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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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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8 오전 12:59:26 |
1961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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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상수 감독의 필모를 나열하다 보면 - 이 작품 이전의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세편이지만 - 60년대 후반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아버지 죽이기'의 그림자가 눈에 밟힌다. 그의 영화가 '아버지 세대의 영화는 죽었다.'고 말한 누벨바그 거장들의 영화처럼 혁신적이라던지, 베르나르도 벨루치의 '아버지 죽이기 삼부작'처럼 진중한 사회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골적이고 낯뜨거운 성담론을 통해 '아버지'를 대표명사로 삼는 한국 사회 가부장제와 관습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의 영화에서 성(性)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탈관습의 수단이고, 변화하고 있는 또는 변화해야 할 사회구조의 축소판이다. 또한 그의 영화는 종종 여배우들의 과도한 노출과 남성 일반의 리비도를 자극하는 과감한 비주얼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유례없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은 영화고, 성(性)이라는 코드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신분 보장을 주장해 온 영화이기도 하다.
임 상수 감독의 네번째 연출작인 <그때 그 사람들>은 그의 주무기였던 성담론을 지하의 밀실로 옮겨 놓고 이전 영화에서는 성담론 속에 녹아 있던 정치를 고색창연한 저택의 외관으로 삼은 영화다. 감독은 저택에 침투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저택을 둘러 싼 담장 중 가장 야트막한 곳에 까치발을 돋우고 내부를 엿보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자기가 본 것에 상상력을 동원해서 키득거리며 썰을 푼다. 행인들 중 어떤 이는 귀가 솔깃해서 다른 건 없더냐며 맞장구를 칠 것이고, 어떤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니냐며 시큰둥해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미친놈이 생구라 깐다며 화를 내고 가 버릴 것이다. 화를 내고 가 버리는 이 중에서는 그게 웃을 일이냐고 격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행인들의 반응이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그 저택을 둘러 싼 행인들의 관계가 복잡다단하기 때문이고, 이야기를 들려 주는 화자가 조금 건들거리기는 하지만 그의 말재주가 제법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적어도 행인들이 그 염탐꾼 화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때 그 사람들>은 과거 임 상수 감독의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논재의 포지션과 비중만 바뀌었을 뿐,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동일선상에 위치한 영화다. 그의 이전 영화들은 성(性)을 소재로 했었지만 충분히 정치적이었고, 이 영화는 정치비화를 소재로 삼았지만 독재자의 아랫도리를 등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재자의 부실한 아랫도리와 도착에 가까운 여성편력을 까발림으로 해서 효율적인 권위 무너뜨리기에 성공한 영화다. 독하고 질펀한 말투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지독한 근성은 소재가 변했음에도 한치의 양보가 없고, 뒷감당 생각 안하는 무대책의 기질도 여전하다. 영화의 내용보다 평단의 반응이 흥미롭다는 것도 여전하고, 계층간의 반응과 집단간의 반응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점도 여전하다. 영화를 중심으로 한 대립의 구도가 막연한 찬반 양론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계층과 집단의 성격에 따라 세분화 되어 있고, 그들의 주장이 집단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즉자적 반응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과거 그의 영화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 낸 것은 페미니스트들과 보수적인 관습주의자들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앞서 기술한 시각적 불쾌감과 더불어 감독의 성 계급론이 한국 사회 남성 일반의 저열한 우월감을 은연 중 내포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고, 관습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빤스나 다름없는 가족주의를 비아냥거리는 감독의 전복적인 사고를 호환, 마마, 전쟁보다 200배 쯤 위험한 것으로 지적했다. 성담론의 역할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 내고 정치비화를 전방에 내세운 <그때 그 사람들>은 독재자의 적통인 수구세력들에게 난도질 당하고 부마항쟁의 주체를 이루었던 70년대의 운동권들에게 진지하게 성토당하고 있다. 수구세력들이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일 것임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지만 그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반응이라기보다는 광분에 가깝다. 저들이 광분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이 하마터면 자신들을 생매장할 뻔한 사건이었다는 것과 공개되지 않은 X-파일 속에 은폐된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70년대의 운동권들이 이 영화의 장르적 맹점을 문제 삼는 것도 그리 복잡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 저 시대는 조소와 야유의 대상이 아니라 가위눌림에 다름 없다. 그들에게 영화 속 독재자는 기력이 쇄한 영감님이 아니라 연륜만큼 내공 수위도 높아진 폭압의 지존이었고 그 엄청난 내공에 직접적으로 가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바로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부마항쟁 세대들이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독재자의 권력 독점에 항거해 봉기한 그들의 투쟁과는 상관없이 내부자들의 분열에 의해 독재자의 명줄이 끊어졌다는데 대한 허탈감, 그로부터 두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그 두 번의 결정적인 사건이 80년 5월의 학살극을 부른 원인이었다는데 대한 죄의식이 켜켜이 쌓여 그들 세대로부터 가장 환영 받아야 할 이 영화의 가능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여전히 그 사건을 너무 경직된 자세로 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독한 말투에는 '운동권 양반들, 그때 뭐했수?'라는 비아냥도 섞여 있는 듯 하니까. 79년의 부마가 그랬던 것처럼 87년 호헌철폐의 결과도 말짱 도루묵이었고, 87년의 주역이었던 386세대들도 선배들 못지 않은 허탈감과 패배주의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짠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병상련은 동병상련이고 영화는 영화다.
