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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도전 혹은 지독한 강박 에비에이터
jimmani 2005-02-19 오후 10:38:58 1608   [7]

뭐든지 한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람 마음상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주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의 흥미나 목표는 충분히 바뀔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다양한 방면의 일을 한번 건드려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밖에서 마냥 볼 때랑, 실제로 그 일을 할 때와 느낌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막상 다른 일을 시작하면 이도저도 못하고 낭패를 볼 때가 많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들 한우물만 파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끔씩 여러 우물도 깊게 잘 파는 사람이 있다. 흥미가 닿는대로 확장을 하면서도 모두 똑부러지게 잘 해내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부터 얘기할 영화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하워드 휴즈 또한 그렇다. 자신이 갖고 있는 빵빵한 재력을 바탕으로, 여러 방면에 도전을 했으며, 모두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영화 <에비에이터>는 이렇게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과거 헐리웃의 팔방미인 하워드 휴즈의 흥망성쇠를 담담하게라기 보다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화려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하워드 휴즈라는 사람이 미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인물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 유명하진 않으므로, 그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카데미 최다 후보작, 호화 캐스팅 등 영화 외적인 화제로 인한 호기심으로 영화를 봤다.
 
청년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전염병 예방에 대해 지겹게도 들어온 때문인지 상당한 수준의 결벽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물 갓 넘어서 채굴 사업으로 떼돈을 벌며 부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쌓은 재산을 모아두기는커녕,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비행기 80여대와 조종사 130여명이 실제로 비행하며 촬영하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엄청난 물량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헐리웃 베테랑 관계자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 <지옥의 천사들>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하나의 목표를 이룬 듯한 하워드 휴즈는 다음으로 항공기 제작에 돌입한다. 한편으론 캐서린 햅번, 에바 가드너, 진 할로우 등 신예 여배우들을 스타로 만들어내고, 한편으론 항공기 사업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이게 생각대로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이 영화 <에비에이터>로 만들어질 만큼 극적인 소재가 될 수는 없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을 설명하라면, 이 영화는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영화'라는 것이다. 이제 서른을 넘긴 이 젊은 배우는 지금까지 가능성만 끊임없이 보여주다 드디어 이 영화에서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켰다. <길버트 그레이프>의 정신지체아 동생 '어니' 역 이후, 그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타이타닉>,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에서 보여준 귀공자 이미지는 역할상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내면의 모습은 귀공자와는 거리가 멀다. 잠시도 놀 때가 없고, 웃을 때도 극히 드물어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는, 과민의 극치를 달리는 청년이다. 역할의 특성상, 당연히 연기력이 따라줘야 하는 법.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역할을 실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마에 역삼각형의 주름을 아낌없이 만들어내며, 표정과 몸짓, 신경질적으로 반복하는 대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정말 영화 속 하워드 휴즈에 완전히 동화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타이타닉> 이후 잠시 슬럼프를 겪었던 디카프리오. <갱스 오브 뉴욕> 이후 마틴 스콜세지가 확실히 그의 재능을 완전히 꽃피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같이 찍을 게 두 편 더 있다는데, 그 작품들에서도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싶다. 이제 적어도 그에 대한 이미지에서 꽃미남 배우라는 요소가 상당히 사라지고, 거기를 연기파 배우라는 요소가 메운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간간히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은 역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해주더라.-_-;;
 
물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말고도 캐스팅이 화려한 만큼 다른 여러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특히나 캐서린 헵번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디카프리오 못지 않은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휴즈 속에 또 다른 휴즈가 너무 많은 것 때문에 힘들어했던 그녀. 독특한 액센트로 영어를 구사하는 도도하고 독립적인, 그러면서도 연약한 모습은 때론 웃음을 주면서도 때론 강렬하고 짠하기도 했다. 에바 가드너 역의 케이트 베킨세일은 상대적으로 연기 면에서 특별히 깊은 인상을 심어주진 못했으나, 미모만은 정말 그 당시 미녀 배우의 모습을 보는 듯 고전적인 우아함이 물씬 풍겨나왔다. 조연급으로 나올 줄 알았던 주드 로나 알렉 볼드윈, 그룹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는 거의 카메오급이었고, 윌렘 데포도 중간에 잠시 나와서 의외였다.
 
