위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근데 사실 이 두 배우도 조연은 아닌 거 같은데...-_-;;) 확실히 이미지나 연기력 면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굳힌 줄리아 로버츠와 주드 로와는 달리 이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나탈리 포트먼과 클라이브 오웬은, 그 과정에서 확실히 인상에 깊이 박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채이는 입장이 더 간절해지듯이, 이 두 배우의 연기도 한층 간절하고 또 강렬하다. 나탈리 포트먼은 자기 감정에 충실한 여인으로서, 때론 대담하지만 연약하기도 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거기에 스트립댄서라는 역할에 맞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과감한 노출을 시도하면서 아직까지도 좀 남아 있던 아역 출신의 소녀 배우 이미지를 확실히 날려주었다. 클라이브 오웬은 겉은 전형적인 젠틀한 영국신사같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에 대한 무서운 집착을 갖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사랑을 소유라는 면에서 더 고려를 하는 사람으로써, 그 사랑을 잃음으로써 이성을 잃는 남자의 모습을 소름끼치게 보여주었다. 이 영화로, 그는 <킹 아더>에서의 전형적인 영웅같은 모습은 확실히 좀 안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영화는 기존의 말랑말랑한 로맨스 영화와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사랑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편에 속하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 마저도 의구심이 가게 한다. 첫눈에 서로를 마주보며 서로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난 듯 미소를 짓는 댄과 앨리스, 그러다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앨리스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급속히 가까워지지만, 첫눈에 반한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깊지 못했다. 이미 댄의 거짓말은 한창 진행중이었고, 결국 앨리스 역시 댄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둘 사이의 진실이라고는 오히려 밝히면 추하게만 되는 부분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안나와 래리 역시 마찬가지다. 둘은 결혼까지 하며 나름대로 잘 사는 듯 싶었으나, 실은 서로 숨기고 있는 '반쪽 얼굴'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사랑은 서로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다소 진부하지만 당연한 진리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데 익숙하고 거짓말을 하는 게 생활화된 현대인들의 사랑 방식을 통렬하게 비꼬고 있다.

이렇게 거짓에 익숙한 사랑에 대한 풍자는 영화 음악에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영화 상당 부분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하지만 가만 보면 그 장면들은 클래식이 나오는 데 다소 어울리지는 않는다. 연인이 있는 사람이 음란채팅을 즐기고, 연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야릇한 감정을 나누는 장면에서 능청스럽게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아마도 겉은 우아하고 고상한 듯 포장한 사랑의 이면에 실은 추하고 거짓된 모습이 내재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지 않나 싶다.

이러한 이 영화의 사랑에 대한 시각은 주인공들의 직업을 통해서도 대강 알 수 있다. 댄의 직업은 부고전문기자로서 소설가를 꿈꾼다. 남의 추한 면도 완곡하게 표현하는 그의 직업처럼, 사랑의 어두운 면은 무시한 채 오로지 순간적 감정에 충실해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모습이 있다. 안나의 직업은 사진작가. 남의 슬픔을 사진으로 찍음으로서 얼핏 보면 객관적인 듯 하면서도 실은 그것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끔 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그녀의 직업처럼, 그녀의 사랑도 얼핏 중립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한 쪽으로 접근하려는 속성이 있다. 래리의 직업은 의사. 이성적인 분석이 생명인 직업이다. 이처럼 그의 사랑도 마음으로 하는 깊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딴 남자와 잠을 잤는지 안잤는지 등 외면적인 데에만 치중하고, 마음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꼬치꼬치 캐물음으로서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이성적인 측면이 상당히 강하다. 이성을 동반자라기보다는 소유물로 여긴다는 점에서 차가운 이미지가 더 심화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스트립댄서인 앨리스가 어찌보면 가장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 앞에서 옷을 벗는 그녀의 직업처럼,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떠나려는 사랑 앞에서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붙잡고 울기도 하며, 사랑이 식은 사람에게는 냉정하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아마 넷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인간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지 않나 싶다.

영화 처음과 끝에 나오는 노래는, 똑같음에도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참 다르게 들린다. '어떤 배경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나는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가사는, 처음 댄과 앨리스가 만나는 장면에서 참 낭만적으로 들린다. 구차한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서로에게 끌리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다. 그러나, 험난한 관계에서의 모험을 거치고 난 마지막에 이 노래를 들을 때는,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처음 끌리는 순간에만 집중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사랑이라면 그외 고려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을 텐데, 너무 처음의 순간적 감정에만 충실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타 헐리웃의 로맨스 영화가 아무리 과정이 험난해도 마지막은 원만하게 마무리하면서, '그래도 사랑은 좋은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영화 <클로저>는 '이래도 사랑이 좋아?'라고 반문한다. 예전 멜로 영화에서처럼 서로에게 목숨을 걸고 진실되게 눈물흘리고 기뻐하는 사랑은 사라지고, 오로지 순간적 감정에 충실하고 상대방에게 거짓을 말하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의 사랑, 진정 사랑하는 데도 자신의 모든 면을 드러내지 못하고 언제나 반쪽은 숨기며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을 마음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머리로 계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영화는 풍자하고 있다. 말랑말랑한 면은 일체 배제하고 사랑의 추한 면을 보여주면서, 사랑에 관해 지극히 냉정하고 비관적인 해석을 하면서도, 어찌보면 현대인의 이러한 사랑 방식을 비판하며 보다 진실하고 깊이 있는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육체적으로는 가까워지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멀어지는 사랑. 현대인의 사랑은 진정 이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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