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에 개봉한 배트맨 1편은 영화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흥행작으로 평가받는다.
우울한 영상, 그다지 화끈하지도 않은 액션씬, 다 알고 있는 스토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버튼이라는 기괴한 마술사의 손에 의해 2억 5천만불이 넘는 흥행으로 영화역사를 새로 썼다.
조각처럼 잘생기고 매력적인 3,4편의 배트맨이 팬들의 처절한 왕따를 당하고 왠지 곧 죽을 것 같은 지병을 감추고 말 안하는 표정을 한 1대 배트맨, 마이클 키튼을 잊지 못하는 괴상망측한 현상이 발생하면서 배트맨 이야기는 벌써 8년째 잠수중이었다.
"메멘토"라는 걸출한 미스테리 스릴러 한편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크리스토퍼 놀란 에게 이 영화가 돌아갔을때 수많은 팬들은 진정한 배트맨의 재 등장을 꿈꿨고 초심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하듯 배트맨 5편은 그 제목 또한 쌩뚱맞은 'Batman Begins' 이다.
이렇게 '배트맨의 시작'편 은 오랜세월 기다린 팬들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고, 수많은 팬을 거느린 배트맨1,2편의 아우라에 스스로 삽질을 해대는 실수따위도 범하지 않았다.
감독 특유의 드라마적 요소와 독특한 긴장감은 입에 착착 감기는 스테이크의 육즙처럼 곳곳에 베어 나고, 첫 액션영화임에도 오히려 다른 액션 전문감독들을 업종전환의 위기로 내 몬다.
[배트맨 비긴즈]는 다른 코믹스의 히어로들, 수퍼맨, 스파이더맨, 헐크의 평소모습이 별 볼일 없는 것에 반해, 평소에도 별 볼일 많은 갑부 브루스 웨인이 어쩌다가 악의 무리에 맞서, 시키지도 않은 피곤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다.
'배트맨 비긴즈'를 보는 최고의 즐거움은 이렇게 갑부집 외동 아들이 혐오 동물의 대명사인 박쥐를 심볼로 결정하게 되기까지의 안타까운(?)사연과 그 놀라운 무기들과 배트카의 정체, 그리고 갑자기 샥샥 사라지는 비술과 무술같지 않은 발차기에 왜 그렇게 적들이 잘 자빠졌는지 에 대한 매우 흥미진진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배트맨 자신이 박쥐에게서 느끼는 오바에 가까운 공포 - 하긴 태권도 유단자인 내 후배도 어릴적 개한테 물린 기억때문에 평생 개만 보면 발 한번 못 뻗는다 - 를 악당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겠다는 말처럼 (원작에 충실하게도) 훨씬 더 공포스럽고 오금저리게 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역대 최고의 배트맨이라고 팬들 스스로 격찬해 마지 않는 크리스찬 베일 (아메리칸싸이코, 이퀴리브리엄, 머시니스트)은 이번 영화에서 진정 배트맨이 나가야할 끔찍한 공포의 대상 으로서의 역할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의 연기는 배트맨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배트맨은 이러해야 한다는 명확한 선을 긋고 말았다.
(배트맨으로 변신한 뒤 적들을 대적할 때를 보라.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제스처와 오바에 가까운 격앙된 목소리, 그리고 과장된 후까시는 오히려 1,2편의 배트맨보다 몇갑절 더 원작에 가깝다. )
진지하고 짜임새 있는 드라마, 감당하기 힘든 스케일, 놀랄만큼 멋진 고담시와 스타일리쉬해진 배트맨의 풍채, 여타 액션영화를 숨죽이게 하는 빠르고 감각적인 영상, 그리고 알싸한 공포의 색채, 허를 찌르는 캐스팅 (영원한 부패경찰의 아버지, 게리올드만('레옹')이 좋은 형사로, 다스베이더를 발굴한 우리의 영원한 쉰들러 선생님 리암니슨이 악당으로), 심폐소생기가 필요할 만큼 인상적인 사운드, 그리고 보는 재미가 가득한 디테일들.
브루스웨인이 라스알굴을 배신하는 과정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올해 반년이 지나도록 가장 만족스러운 단 한편의 영화를 뽑으라면 필자는 망설임없이 '배트맨!'이라고 외칠 것이다.
나도 정의를 위해 이 한 몸 던지고 싶다. 야구 배트(bat)라도 하나 들고서. BATMAN~~~ 무서워야 할텐데.. 웃길려나?.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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