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immani
|
2005-04-26 오후 2:04:52 |
5301 |
[9] |
|
|
이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감독 리들리 스콧이 이전에 또 한번 만들었던 서사극 <글래디에이터>는 우리로 하여금 서사극이 이런 재미도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보통 고대를 배경으로 한 서사극이라면 스펙터클한 전투신 등 시각적인 볼거리를 기대하기 마련. 그러나 <글래디에이터>는 단순히 그런 면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그보다 우리를 탄복하게 만든 건, 일생을 걸고 한 남자가 걸어온 비극적인 복수의 길이었다. 가족을 모두 잃고,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내가 벌이는 처절하지만 슬픈 복수의 장정은 서사극이 이렇게 진한 슬픔과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게 단순히 감각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성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번에 또 한번 대규모 서사극인 이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내놓았다. 역시나 그가 만든 이 서사극은 뭔가 달랐다. 줄거리만 봐서는 전투와 로맨스가 가미된 뻔한 영웅담이 되지 않을려나 하는 우려가 어느 정도 있었으나, 그건 다행히 기우에 불과했다. 신의 이름을 빌미로 무참한 학살이 난무하던 십자군 전쟁의 한 가운데, 우리의 주인공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현재 절망도 이보다 절망적일 수 없다.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고, 그저 아무 생각없이 대장장이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이벨린의 영주라는 고프리(리암 니슨)라는 자가 찾아와서는, 자기가 무슨 다스 베이더도 아니고 '내가 니 애비다'라는 생뚱맞은 멘트를 날린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군대로 들어와 신의 구원을 받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발리안은 처음엔 거절하지만, 그랬다간 영화 전개가 안되는 법, 결국 발리안은 고프리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된다. 고프리가 워낙에 신임을 받고 있는 기사인지라, 발리안 역시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찾아온 예루살렘의 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는 전쟁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속에서 발리안은 고프리의 뒤를 이어 왕의 신임을 받게 되고, 충직한 기사로서 성장해간다. 그 와중에 발리안은 강력한 차기 왕 후보로 손꼽히는 기 드루지앵의 아내이자 볼드윈 왕의 동생인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어김없이 폭풍은 불어닥치니, 왕이 나병으로 인해 사망하자, 차기 왕으로 기 드루지앵이 왕위에 오르는데, 이 사람은 알고보니 전쟁에 목마른 전쟁광. 이 사람이 평화를 깨고 전쟁을 일으키니, 그나마 평화롭던 예루살렘은 폭풍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 발리안,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우선 스펙터클이 생명인 전쟁 서사극이니만큼 시각적 즐거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홍보했던 바와 같이, 이 영화에는 그다지 많은 컴퓨터 그래픽이 쓰이지 않았다. 수천, 수만명의 군사들이 동원되는 몇 차례 전투신에서도 대부분 진짜 엑스트라들을 동원한 때문에, 현실감이 더욱 살아났고 중량감도 한층 더해졌다. 수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모래 벌판에서 만들어내는 마치 매스게임과도 같은 대열, 돌격하면서 서로 몸과 몸이 부딪치는 현실감 넘치면서도 파괴적인 느낌, 야밤에 난무하는 불포탄들의 향연과 거기에 부딪쳐 파괴되는 성벽의 중량감까지, 전투신이 주는 무게감은 제대로라고 할 수 있겠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가공됐다는 느낌을 한결 덜어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렇게 무게감이 있다고 해서 속도감이 없느냐, 그렇지도 않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여준 속도감 넘치는 전투신을 여기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보여준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공중을 가르는 전투신에서 최대한 인물들에게 밀착한 채 적당한 슬로 모션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격렬한 핸드 헬드(손에 카메라를 잡고 찍는) 기법으로 속도감과 현장감을 피부에 와닿게 살렸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생각보다 전투신들이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매번 등장하는 전투신마다 넋을 빼놓기에는 충분했다.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도 상당히 괜찮았다. 주인공 발리안 역의 올랜도 블룸은 <트로이>에서 제대로 망가진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 다시 제대로 회복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깔끔한 꽃미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로이>에서처럼 비겁한 귀공자 이미지도 아니다.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온 만큼, 말투나 표정 면에서 진지함이 넘쳐나고 전투신에서 보여주는 칼놀림도 남성적이고 파워풀하다. 뿐만 아니라, 리암 니슨, 제레미 아이언스, 에드워드 노튼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함에도 (그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탓일 수 있겠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 이 대작 영화 전체를 이끌어나가기에 충분했다. 처음 홍보물에서 '올랜도 블룸 주연'이라고 되어 있길래, 얘가 이만큼 내세울 만한 배우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프리 역의 리암 니슨이나 티베리아스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는 역시 오랜 연기 경력답게 작품에서 든든한 중심이 되어준 배우들이었으나, 사실 비중이 좀 작았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올랜도 블룸 이외에 눈에 띄었던 두 배우가 바로 에드워드 노튼과 에바 그린이다. 아마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에 에드워드 노튼이 나온 줄 모를 분들이 많겠지만, 분명 나온다. 바로 나병으로 인해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는 왕 볼드윈 4세 역이다.(목소리를 들으면 대강 짐작될 수도. 가면도 좀 닮았다) 그 역시 이 영화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급에 불과했지만, 그의 캐릭터는 예상외로 상당히 강렬했다. 그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나병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약한 왕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만 그렇지, 평화에 대한 그의 의지는 굳건하기 이를 데 없다. 살라딘과 맺은 평화를 깬 신하를 몸소 찾아가서 뺨을 후려치는 등 자신의 신조는 굳건히 지키는 인물이다. 