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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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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8 오전 1: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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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빈민가 브룩클린에서 태어나서 단 한번도 뉴욕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우디 앨런에게 뉴욕은 과연 어떤 도시일까? 할렘과 맨하탄이 공존하고, 유대인과 스킨 헤드족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살아가는 뉴욕은 우디 앨런의 생각처럼 혼돈의 결정판이자 모든 강박증의 원천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아이디어의 보고이자 그를 성장시킨 요람이나 다름없다. 초기의 몇편을 제외한 그의 모든 영화는 어김없이 뉴욕을 배경으로 삼았고, 뉴욕에 사는 유대인 우디 앨런은 자신의 정체성을 냉소적인 농담의 꺼리로 빈번히 우려 먹었다. 또한 역대의 영화 작가들 중 보편적 뉴욕의 풍경과 숨겨진 명소를 가장 기막히게 포착해 낸 인물이 바로 우디 앨런이었고, 맨하탄의 거리와 센트럴 파크의 벤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인물도 우디 앨런이었다. 아무리 값 비싼 명품을 입혀 놓아도 전혀 태가 날 것 같지 않은 왜소하고 볼품없는 체구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는 그의 입담은 뉴욕 지식인 사회의 단편을 보여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아도 우디 앨런은 뉴요커의 표본이다. 하늘을 찌를듯한 마천루 숲 사이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왜소한 체구의 인간. 어느새 우디 앨런은 뉴욕 태생의 영화 감독이 아니라 그 자체로 뉴욕을 대표함직한 풍물이 되어 있다.
자신의 삶을 통 털어서 가장 혹독했던 90년대를 보낸 우디 앨런은 그 험난한 수난기에도 한 해도 빠짐없이 신작을 내놓았고, 그 작품들 대부분이 혹독한 비평에 시달려야 했지만 영화 외적인 스캔들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작품 자체에는 그리 큰 흠결이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96년의 <에브리 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이후 국내에 수입된 영화라고 해봐야 <스몰 타임 크룩스>와 이 영화 뿐이니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비공식 루트를 통해 관람한 몇편의 근작들은 적어도 범작 이상이었다고 판단된다. 금세기에 발표된 두편의 로맨스물이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은연 중 영화 속 관계에 묻어난 본인의 성적 취향 때문에 치명적인 악평을 받아야 했던 우디 앨런은 가장 최근에 극장에 내걸린 이 영화를 통해 로맨스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해 버린다. 이는 어쩌면 일찌기 그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늙은 희극 작가 도벨로 분한 우디 앨런은 자신의 젊은 분신이나 다름없는 제리(제이슨 빅스)가 감당하기 힘든 상대 아만다(크리스티나 리치)와의 관계 때문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는듯 진저리를 친다. 정작 문제에 직면한 당사자 제리의 입장에서는 도벨의 반응이 과민반응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도벨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고 절실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의 말들은 너무 직선적이고 강압적이라서 처음에는 당혹스럽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사실로 판명된다.
