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기다린 듯 하다. 배트맨시리즈의 4편인 '배트맨&로빈' 이후 무려 8년만이다. 바닥 깊은곳까지 떨어질때로 떨어진 배트맨을 다시 수면위로 부르기엔 8년이라는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그만큼 배트맨은 지금의 우리에게 잊혀진 영웅이었을 것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가 손을 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 전에는...
<배트맨 비긴즈>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배트맨'이라는 영웅의 시작을 얘기하는 프리퀄작품이다. 여러가지 뜻이 담겨있겠지만, 배트맨의 원래 모습...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팀버튼감독의 배트맨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거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원래'라는 의미는 사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는 그다지 내키는 단어가 아닐거라는 생각이다. 그도 역시나 89년 팀버튼 <배트맨>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있긴하지만, 그가 팀버튼의 '배트맨'으로 돌아가는 작업을 해냈다고는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거다.
개인적으로 팀버튼의 그것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감독만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놀란감독의 <배트맨 비긴즈>는 그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팀버튼의 배트맨을 부활시키는 임무와 자신만의 배트맨을 창조해가는 두가지 토끼를 놀란감독은 완벽하게 잡는다.
<배트맨 비긴즈>가 배트맨의 활약상보다는 브루스웨인이라는 인물의 자아를 완성시키는데 더 열중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거라는거다.놀란감독이 자신만의 배트맨을 그리는부분은 사실 영화의 앞부분이다. 왜 배트맨이 되어야 했는가를 유독자세하게 그려내는 그가 자신의 영화라는 표시를 남기는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상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나서 배트맨이 가면을 쓰기 시작하는 부분부터는 그는 팀버튼의 배트맨으로 돌아간다. 놀란 감독은 배트맨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 이상의 액션을 보여주지 못한다. 배트맨의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 팬이라면 많은 실망을 하게 될 거라는 거다. 대신에 놀란감독은 팀버튼 처럼 자신만의 배트맨을 완성하는데는 성공한것으로 보인다.
놀란감독만의 배트맨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놓친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배트맨의 악당들이다. 외형적으로는 다양한 악당이 등장하는 이번영화에서 특히나 선한 이미지의 표상인 리암니슨이 악역을 맡은것부터,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바있는 켄 와타나베, 놀란감독이 처음부터 배트맨역으로 찍어놨던 시실리안 머피등이 나오지만....글쎄 그들은 기존의 배트맨악당들보다 무게감이 훨씬 떨어지는 연기를 보이고 사라진다. 이 부분은 굉장히 아쉽다.<배트맨 비긴즈>에서 상당히 중요했던 부분인데, 놀란감독은 유일하게 이것을 놓쳤다.
배트맨역을 맡은 크리스찬베일은 그래도 좀 나은 부분이 있다. 앞에서 말한것처럼 브루스웨인으로서의 베일은 더 이상 나무랄데 없는 완벽한 연기를 보였지만, 놀란감독 자체가 배트맨의 활약에는 관심이 없다보니 배트맨수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그냥.....평범하다. 누구나 그 가면을 쓰면 그렇겠지만...
아무튼 배트맨은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서 다시 힘찬 시동을 건 것만은 확실하다. 영화의 묵직한 배트모빌처럼...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즈>로 완벽하게 배트맨을 수면위로 올려놓았다. 이것만으로 그는 이름처럼 놀란만한 업적을 남기게 될 듯 하다. <배트맨 비긴즈>는 말그대로 수면까지만 떠 오른 상태다. 놀란 감독의 배트맨은 2편부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듯 하다. 또다른 기다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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