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쟁세대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북핵 위험도 있고 미친 일본과의 독도분쟁에도 휘말려있다.
허나 우리는 당장의 밥 걱정보다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 삶의 질의 문제에 더 가까이 살고 있다.
이런 삶 속에서 언론과 인터넷과 그 외 모든 미디어들에 의해 쉽게 감정을 조절당하기도 하고
감정을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
이런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도 지식적으로 충만한 자나 혹은 지혜가 뛰어나 남을 이끌만한 사람들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주목을 받고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추앙을 받는다.
혼란과 지옥의 상황에서 누군가 더 나은 상황을 제시할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르완다에 대량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해결의 키는 유엔과 서방국가들이 분명 쥐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르완다의 가치를 '쓸데없는 수준'으로 인식하고 나서질 않는다.
서방국가들은 다 알고 있지만 나서서 해결의 키를 꽂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영화의 내용은 우리나라가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비슷한 대량학살에 휘말린다면
서방국가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한 사람의 용기에, 그 지혜로운 상황 판단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오직 제 상황만을 신경쓰고 도망갈 궁리만 했다면
오늘이 없고 내일이 없다. 혼란과 지옥이 반복될 뿐이다.
어쨋든 이 영화를 보고 여러 감동도 느끼고 여러 생각을 했는데
첫째 가장 큰 생각은 서방국가들에 대한 불신과 증오였다.
둘째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대해서도
셋째 배워야 한다는 큰 의미를...
아래다 위다 순위를 논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당장 죽음의 공포에 떠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금 그저 관망하는 위치의 내가 깨닫는 점이 많았다.
마치 백인이기 때문에 버스에 올라타서 오직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혼란과 지옥의 그 상황을 면할 수 있는 그 특권을 누리되
아픈 표정만은 숨길 수 없었던 그들과 다를바 없었다.
호아킨 피닉스가 조연으로 기자역할을 했는데 그가 말한 것 중에
후투족과 투시족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자기 눈에는 쌍둥이로 보인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참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코평수가 넓고 좁고 얼굴이 희고 까맣고...
살아있음으로 부터 나오는 그런 모습이
과연 누구에 의한 기준이고 누구를 위한 기준이고 잣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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