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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인생, 그 가운데서 빛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inbi 2005-03-13 오후 4:09:37 876   [2]


밀리언달러베이비는 비오는 날 같은 영화다.
조금 젖고 우울하지만 마음깊이 스며드는.
한 때는 봄날이었으나, 봄날의 기억만이 애잔히 남은 현재.

또한 오랫만에 힐러리 스웽크를
다시 봐서 너무나반가웠던 영화이기도하다.
특유의 각진얼굴에 오동통한 입술 소년 브랜든에서,
긴머리의 건강하고도 매력적인 몸매를 드러낸 서른한살 메기로.

회환의 지난날들을 삼키며
조용조용 노년의 삶을 지속하는 프랭키, 스크랩.
뭔가 새로운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낡은 도장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서른한살, 그게 어때서요?

이윽고, 유효기간이 만료된 통조림 같은 그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며 팔을 뻗고 하나씩 하나씩 스텝을 밟아 나간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꿈때문에...모든 것을 거는' 그녀로 인해서.

어색하지 않는 폼과 상당량의 시합분량,
권투라는 것에 대해 별 관심없는 이조차
실제경기를 보는 거 같은 생동감있는 경기,
카리스마 넘치던 매력적인 상대선수,
한방에 날라가던 메기의 시원한 주먹, 와우~
(스웽크가 이것들을 위해 얼마나 땀을 흘렸을 지 짐작이 된다)
모슈쿠라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함성과 갈채~~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되었던 그 순간들.....
아,,,,,좋은 시간들이었다. 정말이지.
그러나,,모든 일들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때로 우울할 때 위로받고 싶어 영화를 보는 때가 있다.
저봐. 저렇게 고통스럽게 살잖아.
그러니 이까짓 현실은 별거아니야 .........하고  생각 하면서 ^>^;.
그러다.....이윽고 주인공의 고난의 시간은
 해피엔딩을 위한 너무나 뻔한 장치였음을 알고서는
그래...영화가 그렇지 뭐, 라고 실망하게 된다 ㅡ.ㅠ
그래서 왠만한 주인공의 고난에도 그냥 마음한자락을 적당히 깔고
영화니까......라고 보게 될 때가 많은데....>.< 그러나.........

밀리언달러베이비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강요하지 않는 해피엔딩,
내리막길임을 소리없이 받아들이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것은 기존 영화에 비해 신선하고도 마음저리는 시도였으므로....

힐러리 스웽크가 조용히 다른 세계로 걸어들어갈 때....
그리고 그 앞에서 희미한 빛으로 빛나며
불투명하고도 조그만 눈에 눈물을 글썽이는 프랭키를 볼 때
삶 그 자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밀리언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기조차 했다.
그래,,,때로 삶이란 어쩌지 못하는 거니까.....

생각해보면, 이윽고 그것은
곧 감독에 대한 경의로 바뀌고 만다.
잘생긴 배우였던 그가  흔히들 '쉬어야할' 때라고 생각하는 노년에
나이먹은게 어때서? 라고 반문하며
그의 주름만큼이나 음울한 나이를 걷어내고 영화를 만들었다.
삶의 그늘에서 조용히 숨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내고....
한 여인의 꿈을  군더더기 없고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감독이란 이름으로 멋지게 섰다.
감독이 곧 프랭키와 메기에게 투영되었음을 확신한다...^.^

빛이 나는 순간이란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는 막을 내리고 짐을 꾸려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가슴한켠에 빛나고 있음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엉덩이를 내밀고
손을 흔들며 걷던 어바웃슈미트의 할아버지,
마라톤에 초원이의 목소리...
비행기에 미쳐있었던 하워드휴즈,
그리고 그외 꿈을 잃거나 꾸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둠이 내리기전의 해질녘처럼 희미한 빛을 내는 그들에게도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또한 발견하는 밀리언달러베이비.
그 외 많은 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

2005, 크린트이스트우드 작.


*게일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혹은 넓은 뜻으로
고이델제어(아일랜드포함) 전체를 가르키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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