한국 대중 문화계에서 영화와 음악이 얼마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억압받아 왔는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를 느낀다. 음악은 차치하더라도 영화가 해방 이후의 정치사에 개입한 것이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애둘러 말할 것 없이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할 실존 인물이나 사건이 왜곡됨 없이 진지하게 그려진 것이 언제부터 인가.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95년 박 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 태일>이 시초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만 25년 만의 일이었다. 통탄해야 할 사실은 1995년이라는 시점의 전 태일은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아이콘이 아니라 노동 운동의 과거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청년 전 태일> 이후 한국 영화는 얼마나 정치적이었던가. 부끄럽게도 몇몇의 독립영화를 제외하고는 실화에 근거한 정치 영화는 없었다. 이마가 정수리 너머까지 이어진 권력자가 나오는 영화가 몇편 있긴 했지만 그 영화들을 정치 영화로 분류하려면 그에 앞서 똥파리나 짭새도 조류도감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 영화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을 띨빵한 오합지졸들의 좌충우돌로 그려낸 것은 아쉬운 사실임이 분명하다. 10.26은 웃고 넘기기에는 비중이 너무 큰 사건이었고,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 87년의 지독하게 무더웠던 여름을 블랙도 아닌 그냥 코미디로 희화화한다면 386들도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10.26은 미국으로 치자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 같다. 저격 당한 대상의 성격은 극명하게 차이가 났지만 두 사람 모두 한 국가의 현직 대통령이었고, 사건의 진실이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다는 점에서 실물과 거울의 반사상처럼 닮아 있다. 사건의 비중에 비해 영화화된 예가 극히 드물다는 점도 유사하다.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올리버 스톤의 <J.F.K.>를 통해 제법 진지하게 다루어 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J.F.K.>는 진지한 사회극의 형식을 취하고서도 구구한 가설의 되새김과 핵심없는 사설만 남발했던 영화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미국의 국가 권력은 수차례 자리바꿈을 거쳐왔지만 한국 사회는 대물림의 연속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영화가 진지했건 진지하지 못했건 간에 임 상수 감독은 할만큼 했다. 그리고, 그 답게 했다. 근자에 동일 인물인 박 정희의 시대를 다뤘던 <효자동 이발사>가 독재자에게 무조건 복종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일관한 것에 반해 이 영화는 조소의 대상을 독재자 박 정희와 그 시대 권력의 핵심들로 설정했다는 것 만으로도 괄목상대할 발전임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는 시각은 다를지라도 잘려 나간 필름에 대한 요구가 같다는 것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비난하는 평자들 중에는 총 맞아 죽고서도 25년 동안 잊을만 하면 불쑥불쑥 얼굴을 내미는 독재자의 망령을 지긋지긋해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고로 무덤은 깊게 파고 두텁게 묻어야 하는데, 급하게 만든 무덤이 튼실할리 만무한 법. 무덤이 부실해서 홍수철마다 해골이 드러난다면 아예 파 뒤집어서 확실하게 새로 묻고 묘비도 새로 하나 만들어 줌이 옳다. 그러자면 좀 더 부추겨야 한다. 임 상수 감독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판을 부추겨야 한다. 잘 부추기면 줄줄이 알사탕으로 꼬리 물고 나올 것이다. 그 중에서 잘 된 영화 다섯 편만 나와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겠나.
2005. 02. 14.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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