신체적 제약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신조를 강하게 밀고나가는 그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에드워드 노튼의 연약한 듯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까지 더해져 더 인상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에바 그린은 <몽상가들>에서 소수에게 보여준 매력을 이 영화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듯 싶다. 정말 다크서클이 강조된 그녀의 눈빛 연기는 어딘가 공허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주의 그것과 정말 잘 어울렸다. 나중에 갈 수록 비중이 작아지는 게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존 서사극에서 보아온 금발의 모델같은 여인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도도하지만 한결 어두워보이고 그래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녀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의 단점을 꼽자면, 캐릭터 구성이 좀 빈약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발리안과 시빌라의 경우가 그런데, 발리안은 처음에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고통스러워하고, 전쟁에 참가하는 것도 자살한 아내의 죄로 인한 구원에 동기부여를 한 면이 강했다. 그리고 군대에 합류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등 여전히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고. 그러나 시빌라와 사랑에 빠지고 난 뒤부터, 그가 해왔던 그런 고뇌들은 다소 희석되는 게 사실이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처음에 겪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나중에 끝을 맺으면서까지 간직하고 그리워하는 반면, <킹덤 오브 헤븐>의 발리안은 그런 면이 좀 부족해서 공감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시빌라의 캐릭터 역시 뭔가 다를 것 같았으나, 결국은 주인공에게 순종적인 여성 캐릭터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처음 그녀가 등장할 때에는 분명 말을 혼자서 거뜬히 모는 그 당당한 모습에 대단히 진취적인 캐릭터겠구나 싶었으나, 나중에 가면 다소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여성 캐릭터로 나와서 다소 아쉬웠다. 발리안과 시빌라의 사랑도 생각보다 개연성이 다소 부족했다. 처음에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다소 갑작스러운 느낌이 들고, 후반부에 가서 전투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때에는 그마저도 흐지부지해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했듯, 이 영화에는 기존 서사극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바로 현대 전쟁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반전 메시지'를 아낌없이 날린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글래디에이터>나 <트로이>같은 서사극을 볼 때, 전쟁 전체가 주는 메시지에 신경을 쓴다기보다는 주인공 개개인의 운명과 변화 과정을 따라가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인공 발리안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배경이 되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이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분들이 종교를 명분으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십자군 전쟁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도 그렇고, 배경이 되는 예루살렘도 그렇고, 잔혹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외부와는 달리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을 추구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모두 기도를 해도 기독교 신자들은 결코 간섭하지 않는다. 왕을 비롯한 기사들 역시 이러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영화 제목이 뜻하는 '하늘의 왕국'이란 이렇게 이상적인 정치를 하기 위해 애쓰는 예루살렘의 경우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후반부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반전 메시지는 빛을 발한다. 전쟁에 미쳐서 자진해서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공격에 비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왠지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미국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은 겉으로는 신의 이름을 걸고 어쩌고 하지만,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듯 사실은 영토와 재물을 노리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국민들도 원치 않은 전쟁의 제물이 될 뿐이고. 종교인이 이 영화에서 다소 무지하게 묘사되는 것도 특이할 만한 점이다. 영화 속에서 예루살렘의 사제는 시종일관 이치에 안맞는 소리만 하기 일쑤다. 사체들을 태우지 않으면 전염병으로 모두 죽을 수 있음에도 '태우면 나중에 제대로 부활할 수 없다'고 하질 않나, 나중에 전투가 열세로 들어서면서는 '우리 그냥 개종합시다'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아낌없이 버리질 않나. 이러한 점들도 영화가 십자군 전쟁 때 전쟁을 일으키게 한 종교적 허영심을 비판하는 게 아닌가 싶다. 후반부에 가서 발리안은 백성들에게 외친다.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그들은 종교적인 명분같은 거창한 이유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울 뿐이다. 이러한 이들 모습을 통해, 어떤 신성한 명분이 있더라도 전쟁이라는 대량 학살 행위는 있어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만 이 영화를 제작한 미국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점이 심히 걸리기도 하지만...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서사극이 이렇게 진한 감동과 슬픔을 줄 수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듯, <킹덤 오브 헤븐>은 반전 메시지가 비단 현대 전쟁 영화에만 국한된 게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까마득히 옛날에 일어난 전쟁들도 현대의 전쟁처럼 외적인 명분이 있었을 것이고, 그때문에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것이라는 것을, 전쟁은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있어서는 안되는 재앙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이 하늘의 왕국(예루살렘)은 아직도 평화를 얻지 못했다는 자막을 보면서,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아직도 전쟁이 몹쓸 짓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씁쓸한 느낌도 들었다. 정말 사람들은 이 수천년의 시간동안 아직 그걸 못깨달은 걸까? 하늘의 왕국은 아직 한참 멀은 것일까?
|
|
|
1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