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인간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럼에도 기회를 잡기 위해 발버둥치기도 하고,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권투가 너무 좋은데, 이 나이에 그것 마저 포기하라고 하면 내 삶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둔탁하게 이어지는 메기의 샌드백 치는 소리는 보는 이의 손목까지 시큰하게 하고 얻어터질수록 파고 들어야 하는게 권투이기에 그녀의 꿈은 피로 물들어간다. 오른쪽으로 돌기위해서는 왼발을 써야하고, 충격을 줄이려면 턱을 붙어야 하고, 펀치를 날리기 위해서는 때릴 수 있을 만큼 물러서야하는 권투의 기본기는 그래서 우리 삶의 기본기와 너무나 닮아 있다. 지독하게도 삶을 덧댐없이 바라보는 감독의 눈길 때문에, 꿈을 향해 힘있게 다가서는 메기의 발걸음과 그녀를 지켜보는 프랭키의 모습은 영화 '록키'에서처럼 가슴 벅차고 희망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노장들의 삶의 무게가 필름에 고명처럼 얹혀서,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더없이 클래식하고 우직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모든 음악에 장단과 고저가 있듯, 영화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는 법, - 누가 무법자 출신 아니랄까봐 - 이 영화에는 그런 법도 지켜지지 않는다. 가장 높은 지점에 있어야 할 정점은 어느 한 순간에 가장 낮은 곳에서 웅크러져있다. 웅크러드는 것도 모자라 아프고, 아픈것으로도 부족해 다리를 절단해 낸다. 이 영화의 결말은,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쇼펜하우어의 그것처럼, 눈물 쏙 빼놓는 연민과 염세주의적 고통으로 가득하다. '석양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를 스타로 만든 영화의 제목처럼 인생의 석양에 다다른 지금에 와서야 진정한 그의 진가를 세상에 떨쳤다. 두말할 나위없는, 세계가 인정한 2005년 최고의 선택,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삶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과, 또한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이 담긴, 그의 인생 황혼이 드리워낸 백만불짜리 그림자이다. 엔딩 장면을 보면서 숨이 막히고, 숨막혀 말문이 그치고, 말문이 그쳐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왜일까. 잔재주로 서른중반을 교묘하게 버텨온 비겁한 필자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걸, 무겁다는 걸... 눈이 붓도록 가르쳐주었다. (자신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스스로 앞길을 비추고, 스스로 몸을 추스려 나아가는 이 땅의 위대한 도전자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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