이 영화 <에비에이터>는 미국의 과거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바로 전작 <갱스 오브 뉴욕>과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갱스 오브 뉴욕>이 미국 역사 속의 어두운 면을 집중조명했다면, <에비에이터>는 스포트라이트로 가득한 화려한 면을 집중조명한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으며 대작 영화를 만들고, 신예 기대주들이 속속 등장하며 헐리웃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세계 최대의 항공기를 만들며 항공 산업 면에서 혁신을 이루는 등, 겉으로 보이는 배경은 단연 세계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목적은 이를 자랑하고자 함은 당근 아니다. 주인공 하워드 휴즈의 삶과 내면을 비추어볼 때, 이러한 미국의 화려한 모습은 오히려 의미 없는 사치로 보인다. 그만큼 하워드 휴즈의 삶이 미국의 삐까뻔쩍한 겉모습만큼 빛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워드 휴즈의 삶에서 '만족'과 '휴식'은 없었다. 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싶으면 다른 목표가 또 생겨서 그 목표를 향해 쉼없이 달려가야만 했다. 2년이 걸려 대작 영화를 만들고 나자, 유성영화 붐이 일어나서 다시 제작에 착수하고, 이제야 영화를 다 만들었다 싶으니 이제는 항공 산업에 도전했듯이. 이러한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때론 무모하게 보였다. 2년 걸려 찍은 영화를 폐기처분하고 처음부터 다시 유성 영화로 찍으라니. 욕들어먹기 딱 좋은 명령이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그만큼 용감하고 값지기도 했다. 대규모 제작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헐리웃에서 그의 야심찬 도전은 좋은 결과를 이루어냈고, 항공 산업에 대한 도전도 결국 발전적인 요소를 가져왔으니.
 
그러나, 이러한 그의 삶은 한편으론 지독하게도 보였다. 어렸을 때 그가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은 거의 좌우명처럼 가슴 속에 새겨진 듯 싶다. 'You're not safe.(넌 안전하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은 뒤에 휴즈가 어른이 되어서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난 뒤, 다른 사람들이 만졌을 화장실 문을 자기 손으로 만져 여는 것을 죽음의 공포만큼 두려워 하는 극도로 신경에 거슬리는 결벽증을 낳았다. 앞에서 언급한 다방면으로의 도전도 어쩌면 이러한 그의 강박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의 말을 다시 섀겨본다면, 그는 안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어디로든 나아가야 한다. 사회에서도 어느 한 분야에 안주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다른 방면으로 진출해야 하고, 그만큼 최대한 완벽을 추구해야 그에게는 안전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워드 휴즈는 최면에 걸린듯 강박적으로 무모하지만 용감하게 도전을 계속해 온 건 아닐까.
이러한 그의 도전 혹은 강박은 영화 내내 보여지는 그의 눈빛에서도 알 수 있다. 잠시도 눈에 힘을 빼지 않고 언제나 째려보고 힘을 주는 그의 눈빛은 때론 카리스마 넘치고 강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소름끼치는 집착을 품고 있어 가까이 가기도 힘들 듯한 인상도 준다.
 
어떤 시기의 역사이든지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 <에비에이터> 역시 미국을 뒤흔들었던 전설적 부호 하워드 휴즈의 실은 어두웠던 인생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 시대의 상황을 양과 음, 이렇게 확실히 두 갈래로 분리하지는 않는다. 겉으론 의심의 여지없이 화려한 삶을 살았던 하워드 휴즈가 사실은 이성 관계도 순탄치 않았고 황혼기도 순탄치 않았던 것처럼, 실은 양이 그 속에 음을 품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에비에이터>는 화려하지만 어둡고 씁쓸하기도 한 영화다.
 
사족 : 자막은 세로로 나오는데 대사는 어찌 그리 많던지... 긴 자막 보랴 화면 보랴 상당히 힘들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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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2004, The Aviator)
제작사 : Warner Bros., Miramax Films / 배급사 : 코리아 픽쳐스 (주)
수입사 : 코리아 픽쳐스 (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avi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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