만일 이 영화가 제리와 아만다 그리고 아만다의 어머니인 폴라(스토커드 채닝) 사이의 갈등에만 주력했다면 여성관객들은 포-레터 워드를 남발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했겠지만, 제리의 매니저인 하비(대니 드 비토)와의 재계약 문제를 개입시킴으로해서 여성 혐오에 대한 혐의는 유야무야 되고 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여성 혐오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에게는 나름의 면죄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도벨은 제리에게 여자 문제든, 비즈니스 문제든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사정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고 강권한다. 스물 한살의 청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요구이지만 도벨의 말은 분명 진실이다. 만일 제리가 도벨의 말을 따르지 않고 과거의 습성대로 행동했다면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폴라와 아만다 모녀의 농간에 계속해서 놀아나게 될 것이고, 무능한 매니저 하비 때문에 재능의 대부분을 유치한 삼류 개그로 탕진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수시로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유대인 뉴요커의 처지를 빈정거리며 개인적인 무장을 종용하는 도벨의 태도는 우디 앨런이 평생 겪어야 했던 신경과민의 해결책이자 그가 70년을 살아 오면서 터득한 나름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우주가 멸망하는 것을 장전된 총 한자루로 막을 수는 없겠지만 강도의 칼에 찔려 영문도 모르고 죽는 것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좀스럽고 짜잖은 우디 앨런식 생존전략이 아닐까?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요람이나 다름없는 뉴욕에 대한 혐오를 전면에 드러낸다. 나찌의 잔당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는 도시, 쓸모없는 매니저와 정신 분석가가 하는 일 없이 고객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도시, 장전된 총이 없이는 불안해서 살 수 없는 도시, 전도 유망한 작가가 재능을 허비하며 황금기를 날려버리는 도시. 도벨은 제리에게 그런 도시 뉴욕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너를 미치게 하는 성불구 암코양이와 양복팔이 같은 유대인 매니저와 신을 흉내내는 정신과 의사까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캘리포니아로 떠나자고 한다. 우유부단한 제리를 기필코 설득시켜 뉴욕에서의 모든 관계를 청산시키고 뉴욕이라는 도시와도 아디오스를 외치게 한 도벨은 그 자신만이 저지를 수 있는 우발적인 실수를 핑계로 결국 뉴욕에 남는다. 이것은 어쩌면 뉴욕과 우디 앨런 자신의 관계를 요약하는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개인의 재능을 자양분으로 빨아먹으며 재기를 섬멸하는 거대 생물체 뉴욕과 그런 뉴욕에 신물이 나버린 우디 앨런. 누구보다 뉴욕을 잘 알기에 재능 있는 그 누구라도 뉴욕에서는 살게 하고 싶지 않지만 정작 자신은 떠나지 못한다. 만일 자신이 제리 또래였을 때 누구라도 도벨같은 말을 해주었더라면 그 즉시 뉴욕을 떠나서 화려하게 재능을 꽃피웠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푸념하면서, 자신은 이미 때를 놓쳐버렸지만 재능있는 젊은 유망주를 만나게 된다면 아무도 해 주지 않은 그 말을 반드시 해주겠다는 결연한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든 우디 앨런은 앞으로도 뉴욕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제작이 완료된 새로운 영화를 개봉하고 나면 또 새로운 영화의 촬영에 돌입할 것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월요일 밤이면 '마이클즈 펍'을 찾아 재즈를 연주할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재능있는 누군가를 만나 이렇게 말하겠지? '랍비나 성불구나 파시스트가 아니라면 뉴욕을 떠나라!'
우디 앨런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관습적 전략들이다. 그의 영화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뉴욕이라는 공간 외에 우디 앨런은 현실 속에서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을 화면 속에 능동적으로 흩뿌려 놓는다. 극중 인물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들은 모두 우디 앨런 자신의 복합적인 이상 심리의 파편들이고, 드라마를 끌고 가는 로맨스들은 대개 현실 속에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로맨스의 연장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대인에 대한 조소어린 희화화도 자신의 신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고, 올드 스타일에 대한 흠모도 우디 앨런 자신의 취향에서 비롯된다. 그의 영화에 언제나 나른한 복고풍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에미넴이나 메리 J. 블라이즈에 광분해야 할 나이의 제리와 아만다도 빌리 홀리데이와 콜 포터를 경배하고, R & B 음악이 귀를 찢어 놓는 클럽이 아니라 뉴욕의 명물 '빌리지 뱅가드'를 찾아 다이아나 크롤의 연주에 도취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들먹이며 제리에게 다가 서는 코니나 오래된 영화 포스터들을 수집하는 아만다의 연기 파트너 레이의 취향도 또래의 보편성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담 전문가에 대한 조소도 우디 앨런 영화를 구성하는 필수요소다. 때로는 랍비로 때로는 정신분석가로 등장하는 이들은 듣기만 할 뿐 대답할 줄 모른다. 결국 해답은 의뢰인 스스로가 구해야 하므로 이들에게 상담을 의뢰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 우디 앨런의 결론이다. 이 영화에서 정신분석가는 도벨의 욱하는 성질을 건드리는 바람에 소화기에 두들겨 맞고, 클리블랜드 인디안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가 제리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당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정신분석가나 랍비는 이전보다 훨씬 강도높은 놀림의 대상이 되던지 아니면 아예 등장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05. 03. 05.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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